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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를 뜯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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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84g | 153*224*8mm
ISBN13 9791187413578
ISBN10 118741357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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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했다 일찍 들어온 날,
당신은 뜯어보았던 내 이불 홑청을
다시 꿰매고 있었지요
혼수 이불 속
솜을 확인하고 있었지요
-
목화가 라일락이 되었을까 봐요?
목화가 목련이 되었을까 봐요?
목화입니다 목화솜입니다 아니,
내 엄마가 밤새 바스러 넣은 하얀 찔레꽃입니다
핏빛 숨긴 찔레꽃입니다
--- 「혼수를 뜯다」중에서

그렇게 울고 싶지 않은가
아이섀도는 눈썹까지 퍼져 있고
아이라인은 점선이 되고
마스카라 번져 검은 얼룩으로
그리 울고 싶지 않은가
기대어 울 사람은 있어도
그리하지 못하는 비밀의 슬픔이 있지 않은가
나는 긴 속눈썹도 마스카라도 없어
고작 우는 건 안경 반쯤 올리고
손가락 넣어 쿡쿡 찍어대는 울음뿐이지
생은 어차피 모방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슬픔도 흉내내며
그대로 울어보는 거지 뭐
슬픔에게 어떻게 울어줘야 하는지
슬픔을 어떻게 대우해줘야 하는지
고민을 해보며 마스카라도
눈물 젖을 긴 속눈썹도 없으나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첫날밤 행사처럼

찾아왔으니 예우를 해주는 거지
--- 「슬픔에 대한 예우」중에서

나는 저것이 나무이고 산이고 논이길 한번도 바란 적이 없다
차창 밖에 지나는 저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준 적도 없다
-
나에게 저들의 이름을 언제 알려주었던가
누가 나에게 가르쳐주었던가
내 눈이 나무로 보며 산으로 보고 논으로 보는 것뿐이다
-
나의 의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어둠이 서서히 오고 있다 나는 눈을 뜨고 있어도
나무를, 산을, 논을 보지 않을 것이다
-
이제는 저것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게 너는 나라고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너에게 나는 너라고 불러주기를 바란 적이 있었던가
언제부터 사랑이라고 명명하기 시작했던가
-
너는 나라고 부를 때 사랑은 이미 떠날 준비를 하는 것
어두워지는 차창으로 내가 나를 바라본다
내게도 어둠이 올 것이다
너를 너로만 보는 날이 올 것이다
-
밤이 계속 되어가고 있다
나는 어두움을 세고 있다
상실에 반항하다 내내 잠잠해질 것을 소망한다
밤차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나는 눈을 뜨고 있어도
나무를, 산을, 논을 보지 않을 것이다
-
이제 누구의 이름도 부르지 않을 것이다
--- 「사라지는 이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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