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랜만에 오르는 뜻은 내 금강산 만물상을 보고 싶어서다. 날마다 다닐 적에는 이 경치를 눈여겨보는 재미로 다녔다. 고갯마루가 얼마 남지 않은 오른쪽 이 곳, 가까이 오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북쪽에 있는 금강산을 많이들 구경하고 오지만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본 금강산을 이곳을 지나면서 내 금강산으로 여기고 ‘그리운 금강산’을 불렀다.
갈라진 나라가/ 예순한 해가 되어도/ 한을 안고 그대로/ 겨레가슴에 쌓인 피멍이/ 검빛으로 변하고/ 아픈 세월은 오늘도 그대로/ 언제 이룰지 내일도 어두운/ 한나라/ 겨레여/ 나라여/ 서러운 역사여/
근처에 이르렀는데, 만물상이 있던 자리에 허옇게 돌축을 쌓아놓았다. 언제 없앴을까? 오늘 이 길을 오르지 않았더라면 내 금강산은 없어지지 않고 가슴에 담고 있을 것인데, 이 걸음이 없어진 금강산을 보러 온 것이 되고 말았다. 고갯마루까지 오르며 보았고, 내려오며 다시 보던 금강산이었다.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내 금강산.
내 금강산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깎아 놓은 흙 비탈이었다. 비탈진 그때부터 만물상은 생기기 시작했다. 비탈 높이가 내 키보다 높았고, 머리 위로는 소나무가 우거졌다. 비가 오면 나뭇잎들이 큰 물방울을 지어 흙 비탈을 때렸다. 크고 작은 자갈이 일만 이천 봉우리가 되어 자갈 밖의 흙을 씻어 내렸다. 비 맞는 세월이 가면서 만물상 봉우리가 지어졌다. 높고 낮고, 어깨를 나란히 한 것, 언니와 함께 서있는 것, 뾰족한 것을 이고 있는가하면 비딱한 것을 이고 있는 것. 다 제 모습을 띈 만물상이었다. 땅속 흙이 밖으로 드러나니 세월 따라 내 금강산이 지어졌다.
고갯마루에 이르렀다. 진달래가 곁에서 핀다. 보릿고개를 맞던 배고픈 시절, 나무하러 산에 가서 한나절 배고픔에 꽃을 따서 먹었다. 허기를 에워주던 ‘참꽃’. 옛 일을 그리며 몇 송이를 따서 입에 넣어 씹는다. --- pp.10-11
나무를 잘라 말려서 켠 판때기에는 고운 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지러운 무늬도 있다. 탄생은 순탄한 것이 아니기에 씨 맺을 가지를 낸 자국이 소용돌이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바람이 일고 구름이 끼고 천둥 번개가 치면 비가 쏟아진다. 때로는 불어 닥치는 큰바람을 안으며 부러질 듯 쓰러질 듯해도 깊게 넓게 뿌리박아 우람한 몸체를 의연히 지탱하며 견딘다. 한 해 한 켜씩 이루어가는 나이테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내력이 있고 모진 추위에 더욱 단단해지는 삶의 굳은 의지가 있다.
소나무의 여문 켜를 보면서 내가 살아온 내력을 돌아본다. 왜놈들한테 나라 잃고 짓밟히고 지낸 모진 세월. 광복을 맞았지만 나라가 갈라졌고, 강산이 피로 물드는 난리를 겪었다. 이 얼마나 한 서린 역사인가. 어렵게 살아온 고비들. 우리 겨레가 살아온 내력이 닳지 않고 여문 나무 켜가 아닐까?
남북이 갈라지고 예순 한해. 우리 역사에서 이토록 모질고 쓰라린 아픔이 있었던가? 이 모진 겨울을 언제까지 겪고 살아야 하는가?
놀이터 걸상에 앉아서 젊은 가시버시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고 있다. 배고픔을 모르고 사는 세상이기는 하지만 내가 겪은 세월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이들이 살아가는 앞날에 무슨 뜻을 남겨주지나 않을까.
