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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우동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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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153*224*20mm
ISBN13 9791189205492
ISBN10 1189205491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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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길을 걸었다. 이 시각에 거리를 걷는 것이 문득 낯설었다. 잡다한 이야기들은 모두 잠들고 사람들의 체취만이 묻어 있는 길을 걸었다. 찬 서리가 뿌옇게 내려앉은 길을.
아마도 오래전부터 이 같은 외출이 내 인생에 마련되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한 치 앞을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을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서 많이 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이런 외출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건널목과 신호등을 지나쳐 음식점과 술집들이 별처럼 총총히 박혀 있는 골목길을 걸었다. 이른 새벽이라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달랑 혼자 걷는다는 것이 내심 두려웠다.
카우보이, 꽃을 든 남자, 아리조나……. 이런저런 상호의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술을 파는 곳, 그곳에서 술을 마시고 아직 깨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건물 옆에 웅크리고 있다가 나를 잡아당길 것 같았다.
나는 작은 조바심을 치며 술 냄새 풍기는 거리를 마치 새벽을 여는 사람처럼 걸어나갔다. 앞으로는 이 거리와 친밀해져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희붐한 밤안개와 진한 술 냄새와 가득한 찬서리 속에서도 깨어나지 않는 이 낯선 거리를 매번 걸어 다녀야 한다.
감자탕집, 뼈다귀 해장국집, 올뱅이 국밥집……. 술 먹은 사람들의 속풀이에 어울리는 음식점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좁은 골목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 종착 지점에 철물점과 나란히 오토바이 가게가 있고, 그사이에 허름한 얼굴로 나를 기다리는 간판이 있었다.
우동집 앞에는 공원이 있었다. 11월의 찬바람에 느티나무 잎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벗어던져야 할 지난날의 안락했던 생활의 옷처럼 그렇게 낙엽이 떨어지고 있었다.
공원 안에는 낡은 의자가 몇 개 놓여 있었고,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 위에 소주병이 몇 개 던져져 있었다. 낭만을 말하기에는 현실감의 무게가 너무 큰 풍경이었다. 누군가 먹고 버린 소주병이 낙엽 위에서 뒹굴었다.
‘공원이 있어서 다행이야. 이제 이 공원의 느티나무와 사귀어 친구가 되어야지. 내가 가는 곳마다 다행히도 나무들이 늘 있었어.’

