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정장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큰 키의 남자는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이 눈썹을 덮을 정도로 내려와 있었고, 갸름한 턱 선이 눈에 띄게 멋진 얼굴이었다. 물론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는 크고 맑은 검은 구슬을 날카로운 눈에 박아 넣은 듯, 준수한 외모와는 달리 위험한 분위기를 풍겼다. 게다가 젊었다. 아니, 어려 보였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풋풋한 싱그러움도 위압적인 그림자 속에 묻어났다.
“앉아도 되겠습니까?”
남자가 나를 질책하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어 왔다. 순간, 나는 이 남자가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건지보다 이 사람이 나와 무슨 관계로 얽혀 있는지가 궁금했다.
“앉으세요…….”
남자는 내 말에 따라 순순히 회색 소파에 몸을 내렸다. 그러곤 지쳤다는 듯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슬며시 끌어내렸다. 그의 스스럼없는 모습에 미묘한 떨림이 일었다. 매끈한 라인을 자랑하며 부드럽게 닫힌 입술을 보니 알 수 없는 긴장감마저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노골적으로 쳐다보시는군요.”
집요한 내 시선에 남자가 옅은 미소를 흘렸다. 당황한 나는 뜨거워진 얼굴을 감추려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알싸한 알코올의 기분 좋은 느낌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누구시죠?”
난 내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일부러 힘주어 말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탁자 위로 향했던 남자의 시선이 천천히 내게로 옮겨 왔다. 온화해 보이지만 결코 착해 보이지 않는 강렬한 눈빛이었다.
“그 사이 내 이름도 잊어 먹은 겁니까?”
그는 입가가 살짝 올라갈 정도로 미소짓더니 곧 언제 그랬느냐는 듯 차가운 표정으로 돌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