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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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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인 2

[ EPUB ]
진해림 | 가하 | 2012년 11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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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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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29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0.2만자, 약 6.5만 단어, A4 약 127쪽?
ISBN13 9788966474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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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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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진해림
인터넷 상에서는 류엘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역사로맨스 홍연, 창연, 흑루, 화인, 적루와 판타지 로맨스 카인의 연인, 마황의 연인을 출간한 작가.

둥지로 여기고 있는 로망띠끄와 줄리엣의 발코니 외에는 절대로 출몰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음.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에 근거하여 만들어낸 필명에 무한한 자부심을 품고 있음.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유친왕 전하.”
강현의 처소는 제국의 친왕이 잠드는 것치고는 무척이나 간소했고, 또한 황량했다. 철저히 실용성만을 강조한 침상과 책상, 그리고 탁자 하나가 전부인 침소 안은 고요한 적막으로 가득했다.
얼핏 보기에는 사람이 없나 싶어서 발을 들여놨다가도 돌아설 법한 광경. 그러나 겸후는 벽 한쪽에 기댄 채 창 너머 하늘을 응시하는 강현의 모습을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거기 계셨던 겁니까, 전하.”
분명 겸후의 시선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강현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자신이 그림자가 된 듯, 어둠의 일부가 되어버린 듯한 모습. 그가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날 건드리면 위험하다고 여화가 말해주지 않았나, 사겸후.”
“……듣기는 했습니다만, 지금은 마마의 상태가 더 위급합니다.”
“여화도 있고 네놈도 있다. 여차하면 후성에게 따로 허락을 받아내어 그 잘난 스승님인지 나발인지도 데려올 수 있을 거다. 한데 왜 나인 거냐.”
“아마도 그건, 전하께서 예안성까지 오신 것과 같은 이유일 겁니다.”
한순간, 강현의 눈 속에 시퍼런 한기가 번득였다. 인간의 몸으로는 쉬이 감당해낼 수 없는 살기가 전신을 꿰뚫었지만, 겸후는 지그시 주먹을 움켜쥐며 그 자리에서 버텼다.
“정말로 죽고 싶나. 지금의 내게 네놈을 베지 못할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다.”
“전하께서 마마께 가시지 못할 이유 또한 하나도 없지요. 한데 왜 예서 망설이고 계십…… 니까.”
잠시나마 겸후의 말이 머뭇거린 것은 강현이 소리 없이 비검을 내지른 탓이었다. 파르스름한 검날은 순식간에 겸후의 목울대에 닿았고, 겸후는 미미하게나마 살이 베이면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라리 절 베고 마마께 가십시오. 전하께서는 그래야만 합니다.”
“겁을 상실하다 못해 미친 거냐.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만 돌아가라.”
“마마를 사랑하시잖습니까……. 마마께서도 같은 마음이신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겁니까!”
격양된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강현의 주먹이 겸후의 얼굴을 후려쳤다.
퍼억……!
피를 토해내며 쓰러진 것도 잠시, 겸후는 강현을 올려다보며 하얗게 웃었다.
“전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다는 거로군요. 참으로 다행입니다.”
“…….”
처음으로 강현은 더 말하지 않은 채 고개 돌렸다. 그는 제 검을 검집에 꽂아 넣은 뒤 또다시 벽에 기댄 채 눈감아 버렸다.
더는 말하지 말고 자신을 내버려 두라는…… 무언의 명령. 강현의 속을 조금이나마 눈치 챈 겸후는 천천히 예를 갖추었다.
“하면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또 내 속을 긁으면, 그때는 정말로 죽인다.”
겸후가 말없이 침소를 나간 뒤, 강현은 그제야 참고 있던 한숨을 내뱉었다. 서늘한 공기 중에 부옇게 흩어지는 입김은, 그가 지금 인간의 육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 영혼의 본색이야 명계의 사신이든 무엇이든 간에, 겉으로는 여느 인간들처럼 무예를 갈고 닦으며 공명을 추구하고, 혹은…… 한 여인을 갈망하여 품을 수 있는 사내라는 것.

- 마마께서도 같은 마음이신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겁니까!

