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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 가는 길

마실 가는 길

솔시선-28이동
류지남 | | 2019년 10월 1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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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120쪽 | 188g | 128*200*12mm
ISBN13 9791160200928
ISBN10 116020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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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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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것들이 있다
세상에 쓸모가 있는 것들은 어디론가
살짝 구부러져 있다 구부러진 길 안쪽에
사람의 마을이 산다 지붕과 밥그릇은 한통속이다

구부린다는 건 굴복하는 게 아니다
뭔가를 품는 것이다 숟가락의 구부러진 힘이
사람의 목숨을 품는다 뻣뻣한 젓가락으로 뭘 품으려면
대신 구부러진 손가락이 있어야 한다
--- 「구부러진다는 것」중에서

너무 빨라서, 슬픈 것들이 있다

젖소 송아지는 어미 배 속에서 나온 지
채 십 분도 안 돼 걸음마를 시작한다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며 오체투지라도 하듯
젖을 찾아 하염없이 노를 저어 나아가보지만,
이마의 양수가 다 마르기도 전에 그만
덜컥 쇠철망 안에 위리안치를 당하고 만다

(……)

저쪽 울타리 너머에서
새끼의 모습 안쓰럽게 바라보던 어미가
음메- 하고 울면서 제 새끼를 부르면
새끼도 고만, 에미 목소리인 줄을 어찌 알고
고개 돌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음마-, 하고 제 엄마를 한번 불러보는 것이다
--- 「빠른 슬픔」중에서

어쩐 일인지 며칠째 안 보이던 깜순이가
어디선가 머리가 까만 병아리 한 마리를
불쑥 데리고 나타난 것이었다 까만
머리가 꼭 깜순이를 빼다 박았기에
어디선가 몰래 알을 품었나 보라며
참 별스런 일이 다 있네 하는 마음에
이름을 ‘기적이’라고 붙여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무렵이었을 것이다
까맣던 기적이의 머리털이 그만
점점 노랗게 변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줄 아는지 모르는지 둘은 여전히
한 몸처럼 돌아다니는 걸 바라보노라니
가슴 한쪽이 자꾸 먹먹해지는 것이었다
--- 「먹먹한 일」중에서

류지남 시인의 시집 『마실 가는 길』은 따듯하다. 불꽃 잦아든 발간 숯의 미열 같고 시린 손과 몸을 맞춤하게 데워주는 아랫목 밥그릇 같은 온도를 품고 있다. 그 온도는 크게 소리를 내거나 과장하지 않는 솔직한 시선과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농촌 시골의 마을 풍경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인의 정겨운 모습이 떠오른다.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시대와 도시 중심으로 구성되는 사회 구조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을 시적 대상으로 삼은 것은 시인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어 가능하다. 평소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시인의 눈길이 그러하듯, 이는 다른 것들을 품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에 근원적으로 닿아 있다.
--- 「해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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