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가득 채우소서. 어떠한 말도 이 만남 동안 이루고자 하는 기도 분위기를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의 신비가 침묵 속에서 우리 마음에 이르고 참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곳까지 이르게 하소서.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님,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정화할 수 있을 만큼 강렬하고 참되도록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 ‘들어가는 글’에서
‘복된 사람, 행복한 사람, 복 받은 사람’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어떤 특정 상황이나 특정 태도가 지니는 윤리적, 종교적 가치 기준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묵상하는 이 성경 본문에서 예수님은 영적 가난, 슬픔, 온유, 자비, 깨끗한 마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름 등 몇몇 인간적 상황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십니다. ‘행복하다.’라는 말 자체가 이미 인간학을 구성하며, 인간이 무엇으로 행복하고 참되며 본연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지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행복’은 복음적 인간,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 복 받고 행복한 인간이 되는 방식에 대한 선언인 것입니다. ---‘참행복’에서
…… 본문에서 ‘가난한 사람’이란 말은 ‘마음이’라는 아주 중요한 조건과 함께 나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이 말씀에 대한 마태오 복음사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이는 아무런 요건도 덧붙이지 않은 루카 복음서에는 없는 어려움입니다. 번역본에 따라 이 말씀은 “가난한 사람의 영혼을 지닌 사람은 행복하다.” “가난한 사람이 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가난한 사람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느님 앞에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등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조금씩 다른 이런 해석들을 종합해 볼 때, 마태오 복음서에 따른 예수님의 생각에는 ‘궁핍’이라는 의미를 넘어 훨씬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이라는 말을 통상적으로 쓰이는 물질적 의미의 궁핍을 뜻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약에서도 발견되는 내적 가치에 염두를 두고 사용하십니다. 이에 관한 전형적 표현이 스바니야 예언서에 나옵니다. “주님을 찾아라, 그분의 법규를 실천하는 이 땅의 모든 겸손한 이들아! 의로움을 찾아라. 겸손함을 찾아라.”(스바 2,3) ---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32-34쪽)에서
그리스도교 전통은 마태오 복음서의 두 번째 참행복에 대해 이러한 뉘우침의 슬픔, 곧 자신의 죄와 그 죄의 상태를 마음 아파하며 죄를 혐오하는 사람의 슬픔을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한 예는, 자신과 인류의 죄에 대해 눈물 흘리며 일생을 보낸 성인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슬픔을 참행복으로 선포하는 것은 하느님의 무한한 신비를 지향하는 관상의 시선으로부터 나오며, 부서지기 쉬운 인간의 조건과 모순적인 인간의 역사에 대한 통찰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슬퍼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슬퍼한다는 그 사실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슬픔을 긍정적 태도로 삶으로써 위로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그를 위로하실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아듣게 됩니다.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50-51쪽)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합시다. “예수님, 저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당신을 관상하오니, 저의 마음이 당신의 마음을 닮게 해 주소서.” 조금씩 침묵 속으로 들어가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으시는 예수님의 외침을 들읍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이렇게 기도하면 온유에 대해 쓰인 모든 것을 읽는 것보다도 더 온유에 대해 배우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 우리가 시련을 회피하는 일을 결코 허락하지 말아 주시기를 청합시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스러운 패배를 겪고 난 뒤 우리의 생명을 손안에 가지고 계시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항복할 때 온유를 살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유순함과 마리아의 부드러움을 받아들일 때 온유를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74-75쪽)에서
우리에게 더욱 큰 충격을 주는 참행복들은 무엇보다도,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행복하다는 말처럼 얼핏 보면 무척 거슬리는 대조를 통해 표현됩니다.실제로 참행복은 ‘소유하는 것’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주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 소유하는 것’으로부터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옮겨 가는, 신비로운 인간학적 전환을 보여 줍니다.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이와 같은 변화의 과정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비밀, 동시에 인간의 비밀인 ‘자신을 선물로 내어 놓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79-80쪽)에서
“주님, 우리는 당신의 복음적인 참행복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지요! 우리의 굳은 마음과 나약함과 닫힌 마음을 고쳐 줄 수 있는 당신의 마음을 관상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참행복에 걸맞게, 그리고 온 세상에 변함없는 당신의 사랑을 선포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당신의 자비를 경험하게 해 주소서.” ---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109쪽)에서
이제 우리는 구약 성경을 요약하고, 그 내용을 다시 취하시어 완성하시는 예수님의 여섯 번째 참행복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살펴본 순결이라는 측면에만 한정된 깨끗한 마음만을 얘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깨끗한 마음은 하느님 뜻에 솔직하고 투명하며 충실하고 사랑에 찬 순명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깨끗한 마음,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전적인 순명과 오로지 하느님의 왕국만을 생각할 때, 그래서 온전히 그분께 봉사하고, 찬미하며, 천상의 예루살렘 안에 계신 그분을 관상하고, 예배드릴 때, 최후의 날에 하느님의 모습을 뵐 수 있다는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미래를 향해 현재를 열어 주는 희망이며,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에게 이미 이 세상에서부터 기도와 전례 안에서 실현되는 희망, 하느님과의 끝없는 내밀함을 보여 주는 교회의 여정 안에서 실현되는 희망입니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123-124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