비가 그치고 날이 맑다. 비에 젖어 덜 마른 나무 걸상에 드러난 무늬결의 여문 켜를 눌러본다. 겨울을 견디고 지낸 켜는 도드라져서 손톱이 안 들어간다. 짓밟히고 시달렸지만 모질고 끈질기게 살아남은 우리 겨레의 힘살을 이 여문 켜에서 본다. --- pp.34-35
개천절이 배달겨레가 태어남을 기리는 날이라면 시월 구일 한글날은 겨레가 눈을 뜨는 날임을 기린다. 오랜 어두움에서 빛을 보게 되었으니 우리 겨레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값진 명절이 있는가? 단군왕검님이 나라를 열고(개천절), 세종께서 깜깜한 백성의 눈을 띄워 우리 겨레가 그지없이 나아가 빛나도록 하시었으니, 시월이 이토록 배달겨레를 비추는 달이라. 모진 풍파에 닻줄이 끊어져 한바다로 떠내려간다 해도 우리말과 우리 글자를 잃지 않는다면 역사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도 우리 겨레는 다시 살아나리라. 겨레가 글자 없이 말하고 지내다가 이 어떤 분복인가!
그러나 이 글자를 제대로 부려 쓰지 않고 남의 글자를 가지고 지체와 힘 부리는 연모로 쓰면서 겨레가 일구어낸 우리말까지 죽였으니, 나라를 잃었고 갈라진 한이 맺힌 삶을 살아가는 판이라. 시월상달에 한글날이 있는 것은 겨레를 일으키고 갈라진 나라를 하나 되게 다짐하는 빛을 보는 달이다.
한스럽다. 우리 겨레가 부려씀으로 빛나는 삶을 이루어갈, 소중한 보배인 이 글자를 깔보고 천대하는 축이 있다. 한문을 배워 섬기면서 우리 말글의 줏대를 잃었고, 조선왜놈이 왜말을 타다가 조선왜말로 만들어 우리말을 죽였다. 나라가 갈라지고 나니 미국 말을 섬겨 회사 이름, 집 이름, 일 이름을 미국 말로 갈아치우는 판을 본다. 아이가 나서 젖이 떨어지면 ‘빠이 빠이’를 가르치고, 모이기만 하면 주먹을 지르며 ‘화이팅’을 외쳐댄다. 우리말을 죽이는 무리가 누구인가? 겨레 모습을 알려거든 그 말을 보아라. 시방 되어가는 판이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이름을 깨끗한 우리말로 지어냄이 마땅하다. 이름은 오래도록 남아서 다른 것에 힘을 미친다. 아무리 큰 나라 큰 힘이 누른다 해도 말과 글과 이름이 줏대를 가지고 있으면 겨레와 나라가 줏대를 세우고 덧덧이 나아가리라. 빌붙고 기대는 재주가 서슴없이 날뛰면 겨레 앞날이 위태롭다. 남북이 갈라져서 예순 세월, 우리말이 피어나게, 우리 글자를 잘 부려씀은 남북이 하나 되는 지름길이요 온 누리에 퍼져 사는 우리 겨레가 배달의 얼로 하나 되는 길이다.
시월상달은 겨레와 나라를 하나 되게 하는 하늘이 내려준 달이다. 겨레와 우리 얼을 찾는 달이기에 옷깃을 여며 이달을 맞이하고 지낼 것이다. 파아란 가을 하늘에 펄럭이는 깃발을 우러러보는 뜻이 여기에 있다. --- pp.65-66
개천절이 배달겨레가 태어남을 기리는 날이라면 시월 구일 한글날은 겨레가 눈을 뜨는 날임을 기린다. 오랜 어두움에서 빛을 보게 되었으니 우리 겨레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 값진 명절이 있는가? 단군왕검님이 나라를 열고(개천절), 세종께서 깜깜한 백성의 눈을 띄워 우리 겨레가 그지없이 나아가 빛나도록 하시었으니, 시월이 이토록 배달겨레를 비추는 달이라. 모진 풍파에 닻줄이 끊어져 한바다로 떠내려간다 해도 우리말과 우리 글자를 잃지 않는다면 역사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가도 우리 겨레는 다시 살아나리라. 겨레가 글자 없이 말하고 지내다가 이 어떤 분복인가!
그러나 이 글자를 제대로 부려 쓰지 않고 남의 글자를 가지고 지체와 힘 부리는 연모로 쓰면서 겨레가 일구어낸 우리말까지 죽였으니, 나라를 잃었고 갈라진 한이 맺힌 삶을 살아가는 판이라. 시월상달에 한글날이 있는 것은 겨레를 일으키고 갈라진 나라를 하나 되게 다짐하는 빛을 보는 달이다.