나는 11월 새벽의 공원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힘이 부칠 때면 저 공원의 의자에 앉아 잠시 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마음 끝에 다가왔다.
철물점 앞에 놓여 있는 쇠붙이들, 오토바이 가게 앞에 놓여 있는 고물 오토바이들이 내 우동집 앞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진득한 쇳냄새 때문이라도 우동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곳이었다.
허름한 색동저고리처럼 걸려 있는 각기 우동이라는 간판은 낯설지 않았다. 어둠과 밝음이 교차하는 시각에 나는 우동집 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오래되어 낡은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 섰다. 전기 스위치가 있는 벽을 한참 더듬어 불을 켰다. 일곱 평 남짓한 작은 공간 안에 낡은 식탁 네 개가 놓여 있었다. 공간이 좁아서인지 어느 시골 방처럼 느껴졌다. 누렇게 바랜 벽지며 기름때가 더덕더덕 끼어 있는 환풍기조차도 쉽게 주인을 반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너절너절하게 찢어진 벽지는 모두 잡아떼어버리고 싶지만 거기까지 키가 닿지 않았다.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곳까지 온 내 외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서른아홉 해 동안 잘 먹고 잘살아온 내 몸뚱이의 보속(補贖)일지도 모른다. 삶의 현장 속에 내가 뛰어들어보지 못해서 이웃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치스런 말이나 행동으로 저지른 죄가 많았을 것이다. 나만 잘 먹고 잘살라는 법이 어디에 있는가. 이제 나는 몸으로 살아야 한다.
재활용 시장에서 사들인 국수기계가 흉물스럽게 나를 쳐다보았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기계로 면을 뽑아내는 일을 해야 했다. 나에게 이 가게를 넘겨준 선임자 아저씨가 제일 조심해야 하는 것이 이 기계라 했다. 딴생각을 하다가는 자칫 손을 다쳐 불구가 될 수 있다며 지레 겁을 주었다.
친해져야 할 기계를 어루만지며 앞으로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서 검게 그을린 양은 통에 물을 가득 붓고, 무 다시마 참치 등 천연재료로 우동국물을 우려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줌마. 우동 한 그릇 주세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조금 기다려야 국물이 달여진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말을 꺼내려고 애를 써도 말이 나오지 않는 꿈속에서처럼, 내 몸 안에 무엇인가가 들어와 입을 꼭 봉해버린 느낌이었다.
남자는 난로 옆에 앉아서 들고 온 신문을 보고 있었다. 처음이라, 첫날이라 서툴러서 아직 손님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내 형편과는 무연하게 남자는 음식을 기다리며 신문을 들추고 있었다.
펄펄 끓는 물에서 우동국물 냄새가 났다. 제법 갈색으로 우러나면서 선임자 아저씨에게 배운 것 같은 우동국물이 되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소리를 내며 국수기계가 흰 면발을 뽑아냈다. 그것을 펄펄 끓는 물에 넣고 삶았다.
식탁 앞에 앉은 남자는 오리털 파카의 소매 깃을 살짝 올리고 시계를 보았다. 내 마음이 바빠졌다. 단무지와 김치를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내어갔다.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입고 있는 앞치마며 긴 청치마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당당해지자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할 수 있어. 일주일 동안 연수를 받았잖아. 아직 솜씨는 없지만 정성만 있다면 왜 못하겠어. 긴장하지 말아야 해. 인생은 연극이야. 이게 지금 내가 당당히 해내야 할 배역이야. 순희야, 당황하지 마.’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은 한결같이 음식점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여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동작이 느리고 민첩하지 못한 데다 키가 크고 손가락이 길어서 일이 몸에 붙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다들 음식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며, 뛰어난 솜씨가 있어도 성공하기 어려운 것이라며 말렸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전업주부로 살아온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행동도 말주변도 뛰어나지 못한 주부에게 갑자기 벌어 먹고살라고 하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다.
IMF 관리 시절, 남편의 사십 년 세월을 삼켜버린 부도는 우리 가족을 흩어진 밀가루 같은 슬픈 입자들로 만들었다. 평소에 찬찬해서 실수를 안 했던 남편은 더 큰 사업을 위해 도전하다가 중소기업이 살아남을 수 없는 호된 시절을 만난 것이었다.
남편 잘 만나서 잘 먹고 잘살아온 대가가 이렇게 치열한 삶의 경쟁 속으로 나를 외출시킬 줄이야. 한탄하지 말자고 되뇌며 나는 무언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밀가루 입자처럼 풀풀 날려 흩어져버린 우리 가족의 아픔을, 지난날의 현실을 잊어야만 했다. 남편과 함께 살 수 없는 현실에서, 나는 아이 둘을 책임져야 할 가장이 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베개 이불을 적시며 울고 있는 나에게 위층에 살았던 친구 희수가 시간 나는 대로 내려와 달래기 시작했다.
“은미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으로 땀을 흘리는 거야. 일을 해야 해. 은미 엄마처럼 성격이 여린 사람은 직장생활은 할 수 없어. 은미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번 생각해보자. 먼저 ‘충주화제신문’을 보자고. 은미 엄마 힘들겠지만 작은 음식점을 찾아보자.”
변호사 부인인 희수의 말로 내 진로가 정해졌다. 한쪽에서는 일주일도 못할 거라는 절망감을 주었지만, 희수의 말을 듣고 보니 내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화제’를 보며 이곳저곳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온종일 걸어 다니며 음식점을 기웃거려 보았지만 자신감이 없었다. 아무도 나를 보고 반기지 않았다. 음식점 안으로 들어서면 꿈속에서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힘이 빠져 집으로 돌아오면 아이들 둘이 잠을 자고 있었다. 보호자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이렇게 힘이 빠져 다니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넓은 평수에 고급아파트가 경매되어 이사를 가야 했다. 아직은 이사도 못 하고 먹고사는 길을 찾아 헤맸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니 길가의 노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과일과 생선과 푸성귀를 조금씩 놓고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가 살아야 할 삶으로 느껴졌다. 빨리 이 아파트를 떠나야 정리가 될 것 같았다.
그동안에 누렸던 부를 뱀 허물 벗듯이 모두 벗어놓고, 바람이 몹시 불던 날 인근의 서민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주위의 맘씨 좋은 친구들이 모두 거들어주어 이사를 마쳤다.
찬바람 불던 날, 그동안 입었던 부의 옷을 하루아침에 벗고서 돌아선 나를 보고 친구 희수는 목놓아 울었다. 울어줄 사람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함께 살았던 아파트 사람들은 나를 위로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우동집을 해보겠다고 덤볐을 때, 그것은 운명이었다. 이 집에 들어서기 전까지 사실은 두 번이나 음식점 계약을 했다가 무언가 두려움 때문에 두 번 다 해약을 하고 말았다.
그 이후 나는 고개를 떨구고 이곳에 나와 우동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종일 서서 밀가루와 씨름을 해야 하는 연수기간 동안 종아리가 아파서 쓰러져버릴 것만 같았다.
가게 안에서 입을 옷이 없어서 희수가 마련해준 긴 청치마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채 발을 동

