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법도가 준엄하고 귀천의 자리가 엄격했던 조선 시대.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해서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사림들의 권력 다툼으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혼란이 극에 달했던 광해군 8년, 서인과 소북 세력의 견제와 독살 위협에 점점 난폭해져 가던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과 똑같이 닮은 자를 찾아오라는 밀명을 내린다. 그 때문에 기방에서 놀고먹던 천한 광대 ‘하선’이 임금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왕의 자리에 오른 것. 외모는 물론 목소리까지 놀랍도록 닮은 하선은 영문도 모른 채 궁에 끌려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동안 왕의 대역을 하게 된다. 비록 흉내라고는 하나 임금의 자리에 오르자 하선은 비로소 깨닫는다. 임금의 자리는 다 가진 것 같아도 제 사람 하나 온전히 가질 수 없는 외로운 자리란 것을. 진짜 임금은 백성을 웃게 하고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광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2의 광해군을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다” 지난 500년 동안, 새로운 강국이 태어날 때마다 한반도는 예외 없이 전쟁터가 되었다. 14세기 후반 원명교체기 홍건적의 고려 침입, 16세기 후반 임진왜란, 17세기 초반 병자호란, 19세기 후반 청일전쟁 등이 그러했다. 네 차례 모두 한반도는 자신의 ‘의사’를 변변히 표시하지도 못하고 이렇다 할 지렛대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강대국 간 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었다. 비록 내정에 발목이 잡혀 뜻을 관철시키지는 못했지만 광해군은 명과 만주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악전고투했던 임금이었다. 그래서 역사 교사들이 광해군을 가장 재평가가 필요한 인물로 꼽는지도 모르겠다. 주변국들의 도발이 심상치 않은 지금, 내정과 외교에 모두 탁월한 제2의 ‘광해군’을 기다리며 이 책을 읽었다. -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