형벌을 살게 된 이후 인간의 육신 속에 갇힌 채 줄곧 인간의 생을 살아왔기에, 사내와 여인의 마음이 오롯이 이어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한다 하여도 여건이나 상황이 허락지 않으면 헤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조건에 맞춰진 결합은 겉보기에는 그럴 듯해도 당사자들의 속내를 깎아먹기 마련이었다.
그렇듯 어려운 것이 사내와 여인의 마음이건만, 어째서 그들만큼은 마음이 잇닿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힘겨워해야만 하는 것일까…….
‘알고 있나, 린? 아니…… 련. 너는, 언제고 간에 화인을 자각한 순간 이 모든 것들을 미치도록 생생하게 깨닫게 될 거다. 삼백 년 전 네가 저지른 죄가 우리들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왔는지…… 너로 인해 지금의 나와 네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말이다…….’


강현이 이린의 처소를 찾았을 때는 이미 달이 하늘 한복판까지 올라앉은 늦은 밤중이었다. 그 앞에는 여화와 겸후가 여전히 굳게 잠긴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저러다가 아예 복도에 선 자세 그대로 돌기둥이라도 될 법한 기세라 해야 할까. 헛웃음을 흘린 그는 소리 없이 다가가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그것이 엄연한 축객령임을 알아챈 여화는 조용히 예를 갖추었고, 겸후는 목소리를 낮춰서 강현에게 인사했다.
“감사…… 합니다, 전하. 정말로 감사합니다.”
“누가 네놈에게 감사 인사 따위나 들으려고 온 줄 아나. 시끄러우니 그만 가라.”
“……공주 마마를 부탁드립니다, 유친왕 전하.”
감히 누가 누구에게 부탁이니 어쩌니 하는 것인지. 강현은 가뜩이나 민감하게 곤두선 제 속내를 감춘 채 비검을 빼들었다. 겸후가 무심결에 입을 벌린 순간, 그는 굳게 닫혀 있던 문을 그어버렸다.
쿵……!
두터운 문이 아예 반으로 쪼개지면서 떨어지는 사이, 강현은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과감한 모습에, 겸후는 나지막한 한숨을 흘렸다.
“참으로…… 거침없는 분이긴 하시군요.”
“그만 가시지요, 사 공자. 주변에 있던 자들을 물려둔 데다 지금은 전하께서 계시니, 더는 명온전 안에 있지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시선을 교환한 겸후와 여화는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났다. 마음 같아서야 이린의 상태가 어떠한지, 그녀가 어떤 얼굴로 있을지 확인하고픈 심정이었지만…… 그것을 해줄 이는 따로 있었다.
충실한 두 수하가 물러나는 사이, 강현은 어둠에 잠긴 처소를 느릿느릿 훑어보았다. 그녀의 침상은 주인 없이 텅 비어 있었지만, 그가 눈여겨본 것은 다른 방향이었다. 열려진 창가 밑, 벽과 벽이 맞닿아 있는 곳, 그리고…… 침상 뒤쪽.
해답은 맨 마지막에 있었다. 이린의 긴 머리칼은 침상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강현은 천천히 그녀 앞에 다가섰다.
“뭐하는 거냐, 너.”
“…….”
예전 같으면 무어라 한두 마디쯤은 능히 대꾸했으련만, 지금만큼 이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침상 뒤쪽에 몸을 웅크린 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할 뿐, 강현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 무기력한 모습을 보자 불현듯 화가 치밀었고, 그는 거칠게 이린의 어깨를 잡아챘다.
“날 봐……. 날 보고 말해 보란 말이다. 다른 자들에게는 혼자 내버려 두라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며 잘도 말해 놓곤, 왜 내게는 입을 닫고 있는 거냐.”
비록 겉으로야 그리 사납게 말했을지언정, 강현은 이미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그들 일행이 예안성에서 빠져나온 직후, 그가 간신히 정신이 든 그녀에게 모질게 내뱉었던…… 말들. 그렇듯 아픈 모습 보일 바에는 차라리 죽으라고, 더는 그에게 수고를 끼치지 말라면서 냉혹하게 말했었는데, 어떻게 이린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보며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저가 한 말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이린의 얼굴을 제 가까이 끌어당기며 몇 번이고 그녀를 채근했다.
