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빈티지 스웨터
단순하게 때론 거침없이 유쾌하게 사는 삶을 꿈꾸는 나는 손뜨개 옷을 디자인할 때도 가능한 복잡한 디테일이나 뜨기 어렵고 조잡하기만한 뜨개 테크닉들은 배제하는 편이다. 남다른 색감과 심플한 절제미가 돋보이는 이 스웨터 역시 가장 단주스러운 디자인 철학을 잘 담고 있다.
데님사 스티치 장식을 더하고, 솔기가 바깥쪽으로 보이도록 소매와 어깨를 달아주어 베이식한 디자인들의 심심함에 스타일리시한 유쾌함을 더했다. 스티치 장식에 사용할 멀쩡한 데님실을 일부러 물 절반 량의 락스를 넣어 희석한 물에 살짝 담가서 얼룩덜룩하게 탈색하여 평범한 스웨터를 훨씬 더 감각적인 빈티지 스타일로 탈바꿈시켰다. 또 이렇게 2% 가량 부족했던 부분들을 메꾸어 가면서 수선해옥만의 즐거운 놀이 삼매경에 오늘도 날 새는 줄 모르고 있다. ---p.11
꽃보라색이 어울리는 그루밍족
세상사 전반에 걸쳐 남녀의 구분이 없어진 지 오래다. 패션 시장에서는 그런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위해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자 그루밍족이 그렇다.
이 스웨터에 사용한 꽃보라색Bilberry 또한 남자들이 흔히 선택하는 색상은 분명 아닐 것이다. 알록달록하고 화사한 스웨터를 입은 남자 모습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요즘이어서 가능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클래식한 숄칼라 스타일의 플래킷 여밈으로 마무리한 그루밍족을 위한 스웨터이다. ---p.17
엄마의 포근한 품이 그리울 때 꺼내 입는 알파카 풀오버
절도와 유연성 대학시절 나와 볼링을 함께 했던 남자 친구들이 “너는 어떻게 볼링공을 로봇 춤추듯 던지냐?”라고 하였다. 몸에 유연함이 없음을 놀리는 이야기였다. 평생 몸치로 살아온 내게는 로봇 춤을 춘다는 이야기도 찬사다. 몸으로 하는 모든 것에 유연함이 떨어진다. 성격 역시 나긋나긋한 유연함을 바라는 남자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뻣뻣하기 그지없다. 결혼 초기 남편이 내게 소심함과 뻣뻣함 두 가지는 조화롭지 않으니 한 가지만 하라고 했는데 날이 갈수록 대범해지며, 더욱 뻣뻣하게 변해간다. 이제는 뻔뻔하기까지 하여 일관성이 있어 좋단다.
남편에게 평생 바가지를 안 긁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통 큰 성격 탓일지도 모르겠다. “기대가 없는 자에게 바람도 없다”는 진리를 남편에게 일깨워주며 단순히 성격 탓만은 아니니 자중하라고 주의를 자주 주고는 있지만 말이다. 요즘 “힐링”이라는 단어가 대세다. 불황도 이겨내는 힐링 산업 최적의 상품이 뜨개와 요가다. 뜨개는 나의 삶이고, 요가는 나의 태생적인 결핍을 치유해주는 최고의 힐링 치유제이다.
