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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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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9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24쪽 | 496g | 130*207*22mm
ISBN13 9788932035697
ISBN10 893203569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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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풍경은 새로워 보였다. 거울을 통해서 거꾸로 볼 때처럼 같은 세계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로 나타났다. 그의 수정체는 채색되어 있었다. 그것은 편리한 채색이었다. 각도를 달리해서 볼 때완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보이는 대로 보는 대신에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었다. 보았던 것을 안 볼 수도 있었고, 안 보았던 것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풍경화가 더 진실에 가까웠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이쪽 수정체가 젖어 있다면 저쪽 수정체는 습관에 물들어 있었으니까. 하나의 풍경에 두 개의 풍경화… 성 중위는 드문 풍경화를 보고 있었다. 하늘이 기울고 지평선도 따라서 기울었다. 확실히 지구는 움직이고 있었다.
--- p.47~48

밖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가로등 없는 캄캄한 골목길을 미친 듯이 뛰어갔다. 포장된 큰길이 길가 가게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아 희끄무레하게 빛났다. 그는 문득 멈춰 서서 그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30년을 하루같이 걸어 다녔던 길이었다. 지난 5년 동안의 공백도 그 길이 그에게 대해서 갖는 친밀함을 덜지 못했다. 그는 30년 묵은 옛길을 그것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새로움을 가지고 쏘아보았다.
길 건너 청과전에는 귤과 노랑, 파랑, 빨강 사과들이 탐스럽게 쌓였다. 그는 문득 손가락들을 바짝 말아서 쥐는 태권도식 주먹으로 그 과일들을 내리치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는 그리로 건너갔다. 그리고 주먹을 내리치는 대신에 귤 두 개를 샀다.
--- p.223

“멋쟁이고 돈 많고 학식 많고, 왕년에는 다 알아주는 한량이었지. 거, 시키지 않고 왜 직접 부엌 출입을 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것 쉽다. 너늠마 어려운 것은 알고 쉬운 것은 모르냐? 며느리가 미안해서 그랬다. 왕년이 무슨 소용이냐? 왕년에 끗발 안 선 사람 있냐?”
“하, 그때, 일이 요상하게 될라고, 며느리가 불 켜진 것을 보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어머, 아버님, 저녁 식사 한 지가 얼마나 된다고.”
“식사라니, 거기가 군대냐? 식사 군기가 문란하냐? 왜 요즘 것들은 아무한테나 식사를 앵기냐?”
“며느리는 무심코 말했다. 그것이 아까웠겠냐? 전생에 원수 졌냐? 시아버지도 조금 무안했겠지만, 그게 뭐 어떠냐? 허, 허, 내가 널 깨웠냐? 가서 자거라. 오냐, 어서 자거라. 그러고 끝났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왜 아무 일도 아니냐? 음식 끝이 얼마나 맵고 모지다고! 한술 밥에 눈물 난다. 점잖은 노인이 음식 끝에 뽀쳤으니, 그 체면을 어쩔거나.”
“니가 남의 속을 어찌 그리 잘 아냐?”
“그것이 남의 일이냐?”
--- p.3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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