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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약속

담양의 약속

[ 양장 ] 가사수필집-0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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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0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92쪽 | 305g | 153*224*12mm
ISBN13 9791189958183
ISBN10 11899581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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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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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아들 결혼식에 여유롭게 간다는 게
너무 빨리 예식장에 도착하게 되어서
친구 부부 신랑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신부에게 인사도 모두 다 마쳤는데
예식 시작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고
앉을 자리 하나 없어 이곳저곳 서성이다
홀 저쪽 식당이 내 눈에 들어오고
아침 식사 든든하게 하고 나온 데다
시간 일러 그냥저냥 돌아오려 했는데
식당으로 들어가 앉을 자리 둘러보다
큰 테이블 혼자 앉은 중년 부인 보이는데
저 사람도 나와 같이 혼자 온 모양이라
음식접시 손에 들고 부인 앉은 테이블 가
가볍게 인사 하고 자리에 앉았는데
마침 잘 되었다고 반갑게 맞이하네
어느 쪽 하객이세요?
신랑요
그래요? 난 신부 쪽이에요
신랑이 키도 크고 잘 생겼던데요
신부도 인물 좋고 유명 기업 과장이죠
신랑신부 신상 얘기 어지간히 끝나고
결혼할 때 마음과 똑같이 산다면
불행한 부부는 없을 거라는 둥
처음 만난 사람과 예의로 몇 마디
나눈다고 하기엔 수다가 길어지고
심심하던 차에 장단 맞춰 듣는데
자부심 넘쳐나는 얼굴로 말을 잇네
남편하고 잘 맞아서 나는 참 좋아요
그녀는 남편과 행복하게 잘 살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기다랗게 말하는데
행복론에 섞여있는 남편 자랑 이어지고
행복한 사람이 어떤 결핍 가졌기에
처음 본 날 붙들고 저리 자랑하는 걸까
은근히 심사가 슬금슬금 꼬이는 게
결핍은 나에게 있는 건지 모르겠고
심사가 꼬여도 접시는 비어가고
음식을 더 가지러 다녀오고 싶은데
부인의 남편자랑 끝이 없이 이어지고
이러다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식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아닐까
슬며시 일어나려 몸짓 하는데
이제껏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던
부인 목소리 맞나 싶게 가느다란 소리가
한숨처럼 흘러나와 내 귀에 부딪치네
행복하게 살려면 누군가 져야 해요
우리 남편 너무 강해 내가 평생 져 줬어요
일어나던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는데
잘 맞아서 좋은데 평생을 져줬다고?
부부가 투쟁 상대 아닐 터이니
이기고 지는 게 무슨 상관일까만
잘 맞는 것 져주는 것 같은 의미일 수 있나
그러면서 행복한 게 가능한 일인가?
서울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지하철 타고서 친구 만나러 가는데
낯선 사람들과 몸 부딪히며 다니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아
반듯이 앉아서 앞만 보고 가는데
옆에 있던 노부인이 말을 걸었고
삼십 분이 넘는 시간 끊임없이 이어지는
노부인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자기 자식 공부 잘하고 성공한 이야기
며느리 사위 잘 얻은 이야기
얼굴엔 자부심이 차곡차곡 흐르고
고개까지 끄덕이며 예의 갖춰 들었지만
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고 있나
나는 왜 이렇게 듣고 있어야하나
깊은 곳에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그렇게 한참동안 이야기하던 노부인이
문득 한마디 혼잣말인 듯 흘리네
이제 모두 제 살길 찾아서 떠나고
집에 들어서면 아무도 없다오
할 말을 찾지 못해 잠시 머뭇거렸고
이제 다왔다며 노부인이 일어서고
가볍게 인사하는 나를 뒤로하고
노부인이 한 걸음 앞으로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내 쪽으로 돌아와
몸 살짝 기울이고 내 손등에 손 얹으며
나지막이 한마디 조용히 건네네
말 들어줘서 고마워요
멍하니 앉아있다 정신 바짝 들었고
나는 그저 싫은 내색하지 못해서
무성의하게 흘리며 들었을 뿐인데
노부인의 외로움 그제야 느껴지고
자기가 잘못 산 게 아니라는 위로
자기가 잘못 산 게 아니라는 확신
누군가에게, 아니 자기 자신에게
확인받고 싶었던 것뿐이었는 걸
그 후로 한동안 지하철을 타게 되면
말 들어줘 고맙다던 노부인 생각났네
이 부인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
나는 겨우 가져온 접시 다 비도록
부인의 남편 자랑 계속해서 들었고
이 부인도 내가 말 들어줘 고마울까?
하긴, 나도 요즈음 친구들과 만나면
끝도 없이 수다 떨다 모임 끝날 즈음에야
말 많았나 후회하고 실언했다 싶은 날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발등 찍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 걸까?
예식 시작 시간 되어 식장으로 들어가
아이들 바라보니 사랑스럽기 그지없어
이 아이들 이다음에 아무나 붙들고
말하고 싶은 날이 끝내 오지 않기를
시간이 많이 흘러도 행복하길 기원했네
--- 「들어줘서 고마워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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