“대답해, 린!”
일순, 멍하니 흐려져 있던 이린의 눈 속에 약간이나마 빛이 반짝였다. 천천히, 그녀는 강현을 마주보았고, 까칠해진 입술을 달싹였다.
“가세요, 제발……. 당신 얼굴……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어째서?”
그의 계속되는 질문이 지독히도 이율배반적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간 그녀를 저어하며 머리카락 하나라도 보일라치면 먼저 피해버린 것이 누구였던가. 삼백 년 전에 그녀가 그에게 죄지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생의 그녀에게 먼저 상처 주어버린 강현이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이전의 일들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강현은 반쯤 으르렁대며 이린을 몰아붙였고, 기어이 그녀의 눈 속에 물기가 차오르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당신은, 대체 왜 내게 온 거예요……? 또 나를 미워할 거면서……. 원망하고 또 원망하다 못해, 다시 피할 거면서…….”
“린.”
강현이 이린의 팔을 붙잡으려는 순간, 돌연히 그녀가 매섭게 그의 손을 쳐냈다. 생채기 가득한 이린의 얼굴은 상처 입은 짐승의 것처럼 잔뜩 곤두서 있었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내가 아니잖아요. 당신, 날더러 차라리 죽어버리라 했잖아요……. 그러면, 죽는 것만큼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게끔 내버려 두지 그랬어요……. 한데, 왜……!”
차라리 말하라며 채근하지 말 걸 그랬던가. 강현은 그녀의 젖은 음성이 심장 속에 칼날처럼 박혀드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아마도 그녀는 꿈에서조차 짐작하지 못하리라. 그가 무엇 때문에 고뇌하는 것인지, 어째서 저를 외면하고 그렇듯 냉정한 말들로 상처 주는 건지…… 결코 알 수 없으리라.
그의 반응을 오해한 듯, 이린이 처연한 표정을 떠올렸다.
“말해봐요, 강현……. 당신, 왜 그때는 날더러 목숨만은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한 거죠? 당신은…… 어떤 필요로 날 데려온 거예요?”
“그만해, 린.”
“아니, 그만할 수 없어요. 그러니 어서 대답해봐요. 내가 당신 옆에 살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대체 뭐예요? 나는…… 대체 당신에게 무엇인 거죠? 설마…… 련이라는 여자의 대신인 건가요?”
“그건 아니다.”
네가 바로 련이다, 린. 그녀를 대신할 수 있는 여자란 내게 결코 존재하지 않아. 그런데도, 너는…….
강현은 목구멍 너머로 치밀어 오르는 외침들을 가까스로 삼켰다. 제기랄, 빌어먹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말할 수 없다는 제약이 이토록 비통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속 시원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그래 그렇게 그녀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면……!
갓 열다섯이었던 그녀를 처음 보았던 5년 전의 그때라면, 서운이린이란 여인이 그에게 어떤 필요가 있는 존재인지 분명하게 정의내릴 수 있었으리라. 화인을 자각하기만 하면 곧바로 죽여야 하는 여인, 인간의 몸속에 갇힌 채 수없이 많은 생을 거듭해온 그의 형벌을 끝내기 위한 도구, 그리고…… 삼백 년 전에는 사랑했으되, 이제는 오직 복수와 미움만이 남아 있을 뿐인 상대.
하지만 지금, 지금은…… 모든 것이 철저히 어그러져 있었다. 그저 미워하려 했건만 그녀의 아픈 모습에, 변함없이 그를 똑바로 응시하는 그 까만 눈에 시선이 끌려 버렸고, 이제는 아예 이린의 몸만이 아니라 마음마저 품어버린 상태였다. 삼백 년 전처럼 그녀의 모든 것을 원했으며, 또한…… 사랑하고 있었다.
이린이 강현의 허리춤에서 비검을 집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눈물 가득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강현의 손에 비검을 쥐어주었다.
“차라리, 지금 죽여요……. 지금이라면 죽어 줄 수 있어요……. 숨 쉬는 것조차 아파서, 지금이라면…… 당신 손에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니…….”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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