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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UB ]
진해림 | 가하 | 2012년 11월 0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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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2년 11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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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28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9.6만자, 약 6.3만 단어, A4 약 123쪽?
ISBN13 9788966474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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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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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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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진해림
인터넷 상에서는 류엘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역사로맨스 홍연, 창연, 흑루, 화인, 적루와 판타지 로맨스 카인의 연인, 마황의 연인을 출간한 작가.

둥지로 여기고 있는 로망띠끄와 줄리엣의 발코니 외에는 절대로 출몰하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음. 부모님이 지어주신 본명에 근거하여 만들어낸 필명에 무한한 자부심을 품고 있음.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마마, 좀 드셔 보시지요.”
이린은 그녀 앞에 놓인 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제 나라를 잃고 유명무실해진 공주에게 주어진 것치고는 꽤나 정갈한 음식들. 하지만…… 이런 것 따위가 무슨 소용일까. 한비성 지하 감옥에 갇혀 있다는 대장군과 겸후를 떠올린 그녀는 질끈 눈 감아 버렸다.
“먹고 싶지 않으니 상을 물려주세요.”
“하지만, 공주 마마. 오늘로 벌써 이틀째입니다. 이대로 계속 곡기를 끊으실 참이신지요.”
“그리하겠다면, 어쩔 건가요. 강제로 입을 벌리고 음식을 들이밀기라도 할 건가요?”
“마마.”
이린은 여화를 외면하며 고개 돌렸다. 할 수만 있다면 그녀 곁을 감시하는 자들을 제압하고 예서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처소 곳곳에 배치된 여인들은 범상한 자들이 아니었다. 일개 시녀조차 암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언제라도 칼을 들 수 있을 정도였으니……. 그 무엇도 할 수 없다면 차라리 굶어 죽어버리자 다짐하며 상을 물린 것이 벌써 여러 번이었다.
“대장군께서는, 사 공자께서는 어찌 지내고 계시는지 알고 있나요?”
“죄송합니다, 마마. 저는 유친왕께서 허락하신 것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유친왕 주강현, 그 비열한 사내……! 이린의 여윈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는 여화를 향해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가서 귀황자에게 전하세요. 이대로 죽어버릴 테니 마음대로 하시라 말이에요. 포로로 끌려왔다 하지만 죽는 것만큼은 제 자유입니다.”
“제법 강단은 있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넌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린.”
한순간, 이린의 감겨진 눈이 번쩍 떠졌다.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 그곳에는 강현이 문가에 기댄 채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그를 본 모든 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수그리며 예를 갖추었다.
“유친왕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아무래도 여기 있다가는 저 여자 눈빛에 다들 타죽을 것 같군. 모두 물러가라.”
살의 가득한 이린의 눈빛을 정면으로 받고도 그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현은 이린의 하얀 얼굴이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찰수록 짙은 미소를 떠올리고 있었다.
“한 번도 굶어 본 적 없지? 인간의 오장육부는 그렇게 쉽게 제 기능을 잃지 않는다. 제아무리 죽고 싶다 생각해도 육신의 어딘가에서는 발버둥치기 마련이지. 그걸 이기고 제 목숨을 끊어버릴 만큼 강한 자만이 생계의 원혼으로 남는 거다, 린.”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시지요, 귀황자 전하. 당신에게 허락한 적 따위 없어요.”
“허락 따위, 애초부터 받을 생각도 없었어.”
강현은 그림자처럼 처소를 가로질러 이린의 곁에 섰다. 꼿꼿하게 침상에 앉아 있는 그녀를 내려다본 그가 길게 흐트러진 흑발을 움켜쥐었다. 제법 고왔건만, 그간 많이도 상했군.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린이 거칠게 강현의 손을 후려치며 무언가를 휘둘렀다. 그녀의 손은 어느 틈에 날선 유리조각을 움켜쥐고 있었다.
피에 젖은 유리조각이 그의 목 가까이 날아든 순간, 강현은 벽력처럼 손을 뻗어 이린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해묵은 흉터에서 싸한 통증이 올라오는 것을 느낀 그녀의 몸이 움찔했고, 그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이린의 손안에서 유리조각을 빼앗았다.
파사삭.
“대체 무슨……!”
“보면 모르나. 이젠 제법 공평해졌군, 공주님.”
이린의 눈은 황망히 굳어진 채 강현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숫제 가루가 되어버린 유리조각을 움켜쥔 그의 주먹에서는 쉴 새 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쓸데없이 피나 보려고 널 데려온 게 아니다. 네 피는 단 한 번이면 족해, 린.”
화인을 자각한 순간, 이전 생들의 모든 기억과 힘을 되찾은 너의 피. 강현은 유리조각을 내팽개치고 피투성이가 된 이린의 손에 입술을 가져갔다.
“흐윽……!”