동 굴렀다. 종일 서서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든 일인지. 그것도 이천오백 원짜리 우동을 팔아야만 하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했다. 이러다간 가게세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고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 재미를 붙였다. 풀풀 날리는 입자로 있을 때는 형태가 없지만, 소금과 물을 넣어 버무리면 물렁물렁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 덩이는 아무 곳에나 어울렸다. 국수기계에 집어넣으면 가는 면도 될 수 있고 굵은 면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신비롭지가 않았다.
사람 사는 일은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다. 하나 내 손으로 만지작거리는 밀가루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 재미났다.
희수는 몰아붙였다. 무조건 인생공부한다 생각하고 이곳에서 우동을 끓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동 만드는 법을 연수받으면서도 몇 번인가 잘해낼 수 있을까, 하고 망설였지만 친구의 다그침을 격려 삼아 나는 꼭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하얗게 날이 밝아오는 시각에, 나는 신문을 보고 있는 남자에게 처음으로 내가 끓인 우동 한 그릇을 내갔다. 처음 받은 손님이었다. 그에게서 어떤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내가 돈을 받고 우동을 끓여준 저 사람이 소중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남자가 말했다.
“아줌마. 우동 국물이 조금 짜요. 뜨거운 물 좀 주세요.”
배운 대로 간을 맞추었는데 국물이 짜게 됐으니 실패한 것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보더니 남자는 컵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펄펄 끓는 물을 한 컵 떠가지고 식탁으로 돌아갔다.
우동가락은 잘 삶아졌는지 걱정이 됐다. 남자는 물을 탄 국물을 마시며 나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나오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을 얼굴이었다.
남자는 안경을 다시 끼고 만원 권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어주었다. 나는 손으로 뜬 가방을 한참 뒤져서 거스름돈을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아줌마. 잘 먹었습니다.”
“저기요. 아저씨. 할 말이 있어요.”
나는 삐거덕거리는 문을 밀치고 밖으로 나선 남자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사실은 오늘이 내가 이 가게에서 장사를 하는 첫날이에요. 아저씨가 첫 손님이시고요.”
남자는 놀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줌마. 그런 줄 알았으면 제일 비싼 우동을 시켰을 텐데요……. 그런데 왜 혼자 가게문을 열었죠? 개업집인 줄 전혀 몰랐어요.”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어쩐 일인지 낯설지 않았다.
“그냥 아무한테도 알리지 않고 하게 되었어요. 하여간 아저씨가 첫 손님이라는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저는 아줌마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가게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잖아요. 하지만 느낌이 좋아요. 하시는 일이 모두 잘 되실 거예요. 사연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잘 되시라고 기도해 드릴게요.”
남자는 고개 숙여 내게 인사를 하고 느티나무 아래 세워놓은 검은 지프차로 갔다. 차 위에는 느티나무 잎이 몇 개인가 떨어져 내려 있었다. 차가 지나갈 때 모 방송국 로고가 눈에 들어왔

다. 그 순간 낯익은 얼굴과 목소리가 다시 떠올라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삐거덕거리는 문이 열리며 장미꽃 한 바구니가 들어왔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배달 나온 점원이 그 방송국의 아나운서가 보냈다는 말을 전했다.
붉은 장미는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었다.
--- 「한 가락 아주 특별한 외출」중에서

