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야, 너에게 쓰는 첫 편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그래, 네가 엄마 몸속에 깃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부터 알려 줄게. “고맙습니다!” 누구에게든 상관없이 엄마는 먼저 감사 기도를 올렸단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네 소식을 알렸지.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어. 그리고 나서부터 엄마에게는 밥을 먹는 일이 아주 중요해졌단다. 내가 먹는 밥이 우리 아기가 되는구나. 엄마가 먹는 밥 한 술, 물 한 모금이 너의 피와 살과 뼈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은 거야.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엄마 온몸의 기운들이 배 속 깊은 따스한 곳에 자리 잡은 너에게 쏠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니까. 온 마음이 너를 위해 온전히 힘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오늘 먹는 밥 한 그릇에 고마워한단다.
- 첫 번째 편지 ‘밥’|아가에게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에는 3,000~4,000개의 쌀알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벼 세 포기에서 나오는 낟알의 수라고 해요. 논에서 이 벼 세 포기가 자라는 공간에는 물벼룩 5,093마리, 투구새우 4마리, 올챙이 35마리, 풍년새우 11마리 등 무수한 생명들이 함께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 건강한 논에서 말이죠. 논에 사는 뭇 생명들과 함께 햇볕과 별빛, 바람과 비를 공유하며 자라난 벼를 생각하면 ‘밥 한 그릇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을 다시 배워 가는 일이랍니다. 늘 먹던 밥 한 그릇에서부터 말이죠.
- 첫 번째 편지 ‘밥’|엄마에게
우리가 바다에서 왔다는 것은 고래를 보면 알 수 있단다. 고래와 우리는 아주 가까운 친척이거든. 고래는 사람들이 아기를 낳는 것처럼 새끼를 낳아 젖을 먹여 기른단다. 물고기들이 알을 낳는 것과는 사뭇 다르지. 아가야, 엄마 몸속에 샘물처럼 솟아난 물이 어느 순간 네가 헤엄칠 수 있는 작은 바다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참 신기하구나. 엄마의 바다, 이렇게 불러만 보아도 기분이 참 좋아지는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자랑하고 싶단다. “보세요. 공처럼 부풀어 오른 제 배 속에 바다가 있어요. 우리 아기가 고래처럼 헤엄치고 있어요. 제 몸 안에 물의 나라가 있거든요.”
- 다섯 번째 편지 ‘물’|아가에게
사실 “우리는 물이다!”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심지어 아기는 수정란 상태일 때 99%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요. 그러니 아직 배 속에 있는 아기를 직접 느껴 보고 싶다면 생명이 살아 있는 물을 만나 보세요. 깊은 산 속 옹달샘을 찾기 어렵다면 야트막한 시냇물에라도 직접 손과 발을 담가 보세요. 송사리가 헤엄치고 물풀이 숨을 쉬는 냇물이 손가락 발가락 사이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며 아기에게 말해 보세요. “아가, 우리는 모두 물이란다!”
- 다섯 번째 편지 ‘물’|엄마에게
생명을 가진 씨앗 하나가 자라서 우리 아기의 살이 되고 피가 되고 뼈가 되고, 머리와 가슴, 배, 팔과 다리를 만들지. 또 예쁜 너의 얼굴에는 세상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이야기할 수 있는 눈과 귀와 코와 입을 만들지. 네 작은 몸속에도 엄마와 아빠처럼 우리 몸에 꼭 필요한 것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차근차근 만들어지고 있단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 모두 네가 한 일이란다. 엄마는 그저 배 속에 방을 만들어 돕고 있을 뿐이야. 그러니 너야말로 세상 누구도 돈을 주고 대신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엄마 배 속에 있는 고작 열 달 동안 완벽한 사람의 몸 하나를 만들어 낸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지, 새삼 놀라고 있단다.
- 열한 번째 편지 ‘몸’|아가에게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