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 소아 장기이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극히 일부의 운 좋은 어린이만 미국에서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디어는 그런 환자를 마치 스타처럼 다룹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미담을 만들어내죠. 분명 그건 미담이고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식인이나 윤리학자들의 발언을 이용해 어린이의 장기이식을 윤리적 또는 감정적으로 문제시합니다. 일본에서는 어린이 장기이식을 추진하려 하면 발목을 잡힙니다. 미국에서 하는 수술은 미담으로 지원받고, 일본에서는 문제시한다. 같은 소아 심장이식인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 p.135
“간단하게 말하면 ‘설득’과 ‘심리 분석’입니다. 전자를 위해 사용하는 기술이 액티브 페이즈이고 후자는 패시브 페이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론이 있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대체 언제 어디서 성립한 학문인가요?”
시라토리는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내 물음에는 직접 대답하지 않았다.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실제로 체험하는 것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군요. 그러면 이제 내가 무척 좋아하는 디테일로 들어가겠습니다. 예를 들어 다구치 선생의 작업은 그야말로 순수한 패시브 페이즈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패시브 페이즈가 무언지는 바로 이해하실 겁니다. 이렇게까지 순도 높은 패시브 페이즈 조사를 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죠.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자아가 희박한 것인지, 터무니없이 자존심이 센 건지 둘 중 하나겠지만요.”
“어느 쪽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냉담하게 말하자 시라토리는 박수를 쳤다.
“맞아, 자존심이 센 타입으로 결정.”
나는 시라토리를 쏘아보았다. 시라토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태연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제가 한 사용한 것이 액티브 페이즈의 테크닉, ‘진심 토크’입니다.”
--- p.237
“다구치 선생의 파일을 읽어보면 살인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집니다. 의료 실수일 가능성을 생각하느라 기반이 흔들리면 시각이 무뎌집니다. 의료 과실에 대한 조사와 살인에 대한 조사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의료 과실이라면 발생한 순간에는 주변의 시각에 대해 무방비이기 때문에 과거를 열심히 파헤치면 반드시 실마리가 드러날 겁니다. 하지만 살인일 경우에는 범인이 처음부터 사실을 은폐하려 하기 때문에 과거를 파헤쳐 봐야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결국 조사 방법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거죠. 어정쩡하고 모호한 입장은 진실 규명의 최대 적입니다. 그 어정쩡함이 진실을 파헤치는 실마리를 놓치게 만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살인을 전제로 조사하는 게 낫죠. 그러면 의료 과실도 놓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일 경우에는 놓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도 애당초 범인이 의도한 것이겠지만요.”
멋진 논리와 설득력. 로지컬 몬스터란 이름이 그냥 붙은 것만은 아니다.
--- p.246
“우리들은 의학 발전을 위해 개의 생명을 빼앗죠. 사람의 목숨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생명을 빼앗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생명은 빼앗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 누구나 다른 생명을 죽이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돌보고 있는 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제게 다가오죠. 개는 귀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개를 죽입니다. 의학의 발전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제게 사람이란 스쳐 지나는 모르는 물체와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이입은 하지 않죠. 불쌍한 개마저도 죽이는데, 사람을 죽일 때는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 p.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