그녀는 진저리치며 그를 밀어냈지만, 사내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가녀린 몸을 벽에 한껏 밀어붙인 강현은 그녀의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려붙였고, 새하얀 손안에 묻어난 피를 삼키며 나직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제대로 반항할 수 없어서 기분 더러운 거 안다. 그러라고 하는 거니까, 마음껏 절망하도록 해.”
“당신…… 대체 뭐죠? 나에게 왜 이러는 거예요?”
분노로 가득한 와중에도 이린의 얼굴은 황망한 표정을 떠올리고 있었다. 대체 이 사내는 어째서 그녀에게 이러는 것이란 말인가. 분명 처음 본 사람이고 면식조차 없었건만, 무엇 때문에 그는 자신을 예까지 끌고 와 괴롭히는 것일까. 어째서……?
이린은 강현의 팔 안에서 연신 몸부림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대신에 그는 그녀의 몸을 침상에 내던졌고, 힘없이 이불 속에 파묻힌 이린은 가까스로 고개를 들었다. 강현은 침상에 걸터앉은 채 차분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글쎄. 네가 생각하기에는 무엇이 정답인 것 같지, 린?”
“모르겠어……. 나는 당신을 처음 보는데, 내가 어찌 답을 알 수 있겠어요! 그러니 더는 사람 잡지 말고 대답해요, 귀황자……. 왜 나를 이렇게 미워하고 괴롭히는 거예요? 어째서 내 스승님을, 겸후 오라버니까지 끌고 온 거야!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한단 말이야!”
이린의 마지막 음성은 비명 섞인 절규로 바뀌어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 또한 이유를 알지 못했었다. 귀황자가 남야성까지 진격해왔으며, 성벽의 비밀 통로를 정확히 노리고 수작을 부린 까닭, 그리고…… 사무흔과 겸후까지 포로로 잡아온 이유.
그러나 지금, 지금은……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귀황자 주강현은 바로 그녀, 서운이린을 목적으로 주안국까지 온 것이며…… 그녀를 죽도록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쟁에서 포로가 된 비빈이나 왕족 여인들의 처지가 그러하듯, 차라리 그가 그녀의 몸을 유린하기라도 했다면 분노하긴 해도 수긍할 수는 있었으리라. 그러나 강현은 제국의 한비성까지 오는 동안 그녀를 제 곁에 두면서 단 한 번도 몸을 탐한 적이 없었다.
그는 그녀가 탈출을 시도할 때마다 친히 제 손으로 붙잡아왔고, 이린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자들을 보여주며 그녀가 뼛속 깊이 절망하는 것을 즐겼다. 무엇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철저한 무기력감. 대체 그녀가 그에게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토록 잔인하단 말인가. 참으로 지독한,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이린은 가슴속 깊이 맺혀 있는 숨결을 토해냈다.
처음으로 강현의 얼굴에 웃음이 걷히면서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
“넌 전부 다 잊은 채 참으로 속 편하겠군. 조금은…… 부러운걸.”
“그건 또 무슨 소리죠?”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부럽군. 덕택에 나는 홀로 미친놈처럼 굴고 있으니 말이다.”
무슨 소리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일단 저가 미친 것을 알긴 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린은 치를 떨며 날선 음성을 흘려보냈다.
“귀황자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보군요……. 혹여나 다른 여인과 착각한 건 아닌가요?”
“그건 아니다. 널 알아보지 못할 만큼 쓸모없다면, 내 눈이라 해도 미련 없이 파내 버렸을 테니까.”
강현은 이린에게서 손을 뗐고,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차갑게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는 일말의 감정조차 서려 있지 않았다.
“앞으로 이틀간 나는 여기에 없을 거다. 자해만 않는다면 봐줄 테니 마음대로 해. 물론 그 결과는 오롯이 네 몫이다, 린.”
이린은 망연한 눈으로 굳게 닫힌 문을 응시했다. 잔인한, 정말로 잔인한 자. 그러면서도 한없이 기이한 사내. 대체 그들이 남야성에서의 전투 전에 언제 만난 적이 있다고 저렇듯 그녀를 일방적으로 증오하는 것이란 말인가.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린. 저 사람이나 나나, 한 나라의 황족이고 왕족이니…… 어떻게든 스쳐 가듯 마주칠 가능성은 있어. 하지만…… 내가 대체 무엇을 어찌했기에? 나는, 그 이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어.’
귀황자는 정말로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러나 제정신이 아닐 뿐이라고 간주하기에는 그녀를 응시하는 강현의 눈이 지독히도 황량했던 것이다. 짙은 웃음과 조소 어린 미소로 감출지언정 결코 감출 수 없었던 공허함, 그리고…… 뼛속 깊은 고독.
그녀는 무기력하게 벽에 기대었다. 흐트러진 긴 흑발이 스르륵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스승님……. 이제 스승님과 저, 오라버니는 어찌되는 걸까요……. 부상당하신 곳이 괜찮으신지, 무탈하신지 살펴보고 싶은데…… 그리할 수조차 없어요…….’
저는…… 두렵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내일이,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그 사람이 두려워요…….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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