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는 어떻습니까?”
“일자리요?” 레미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안 그래도 직원을 고용할 참이었는데.”
“사업을 하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정원사가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후임자를 찾는 중이었습니다.”
레미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았다. 이 양반이 날 제대로 보기는 한 걸까? 정원사를 하라고? 나보고? 왜, 차라리 보모로 고용하지 그래?
“그게…… 그러니까……”
“생각해봐요. 숙식이 제공되고 월급도 받는 일인데…….”
레미는 웃음을 꾹 집어삼켰다.
“정원이 그렇게 큽니까?”
“성을 한 채 가지고 있습니다.”
“파리에요?”
“아닙니다. 여기서 대략 200킬로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선생을 도울 수 있다면 난 진심으로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 요즘 세상에 어디 선생 같은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인가요. 한번 해봐도 나쁠 건 없지 않습니까? 월급은 1200유로 정도면 어떨까 합니다.”
레미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해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그만두셔도 됩니다.” 경은 결정적인 말을 덧붙였다. “ 수습 기간이라는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레미는 묵묵히 상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강한 호기심과 더불어 작동된 계산기로 복잡한 방정식을 풀고 있었다.
우선, 놀라움이 먼저였다.
나한테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진정으로 날 도와주고 싶어 한다, 이 말이지? 단순히 동정하는 게 아니라?
그 다음은 감동이 뒤따랐다.
선뜻, 나를 자신의 집으로, 아니 자신의 성에 와서 지내라는 제안을 할 정도로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가 정말 있다는 거야? 제대로 된 일자리에 월급까지 얹어서? 차에 있던 물건들을 날라줬다고 주는 푼돈이 아닌 월급을…….
곧이어 의심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식 근무. 시간 엄수, 시간표, 일과표, 각종 지침…….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진 내가 과연 다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맞은편에 앉은 경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레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방정식의 정답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봐준 사람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조롱이나 편견, 호의를 가장한 거만한 태도 없이.
“자, 레미. 어떻게 생각해요?
--- p.29~31
“지금부터 게임의 규칙을 알려주지.” 경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붙잡혀 있던 네 사람에게 게임의 규칙을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다른 선택권도 없었다.
“어이, 너, 노숙자. 잘 들어.” 경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넌 프랑스어를 알아듣잖아. 나머지 녀석들한테 설명해 주라고. 내가 주말 동안에 친구들을 내 성이 딸린 사유지에 초대했거든.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야.”
그의 초대 손님들은 성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인데 하나같이 기괴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잡일을 하는 일꾼이 안장을 얹은 말 두 마리를 데려왔다. 사냥개들은 우리 밖으로 나온 게 기분 좋은 듯 신나게 짖어대고 있었다.
레미는 이미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머릿속으로 그려본 그림이 과연 실현 가능한 일인지는 직접 겪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노숙자 이전의 삶을 살던 당시, TV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몰이사냥이었던 것이다. 다른 점이라면 참가 인원이 소수라는 것, 그리고…… 그리고…….
“내 친구들과 나는 오늘 제대로 된 사냥을 한 판 벌일 거야.” 성주는 레미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 생각에는 우리가 뭘 사냥할 것 같아?”
레미는 대답하기 전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목이 콱 막혔다. 밤새 편도가 붓기라도 한 듯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았다.
“설마 우리를…….” 결국 입이 떨어졌다.
“그렇지! 넌 이해가 빠르군 그래. 다른 녀석들은 한참을 생각하고도 이해를 못하는데 말이야.”
다른 녀석들? 레미는 이를 악물었다. 진짜 사이코패스의 소굴에 끌려온 것이다.
--- p.39~40
“우리, 결국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 거겠지?” 사르한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맞아. 벗어날 수 없어……. 그런데도 왜 계속해서 멍청하게 도망만 다니고 있는지 모르겠어. 그냥 여기서 죽치고 앉아 기다리지 않는 이유도 모르겠고!”
“희망 때문이야. 언제나 희망이라는 게 있으니까.” 사르한은 반박조로 대꾸했다. “생존 본능 같은 희망.”
“빌어먹을 생존 본능!” 레미는 버럭 화를 냈다.
“포기하지 마! 우린 해낼 수 있어. 느낌이 와…….”
“방금 전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했잖아.” 레미는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내가 보기에 당신이 지금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거든.” 사르한이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말했다.
레미는 통증 때문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사르한은 깔깔대며 웃었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 레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당신네 나라 속담 중에, 곰을 제대로 잡기도 전에……”
“가죽부터 팔지 말라고. 나도 알아! 그런데 상황이 그게 아니잖아! 곰을 잡으러 따라오는 게 정신 나간 사이코패스라면……. 돈 많은 부자새끼들!”
“돈 많은 거 하고는 상관없잖아…….”
“성 주인인가 하는 새끼가 그랬어. 이 짓거리 즐기려고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왔다고! 당신도 들었잖아?”
“살인범들은 어딜 가나 있어……. 돈이 많거나 없거나.”
“그래. 그렇다고 해도 이 새끼들은 가진 게 돈밖에 없는 새끼들이야!” 레미는 끝까지 부자들의 장난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두 사람은 다시 마라톤을 시작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 빠르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엔진을 돌릴 연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공포뿐이었다.
--- p.227~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