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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그 여자

501호,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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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90g | 130*210*18mm
ISBN13 9788989224495
ISBN10 8989224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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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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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은 꽃차 한 잔 주실래요?
꽃다발 주문하고 꽃차가 우러날 때
그 여자 가슴 속에는
꽃씨 하나 싹이 튼다
--- 「501호, 그 여자-꽃차」중에서

새하얀 무명을 좋아하는 그 여자
발 모양을 그려서 가지런히 포개 놓고
바늘귀 노려보면서
입술을 오므린다

이마를 자꾸 덮는 흰머리 쓸어 내며
다초점 안경테를 올리려다 내리다가
저만치 도망간 세월
혼잣말로 꾸짖다가

가슴이 답답해서 창문을 열고 보니
얼굴이 시리도록 느닷없이 부는 바람
‘세상에, 독살시럽게 춥다’
그 목소리 그립다
--- 「501호, 그 여자-세월」중에서

오래 전에 시작된 사소한 습관 하나
가끔씩 때때로 손톱 끝을 깨무는
어쩌면 한결 같은 행동
오십 년을 넘겼나봐

설명하기 어려운 아홉 살 어린 나이
부끄러운 사건은 고개를 숙인 채로
날마다 깨물었나봐
아픈 줄도 모르고

수치심에 갇혀서 문드러진 손끝에
분홍빛 매니큐어 꽃잎처럼 수 놓고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속닥이며 웃는다
--- 「501호, 그 여자-손톱」중에서

남겨진 음식물을 통에 담아 칩을 꽂고
태우는 쓰레기는 봉투 가득 여미고

재활용 물건은 따로
또래끼리 나누고

-쓰레기를 그렇게 버리시면 안 되죠
-남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나 잘 하믄 돼
-교회도 다니시면서……

어이없어 웃는 여자

종량제 봉투 값이 아무리 비싸기로
까만 비닐 가득 채운 양심도 내던지고
향수를 온몸에 바른 여자

눈 흘기는 그 여자
--- 「501호, 그 여자-분리수거」중에서

4만 원이 있으면 서방을 갈아 친다

팔순을 코앞에 둔 할망구의 독설에
벼르던 대거리를 하고
몸살 앓는 그 여자

노망이 들었는지 아무 때나 어깃장
나이도 상관 없고 성별도 구별 않고
아뿔싸, 나도 늙어서
저리 될까 무섭다
--- 「501호, 그 여자-어깃장」중에서

한복을 곱게 입은 사진을 내려놓고
줄을 긋는 칼끝이 섬뜩하여 멈출 때
손 잡고 웃고 있는 너
말이 없는 그 여자

어금니 앙다물고 인화지를 벗긴다
모서리도 빈틈없이 달라붙은 접착제
내 얼굴 작게 도려낸다
저고리도 오린다

일기장에 누웠던 조각난 기억들
옷고름 풀어 놓고 히죽히죽 웃더니
완납된 채무변제 증명서
택배상자 꾸린다
--- 「501호, 그 여자-사진」중에서

일이 복잡해져도 당황하지 마세요
해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어요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공부 운이 왔네요

가을 향기 취하는 천만 송이 국화축제
꽃길을 걸으면서 꽃차를 마십니다
그래요, 그런 날도 있네요
꿈속 같은 그 공원

스치는 사람들도 반가운 이웃 되고
잊혀진 이름조차 한 송이 꽃이 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꽃향기가 따라와요
--- 「오늘의 운세-천만 송이 국화축제」중에서

노오란 들길에 코스모스 피었습니다
억새꽃 촉촉이 아침 이슬 머금으면
내 마음 구름을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뜨겁게 쏟아지던 그 햇살 물러가고
서늘한 바람이 골목을 쓸고 갈 때
불현듯 친구처럼 찾아와
손 내미는 외로움

울 밖 감나무의 얼굴이 붉어지면
내 안의 그리움은 사과처럼 익습니다
비 갠 뒤 쌍무지개 떴습니다
감사할 것 뿐입니다
--- 「가을 일기」중에서

아침부터 도시는 몸살을 앓고 있다
하나 둘 골목을 빠져나온 승용차가
북새통 사거리에 모여 선물을 고른다

코너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숨 가쁘고 고달픈
기억은 모두 지우고
제각기 부피가 다른 그리움을 꾸린다

부푼 가슴 고향으로 발걸음 재촉하지만
주어도 모자라는 그 은혜 그 정성과
한가위 달빛 같은 사랑
견줄 수가 있을까
--- 「추석 풍경」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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