어느 날 한 청년이 나를 보고 아는 체했다.
“사모님. 저는 사모님을 잘 아는데 사모님은 왜 저를 모르는 체하시죠?”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인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고 청년이 다시 말했다.
“사모님, 죄송해요. 우리가 아무런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요.”
모자를 눌러쓴 청년은 회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기, 사모님 댁에 제가 심부름 간 적도 있는데요…….”
청년의 말을 들으며 생각해보니 부도 난 우리 회사에 근무한 직원인 듯싶었다.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싶은 마음은 그렇게 망각의 강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청년을 내 우동집에서의 만남으로만 기억하고 싶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청년도 알아들었다는 듯 더 이상 아는 체하지 않았다. 나는 진정으로 그가 이 작은 공간 안에서만 만나는 손님이기를 원했다.
그는 핏기없는 얼굴로 우리 우동집을 종종 찾았다. 때론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따끈한 호떡 몇 개를 봉지에 담아 와서 말없이 내놓기도 했다. 지난날의 기억은 망각의 강 너머에 남겨두고, 이곳에서의 애틋한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일요일에도 제복을 입고 들어온 청년에게 내가 말을 붙였다.
“일이 많은가 봐요? 주일도 못 쉬는 걸 보니.”
“잘릴까 봐 쉴 수가 없어요.”
청년은 모자를 벗으며 싱긋 웃었다. 모자 안에 들어 있는 머리칼은 약간 파마 웨이브가 있고 부분적으로 노란 염색이 되어 있었다. 잘 익은 은행잎처럼 부분 염색된 머리가 어색하지 않았다.
청년이 다니는 직장이 자금 걱정 없는 튼튼한 회사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에서 날마다 어음결제로 가슴을 졸이던 직원들의 얼굴도 생각났다. 잘 될 것이라는 좋은 생각을 해도 깊숙이 숨어 있는 그늘은 지울 수 없었다.
“사모님, 사고가 났어요.”
“사고라니요. 무슨 사고요?”
“사모님도 아는 사람이에요. 사모님께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 아프시겠지만 어쩔 수 없이 말씀드려야 되겠어요.”
청년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라이터에 불을 당겨 입에 물며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가 부도가 나자 삼십 명의 직원들은 임금과 퇴직금을 받기 위해 사장을 노동부에 고발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가야 했다. 그 중에 사장이었던 내 남편을 고발할 수 없다고 임금과

퇴직금을 포기한 사람이 있었다. IMF로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회사가 넘어간 상황을 잘 아는 노현이라는 스물다섯의 청년이었다. 흔들리는 회사를 살려보겠다고 자신의 일처럼 동분서주했던 사람이었다.
노현은 밤마다 술을 마시며 회사를 지켰다. 모두가 떠나버린 회사에 남아서 담배를 피우며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을 그리워했다. 마음이 여렸던 그는 가끔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의 위로가 내 귀에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아팠던 날들이라서 까마득히 잊고 싶을 뿐이었다.
노현은 아무도 없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살았다. 그곳에 검둥이라는 개가 있었다. 그 개에게 노현은 밥을 주면서 살았다. 우동가게에 온 청년이 노현에게 여러 번 그곳을 떠나자고 말해도 그는 떠나지 않았다.
대그룹 SA로 우리 회사가 넘어가던 날 밤이었다. 그날 본사직원이 새로운 주인으로 다녀갔다. 노현은 밤에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같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술을 마시자고 했다. 그중에 경비로 있었던 아저씨가 시내로 나오라고 했다. 노현은 술을 마시고 트럭을 타고 시내로 나오다가 자동차 사고를 내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한 청년의 삶이 그렇게 짧게 마감된 것이었다.
청년의 말은 내 가슴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과연 무슨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배달 가방을 들고 서 있던 나는 기가 막혔다. 내 뒤에 서 있을 것만 같은 노현을 모르는 채 외면하고 돌아서고 싶었다.
무슨 미련이 남았다고 그곳을 떠나지 못했을까. 부도가 난 지 일 년이 되어 사람들은 새 주인에게 임금과 퇴직금도 다 받아갔는데 어쩌자고 노현은 그곳에 남아 있었단 말인가. 누가 알아준다고.
삐거덕거리는 문을 밀치고 나가 느티나무 공원의 낡은 벤치에 앉았다. 그 청년의 영혼에게, 이렇게 살아남아 있는 나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곳을 잊으려고 애쓰고 있는 나에게, 노현이란 청년이 돌을 던질 것만 같았다.
이따금 서울 가는 길에 회사가 바라보이면 나는 애써 눈을 감았었다. 사라지기 위해 존재했던 내 지난날의 흔적들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곳에서 검둥이 밥을 주며 생활한 노현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노현이 우동가게를 찾아온 청년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장을 고발해서 밀린 임금과 퇴직금을 받았더라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밑천이 되었을 텐데…….노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나는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내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웠던 사람이라 기억하고 싶었다.
나뭇잎이 가을의 깊이를 더하며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내 상처 입은 마음의 이야기들을 지우기 위하여 처절하게 찢어지며 떨어지고 있었다.
노현의 이야기를 전하였던 청년은 담배를 피우며 이런 글을 우리 가게에 써놓고 사라졌다.

우산

비 오는 날
우산을 쓰지 못하고
신문을 우산 대신 써야 할 생활

어느 만큼도 아닌
우산 크기만큼의
자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 「두 가락 우산 크기만큼의 삶」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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