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과 인터넷 혁명으로 정보 관리에 일대 혁신이 일어나, 공간적으로 분리된 복잡한 활동을 쉽고 값싸고 빠르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 전자우편과 편집 가능한 파일(*.xls, *.doc 등), 그리고 전문성이 강화된 웹 기반 조정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통해, 사람들은 아주 멀리 떨어진 시설의 다면적인 절차를 손끝 하나로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증기혁명이 세계화를 변모시키는 데 수십 년이 걸린 반면, ICT 혁명은 불과 몇 년 만에 이를 완수했다. --- p.98
세계 시장을 상대로 상품을 판매하면서, 기업은 이윤을 더 많이 남기려고 생산 규모를 대폭 확장해서 가동했다. 이 대규모 생산기술은 대단히 복잡했다(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러한 복잡성과 원거리 통신의 높은 비용은 생산의 공간적 체계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새로운 산업적 복잡성을 관리하는 일이 더 쉽고 값싸고 안전해지려면, 어쨌든 모든 생산단계가 아주 가까운 곳에 모여들어야 했다. 바꿔 말하면, 공장 이 만들어진 것은 상품의 이동비용을 줄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식과 사람의 이동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 p.139-140
제조업 클러스터가 생긴 것은 복잡한 공정을 손쉽게 조정할 필요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ICT 혁명으로 인해, 여러 공장을 클러스터에 붙여놓은 ‘조정용 접착제’가 녹기 시작하면서 G7 기업들은 가까운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을 이용하려고 생산공정을 하나씩 해외로 이전했다. 〈그림 44〉의 오른쪽 그림에 그 내용이 나타나 있다.
중요한 것은, 생산의 국제적 재편에 따라 ‘북’의 공장이 ‘남’으로 국경을 넘어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는 공장 내의 단계별 흐름이 국제적인 단계별 흐름으로 바뀐 점이다. 1990년 이후 세계화는 세계경제에 그 이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영향을 끼쳤다. 생산단계별 흐름의 국제화가 주요인이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 p.162-163
오늘날 많은 공장에선 산업용 로봇, 자동화된 공작기계, 무인 운반차 따위의 주변장치를 갖춘 컴퓨터 시스템으로 작동된다. (3D 프린팅으로도 알려진) 적층 제조를 통해, 노동자 한 사람이 기계 한 대만으로 모든 과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향상된 제조방식을 ‘컴퓨팩처링compufacturing’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노동자가 물건을 만들도록 기계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물건을 만들도록 노동자가 도와주기 때문이다. --- p.230
생산분할과 해외이전의 관계에 관한 두 번째 교훈은, 세계화가 언제나 G7 탈산업화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공장의 사례에서, 여성의 실제 경쟁자는 중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미국에 있는 로봇이다. 2012년에는 그녀가 시간당 13달러를 벌면서 로봇보다 더 경제적인 노동을 했지만, 그녀의 동료 대다수는 이미 로봇으로 대체되었다. --- p.237
세계화의 첫 세기∫에 이루어진 혁신을 이끈 힘은 산업이었다. 따라서 G7 경제가 산업화하고 A7 경제가 산업화에서 배제되면서, G7의 혁신은 쉬워졌고 A7의 혁신은 어려워졌다. 달리 말해, ‘북’이 산업화하면서 ‘북’의 성장은 진전되었던 반면, ‘남’이 산업화에서 배제되면서 ‘남’ 의 성장은 후퇴했다. G7 국가에 산업이 모여든다는 것은 곧 G7 국가에 혁신이 모여든다는 뜻이었다. 지식이 파급되면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지만, 지식의 이동비용이 높으면 지식은 지역 내에서만 퍼진다. 이를 고려하면, 산업이 형성된 지역에서 일찌감치 성장이 시작되는 건 자명한 이치다. --- p.244-245
한국은 20세기 수입 대체 전략에서, 21세기의 글로벌 가치사슬 전략으로 갈아탔다. 1997년 금융 위기가 촉매제였지만, 밑바탕에는 세계적 경쟁이라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의
자동차 부문은 특히 규모 집약적 산업이며 연구개발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완전한 국내 공급사슬에 의존해서는 어떤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2000대 들어 한국의 자동차 부문은 글로벌 가치사슬 클럽의 완전한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두 번째 분리 이전에 공급사슬을 구축했기 때문에, 지금은 공장 경제가 아니라 지역본부 경제에 속한다. --- p.292-293
1990년 무렵 이전,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것은 자국 내에 공급사슬을 구축했음을 뜻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모든 부자 나라는 이 길을 걸었다. 그중 한국이 마지막 주자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다른 길이 있다. 생산단계를 선진국에서 넘겨받은 일부 개발도상국은 국제적 공급사슬에 합류해서 경쟁력을 확보한 다음 급속하게 성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결과를 얻기까지 수십 년이 더 걸렸을 것이다. --- p.283
텔레프레즌스는 고급 서비스 부문에서 이미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자문 회사나 금융 서비스 회사의 업무에서 대면회의의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아직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시설도 한정되어 있다. 만약 가격이 훨씬 더 낮아지고 이동성이 더 높아지면, 전문가와 관리자가 멀리 있는 공장과 사무실에 방문할 필요성이 두드러지게 줄어들 것이다. 물론 직접 만나서 하는 회의도 오랫동안 조정의 일부로 남아 있겠지만, 그 횟수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 p.339
일상적이고, 숙련도가 낮고, 반복적인 업무는 전산화하고 자동화하기 쉬우므로, 향상된 IT로 인해 그런 업무를 포함한 직종은 꾸준히 사라질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정교한 생산 기계가 더 집중적으로 사용되면서, 숙련도·자본·기술 집약성이 비교적 높은 일자리만 남을 것이다. 이로 인해 생산단계는 숙련도 측면에서 양극화될 것이다. 일상적인 저숙련 업무는 고숙련 직종으로 합쳐지는 한편, 고도로 노동집약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저숙련 일자리가 일부 상징적으로 남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생산단계가 더 광범위해지려면, 더 자본 집약적이고, 더 기술 집약적이고, 더 고숙련 노동집약적인 공정이 필요하다. 이러한 생산공정은 선진국에 자리 잡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 이러한 추세를 보면 G7 국가에 고숙련 노동자와 로봇을 위한 공장 일자리가 있으리라 예상된다. 중숙련·저숙련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거나 해외로 옮겨갈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컴퓨터로 일자리가 대체된 노동자도 있지만, 컴 퓨터로 일자리가 보완된 노동자도 있다. 양극화는 바로 이 사실에서 비롯된다.
--- p.346-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