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챈들러는 1888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 많은 시간을 영국에서 보냈다. 1910년대에는 런던의 몇몇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시와 수필을 썼다. 이 당시에 쓴 시와 수필에서는 기사 영웅담과 이상 사회에 대한 동경이 드러나 있어 필립 말로가 가진 정의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직업을 거친 끝에 석유 회사의 부사장까지 올랐으나 음주와 장기결근으로 쫓겨난 그는 1930년대부터 펄프 매거진에 범죄 단편들을 기고하기 시작하여 젊은 시절 고전 영문학에 열정을 바치던 시절과는 다른 새로운 문학 인생을 시작한다.
1939년 발표한 첫 장편 『빅 슬립 The Big Sleep』이 큰 성공을 거둔 뒤, 1940년 『안녕, 내 사랑 Farewell, My Lovely』, 1942년 『하이 윈도 The High Window』, 1943년 『호수의 여인 The Lady in the Lake』, 그 후 6년 뒤에 『리틀 시스터 The Little Sister』를 발표하였다. 1954년 후기의 걸작 『기나긴 이별 The Long Goodbye』을 발표한 그는 18세 연상의 사랑하는 아내 시시가 세상을 떠난 뒤 실의에 빠져 알코올에 중독되어 지내다가 1959년 세상을 떠났다.
챈들러의 동료 작가 및 후배 작가들(얼 스탠리 가드너, 이런 플레밍, 로스 맥도널드, 로버트 B. 파커)뿐 아니라 오늘날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는 이들조차도 챈들러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폴 오스터는 챈들러를 매우 존경했다고 하며 시인 W. H. 오든도 매우 강력하지만 극단적으로 우울한 챈들러의 소설은 ‘도피문학’으로서가 아닌 ‘예술작품’으로서 읽히고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블린 워나 그레엄 그린 역시 챈들러를 높이 평가한 작가였다. 그런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러 인터뷰와 에세이에서 레이먼드 챈들러의 영향을 깊이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내가 챈들러의 소설을 읽고 감탄한 것은, 그 작품이 호소해오는 리얼리티였습니다. 그는 작가에게 살아가는 데 대한 확고한 자세가 있고, 사물을 파악하는 확실한 시점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허구를 묘사해도 리얼리티는 반드시 스며 나오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바꿔 말하면, ‘문체’를 모방하기는 쉽지만 ‘시점’을 모방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키는 특히 『양을 둘러싼 모험』을 쓸 당시 의도적으로 챈들러의 문체를 빌려왔다고 털어놓으며 이 작품을 ‘Big Sheep'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부르기도 했다.
챈들러의 방법론 중에 ‘seek and find'라는 테마가 있다. 그것은 찾아냈을 때는 찾아내려 했던 것이 이미 변질된 상태라는 것이다. 그것이 미스터리 형태로 싸여 있어서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테마는 나의 작품세계와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챈들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먼드 챈들러는 단순하게 추리소설 창작이 아닌, 범죄가 일어나는 환경에 대한 진지한 연구를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힘에 넘치면서도 극도로 우울한 그의 작품들은 도피문학으로서가 아닌, 예술작품으로서 읽히고 평가되어야 한다. --- W. H. 오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