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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걷다

나무 걷다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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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1월 1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356g | 156*216*20mm
ISBN13 9788967850012
ISBN10 8967850018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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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현미
서울대에서 학사를, 뉴욕대에서 석사를 했다. 뉴욕, 서울, 싱가폴, 이태리 등 국내외에서 15차례 개인전과 130여회의 그룹전을 했으며 일우 사진상, 모란 미술상, 아모스 이노상 등을 수상했다. 사진설치 영상 단편영화 등의 시각 창작 예술 분야를 종횡으로 넘나들다가 이 모든 것을 수리수리 하나로 뭉쳐 사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의 이미지는 조각 같기도 하고 회화 같기도 한 사진이다.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국내외적으로 인정을 받아 활발히 활동중이다. 그녀의 작품은 시립미술관, 경기도 미술관, 타워팰리스 등에 소장되어 있으며 저서로는 『아트맵』이 있다. 요즘은 시, 단편소설 등의 문학과 영상, 건축등의 시각 예술분야를 엮는 작업에 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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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이 작은 동산에 태어난 것.
나무인 것.
나무이기에 이곳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 모두를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들였기에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과 열망은 금기인 듯
가슴속에 꾹꾹 눌러 놓았다.
그러나 압사시켰다고 믿었던 욕망들은 다만 압축되고 있었을 뿐
사라지기는커녕 지층처럼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러다가 이맘때면 봄바람을 타고 도로 터져 나와
나무의 마음을 온통 헤집어 놓았다.--- p.9

나무는 자신감과 요령을 터득해 발걸음의 크기를 조금씩 넓혀 갔다.
한 뼘 반,
두 뼘….
여섯 번의 걸음 끝에 겨우 1미터쯤 이동했다.
식은땀이 표피를 타고 방울방울 맺혔다.
고작 1미터 남짓 이동했을 뿐인데 햇빛도 바람도 다르게 느껴졌다.
걸으면서 보는 풍경은 매일 보던 풍경이건만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공기마저도 더 달콤한 듯했다.--- p.27

생각에 잠겨 정처 없이 발걸음을 옮기던 나무 앞에 황량한 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찌나 메마른지 짐승은커녕 풀 한 포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올라가는데 갑자기 땅이 흔들리더니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잿빛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온 시야가 어둑어둑해지더니 산꼭대기에서 시뻘겋게 달아오른 뜨거운 물이 용솟음쳤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을 분출한 것이다.
산 정상에서 뿜어 오른 용암은 무서운 속도로 아래로 달려 내려와 모든 것들을 덮치며 순식간에 재로 만들었다.--- p.57

걷는 나무는 이제 조금씩 여행에 여유를 갖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무리해서 서둘러 가기보다는 천천히 걸으면서 가끔씩 휴식도 즐겼다.
걷는 나무가 마침 커다란 나무 그루터기를 찾아 기대어 쉬고 있는데 토끼 한 마리가 나무에게 다가왔다.
토끼는 입을 오물거리며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나무는 토끼의 입술 움직임을 보고 토끼의 말을 겨우 읽어낼 수 있었다.
“나에게 빨리 조언을 해 줘.”
“무슨 조언?”
“글쎄, 무슨 조언이든 괜찮아.”
“왜 나한테 조언을 해 달라는 거야?”
“다른 이들의 말을 잘 경청해야 인생에 실수가 없는 법이거든.
내가 뭘 원하는지 앞으로 뭘 하면 좋은지, 그런 것들은 정말 헷갈리거든.
내 귀가 왜 커졌는지 알아? 다른 사람의 조언을 열심히 듣다 보니 진화되어 이렇게 된 거야.”--- p.70

가을이 되자 우려하던 것과는 달리 걷는 나무는 열매도 맺었다.
꽃이 그러하듯 열매들 또한 작고 볼품없었다.
하지만 속은 실한 열매들이었다.
걸을 때 마다 열매들이 흔들려 떨어지기도 했지만
그것들은 겨울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개미들을 기쁘게 해주었다.

가을이 깊어 오자 걷는 나무도 단풍으로 물들었다.
숱 적은 이파리들일망정 울긋불긋 물든 모습이
당당히 가을 풍경의 일부가 되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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