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북한 해외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국가는 러시아, 중국, 몽골,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앙골라, 말레이시아, 오만, 리비아, 나이지리아, 알제리, 적도기니, 에티오피아, 폴란드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스트리아, 독일 등 유럽연합(EU) 회원국가들에서도 북한 해외노동자의 존재가 파악되고 있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소위 ‘외화벌이’ 수입은 UN 보고서에 의하면 12~23억 달러로 추산되는데, 일각에서는 이 수치가 과장되었다고 지적하며 연간 수억 달러 정도로 보기도 한다. --- p.10
타국 출신 노동자에 비해 근면하다는 점도 있으나 북한 노동자가 선호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집수리 등과 관련된 계약이 일당제가 아니라 도급제로 계산되기 때문이며 이 경우 북한 노동자가 여타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 좀 더 유리한 입장에 있다. 예를 들어, 집수리 공사 최소 비용이 10만 루블(약 1,870달러, 2014년 10월 기준)일 경우 러시아 노동자들은 공사기간 한 달에 20만 루블을 청구하는 반면 북한 노동자들은 보름 동안 10만 루블에 일을 끝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정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며, 중간에 휴식시간도 갖지만 북한 노동자는 아침부터 밤 10~1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심지어 작업장에서 숙식까지 하면서 공사기간을 단축한다. 이렇게 해서 남은 15일 동안 새로운 일거리를 맡을 수 있게 된다. --- p.84
최근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북한 노동자들에게 허용된 전화는 오로지 중국산 구식 핸드폰으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제품이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은 따로 일감을 얻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며 스마트폰을 쓰다 보면 일감에 관련된 것 외에 인터넷을 검색할 기회가 생긴다. 2009년쯤부터 사할린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 스마트폰이 유행하기 시작해, 현재는 거의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이를 가지고 있다. (…) 이렇게 검열에 걸렸을 경우에 노동자들은 “얼떨결에 눌렀는데 그렇게 됐다”는 식으로 변명하지만 관리자들은 대개 인정하지 않는다. --- p.87-88
‘토끼’는 일종의 ‘행방불명자’로 탈북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토끼’가 된 사람들은 보위부와 당 기관에서 파견한 인력들에게 쫓겨 다닌다. 이들을 피하기 위해 ‘토끼’들은 시골로 숨어들거나 러시아 여자나 고려인 여자와 같이 살기도 한다. ‘토끼’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일설에 따르면 연해주 우수리스크시의 경우 약 5,000명 정도가 있다고 하는데 일부 과장된 표현으로 보이며, 러시아 전역에 걸쳐 20,000명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는 없다. --- p.88-89
유럽연합 내에서 노동자의 법적 지위와 관련하여 법의 준수와 집행을 촉구하는 여러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히 독특한 사례였다. 유럽연합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세계 다른 지역에 파견된 이들과 마찬가지로 재정적인 동기에 의한 것이지만, 그 과정은 초기부터 합법을 가장하여 이루어졌고, 지속적으로 합법성 내에 그 체계를 담고자 노력하였다. --- p.168
북한 해외노동자의 경우 해외에서의 정착을 목적으로 하는 이주는 아니지만, 더 많은 소득 확보를 위한 단기 이주라고 볼 수 있다. (…) 경제위기 시절 상품을 운반해 주거나 심부름을 해 주고 한 끼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비공식 고용의 시초를 이루었고, 고난의 행군 이후 소비재 시장과 서비스 시장이 증가하면서, 계획 외의 사적 영리를 추구하는 개인들에게 비공식적으로 고용되는 노동자들도 증가했다. 요컨대, 북한에서 1990년대 중반 이래로 지속되고 있는 경제위기, 국가에 의한 일자리 배치와 임금·식량 배분 등 생활보장 체계의 붕괴, 시장화의 진전에 따른 북한 사회 내부의 계층 분화 등이 북한 해외노동자들이 단기이주를 하도록 하는 유출요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p.199-200
현실적 사례를 들어 설명하자면, 북한 주민들은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차별·배제 등 인권 침해 실상을 소상히 인지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사회에서 2등 시민으로서 환멸과 후회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면, 한국의 그 어떤 인권 관련 대외 정책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프로파간다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 p.219
북한 해외파견노동자를 강제노동의 피해자로 규정짓는 주류적 태도는, 북한 노동자들이 해외파견을 선호하는 동인, 해외 파견지에서의 수용과 저항의 동학,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북한 노동자들의 주체적 욕구를 구체적으로 살피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이러한 접근법은 북한 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전략과 맞물리면서, 북한 해외파견노동자의 노동권 실현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에 북한 해외노동자의 귀환 문제가 포함되면서, 이들이 외부와 접촉하는 것이 더욱 엄격히 차단되고, 도시보다 노동조건이 더 열악한 농촌과 벽지에서 일하는 비공식 노동화가 더욱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 p.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