한스럽다. 우리 겨레가 부려씀으로 빛나는 삶을 이루어갈, 소중한 보배인 이 글자를 깔보고 천대하는 축이 있다. 한문을 배워 섬기면서 우리 말글의 줏대를 잃었고, 조선왜놈이 왜말을 타다가 조선왜말로 만들어 우리말을 죽였다. 나라가 갈라지고 나니 미국 말을 섬겨 회사 이름, 집 이름, 일 이름을 미국 말로 갈아치우는 판을 본다. 아이가 나서 젖이 떨어지면 ‘빠이 빠이’를 가르치고, 모이기만 하면 주먹을 지르며 ‘화이팅’을 외쳐댄다. 우리말을 죽이는 무리가 누구인가? 겨레 모습을 알려거든 그 말을 보아라. 시방 되어가는 판이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이름을 깨끗한 우리말로 지어냄이 마땅하다. 이름은 오래도록 남아서 다른 것에 힘을 미친다. 아무리 큰 나라 큰 힘이 누른다 해도 말과 글과 이름이 줏대를 가지고 있으면 겨레와 나라가 줏대를 세우고 덧덧이 나아가리라. 빌붙고 기대는 재주가 서슴없이 날뛰면 겨레 앞날이 위태롭다. 남북이 갈라져서 예순 세월, 우리말이 피어나게, 우리 글자를 잘 부려씀은 남북이 하나 되는 지름길이요 온 누리에 퍼져 사는 우리 겨레가 배달의 얼로 하나 되는 길이다.
시월상달은 겨레와 나라를 하나 되게 하는 하늘이 내려준 달이다. 겨레와 우리 얼을 찾는 달이기에 옷깃을 여며 이달을 맞이하고 지낼 것이다. 파아란 가을 하늘에 펄럭이는 깃발을 우러러보는 뜻이 여기에 있다. --- pp.126-127
총알이 귓전으로 날아가고 포탄이 곁에서 터진다. ‘쾡’ 하고 터지며 파편이 핑핑 날았다. 이 몸서리나는 소리. 공중으로 치솟은 흙, 자갈 먼지가 쏟아지며 나를 덮는다. 터지는 파편을 바로 맞으면 이 그리움을 안고 어떻게 갈 것인가? 터지는 포탄에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죽어가는 전우를 본다. 이 고약한 역사를 저지른 까닭을 한한다.
비가 내린다. 주검에서는 구더기가 들끓었다. 강원도 높은 산 칠팔부 능선에 교통호를 파고 진을 치고 있는데, 대대 취사장에서 지은 주먹밥을 빈 실탄통에 담아 노무자들이 지고 이 험한 산길을 타고 오른다. 비탈에 기대고 쉬는 동안에 그 구더기가 밥내를 맡고 기어들었다. 한 덩어리씩 전해지는 주먹밥을 이틀 만에 받을 수도 있었다. 비 맞는 주먹밥에는 구더기가 붙어 기었다.
임무 교대로 들어갈 때는 소총 대신 대검을 차고, 수류탄과 야전삽과 흙 담아 쌓을 빈 포대만이 소용 있었다. 터지는 포탄에 튀는 흙먼지에 소총 놀이쇠가 움직이지 못한다. 내 몸을 엄패할 호가 이내 무너지므로 흙자루에 흙을 퍼담아 차패를 해야 하고 수류탄은 안전핀을 펴서 재어놓고 적이 떴다하면 핀을 뽑아 겨눌 것도 없이 아래로 던져야 한다. 낮에는 마주보는 적진에서 직격탄과 포를 쏘아대고, 밤중이 지나거나 비오는 밤이면 틀림없이 달라붙는 공세. 밤새도록 예광탄을 쏘아 공중에서 밝혀 놓아도 적은 묘하게 기어오른다. 눈을 감고 졸았다 하면 방어선은 뚫리고 만다. 그리운 고향, 그리운 제자들. 딱 한 번만 보고 싶다. 사무치는 이 그리움을 달랠 수 없었다.
귓전으로 스치는 포탄 소리가 예사롭게 느껴지도록 길이 들었다. 포탄 떨어지는 탄막지점에서도 한번 떨어진 그 자리는 거푸 떨어지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막 떨어져 패인 구덩이로 번개같이 몸을 날려 뛰어드는 날랜 움직임. 무운 장구를 빌어준 그들의 뜻을 하늘이 돌보아준 것일 수밖에 없다.
--- pp.176-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