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쾰른 대학교 독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의 인문한국사업단 탈경계인문학 연구단에서 HK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사 논문 「현대 서사 카테고리로서의 양태성」을 비롯해 「유럽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카프카의 문학적 유희」 「상호문화에 나타난 문화번역의 문제」 등의 논문을 썼다. 옮긴 책으로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내쫓긴 아이들』,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등이 있다.
체스의 매력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의 상이한 두뇌에서 전략이 나온다는 데 있거든요. (중략) 그런데 검은 말과 흰 말이 동일한 사람이라면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하나의 두뇌가 뭔가를 알아야 하는 동시에 또 몰라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중략) 그러한 이중적인 사고는 사실 의식의 완전한 분열을 전제로 합니다. --- pp.60~61, 「체스 이야기」 중에서
당시 의사가 저에게 경고했거든요…… 분명히 경고했어요. 광기에 한번 걸려든 사람이라면 언제든 또 그럴 위험성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완치되었다고 해도 체스중독증이었던 경우는 아예 체스보드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지요…… --- pp.74, 「체스 이야기」 중에서
그건 낯설고 불안한 여인의 필체로 성급히 써 내려간 것으로 스물네 장 정도나 되어 편지라기보다는 원고에 가까웠다. (중략) 윗부분에 “결코 저를 모르는 당신께”라는 호칭이 제목으로 쓰여 있었다. 그는 놀라 잠시 멈칫했다. 이것이 정말 나에게 온 건가? 아니면 어느 몽상가에게 온 건가?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는 읽기 시작했다. --- pp.90, 「낯선 여인의 편지」 중에서
지금 전 이 세상에 당신 말고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제게 어떤 분이신가요? 저를 결코, 결코 알아보지 못한 당신, 물처럼 제 곁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 당신, 거리의 돌을 밟고 지나가듯 저를 밟고 지나가는 당신, 늘 멀리서 떠나는 저를 영원히 기다리게 하는 당신은 제게 어떤 존재인가요?
「체스 이야기」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 안에서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를 만나게 되고, 우연히 그와의 체스 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거만하고 냉혹한 태도로 게임에 임하는 첸토비치의 공격에 밀리고 있을 때, 미지의 남자가 나타나 조언을 해주고 게임은 무승부로 끝이 난다. 첸토비치와의 새로운 게임을 부탁하기 위해 미지의 남자 B박사를 찾아간 ‘나’는 B박사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감금되었을 때 체스를 익히게 된 사연을 듣게 되는데……
「낯선 여인의 편지」 유명 소설가 R는 발신인이 나와 있지 않은 낯선 필체의 두툼한 편지 한 통을 받고 호기심에 이끌려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R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여인이 쓴 것으로, 여인은 아이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도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 자신의 삶과 R를 향한 평생의 사랑을 편지에 담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