처음엔 내 절도있는 몸매에 한숨을 몰아쉬었지만 수년째 꾸준히 수련을 한 지금은 나름대로 다양한 자세로 몸을 구기고 있다(몸을 구긴다는 표현은 함께 요가 하기를 거부하는 남편이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마치 수행을 하듯 자세를 잡고 호흡을 편안히 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에 평화가 깃든다. 몸의 유연성이 키워지면서 덩달아 마음도 말랑말랑해진다. 마음 속 깊이 숨어있던 여러 가지 뻣뻣한 편견과 옹졸함이 사라지고 모든 것에 너그러움이 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가 중급자에 해당하는 내게 아직까지도 가장 어려운 요가 자세는 바로 몸의 모든 힘을 빼고 편안하게 누워서 쉬는 송장 자세인 사바아사나이다. 불필요하게 들어가 있는 내 몸 구석구석의 힘을 빼자고 되뇌면 되뇌일수록 더욱 강박적으로 온 몸에 힘이 들어가는 이 불편한 진실을 어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오죽하면 올해 나의 화두가 ‘잘 하려고 애쓰지 않기’가 되었을까. 마음뿐 아니라 몸의 불필요한 힘을 내려놓기도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절도와 유연함을 조화롭게 키우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 뜨개와 요가는 평생 버리지 못할 절친이 되어가고 있다. ---p.40
뜨개질 왕초보에게 희망을 주는 이랑뜨기 색동 머플러
역시 당신이야! 어린 시절, 나보다 외할머니와 더 많은 대화를 하고 자란 아들에게 그 시절 외할머니가 “너는 어떤 칭찬을 받을 때 가장 좋으니?”라고 물어 보면 엄마, 아빠가 “역시 내 아들이야!”라고 해주는 게 가장 좋다고 했단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남편 역시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아들의 어린 시절 모습 중, 우리 부부는 미처 알지 못하고 친정 어머니 만이 알고 계시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그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 누군가 자기를 인정해 주고 인정받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 것 같다.
학교 강의를 다니며, 또 단주를 운영하면서 많은 제자들, 단주지기들과 여러 일들을 도모하면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가 어떤 조화로 이루어지는 모습이 최선일까를 생각할 때 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린다. “역시 내 제자야!”, “역시 단주지기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 “ 난 당신을 믿어요!” 등 누군가의 기를 제대로 살려줄 수 있는 말들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는 모든 여자들이 공감할 이야기지만 남편들은 칭찬받을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 나이 들수록 머리카락도 성글어져 볼품도 없어지고, 잔소리도 심해져서 쪼잔 해지며, 술도 약해져서 조금만 마셔도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매사에 더듬하고 깔끔치 못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 아직 칭찬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핀잔만 듣고 있는 남편에게도 언젠가 “역시 내 남편이야!”라고 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칭찬을 듣고 고래처럼 춤을 출 남편을 기대하며. ---p. 96
코 풀린 내 남자의 스타일을 잡아 주는 지그재그 넥타이
재미있게 살아가는 인생 흔히 듣는 인사말중 하나가 바로 ‘요즘 재미 좋아?’가 아닐까 싶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하고 살든 내 삶 속에 숨어있는 재미를 찾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재미있게 사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원천일 테니, 재미와 행복은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동의어가 아니겠는가! 내 주변에선, 늘 뭔가를 뜨고 만들고 있는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별 거 아닌 듯 보이는 그 일이 뭐가 그리도 재미있느냐며…. 그런 질문을 하는 지인들에게 늘 빙긋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곤 한다. 입 아프게 아무리 설명을 한들 그들이 나만의 소중한 재미를 알아챌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한 것에 대한 재미란 것은 매우 주관적인 지라, 사람마다 느끼는 재미의 대상과 질량이 다 제각각 다를 테지만 말이다. 요즘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강남 스타일의 싸이도 결국은 재미있게 살아가는 인생이 재미있는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친구가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넋두리 겸, 사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한결같이 유쾌한 목소리로 응대하는 내게 뜻밖의 질문을 하였다. “넌 사는 게 재미있니?” 예상치 못 했던 절친의 질문에 잠시 숨을 고르곤, “그럼 넌 재미없니?” 라고 반문을 했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가 바로 아들 입시문제로 나름 한창 마음고생을 할 때였건만, 아마도 늘 걱정이 많은 친구 눈에는 천하태평으로 즐거운 내가 신기해 보였나보다.
언제나 준비 없이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좌절과 불안감이 난들 왜 없겠는가? 그리고 어찌 세상일이 모두 재미만 있겠는가? 그러나 재미가 없는 곳에서도 열심히 재미를 찾아내고 즐거움을 만들어 가는 마음이 중요하지 않을까?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으니까….
“요즘 무슨 재미로 사세요?” 이 질문에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실 수 있는 당신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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