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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신록

우연의 신록

지도연 | 가하 | 2012년 12월 2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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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12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520쪽 | 644g | 150*200*35mm
ISBN13 9788966474660
ISBN10 8966474667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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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이 이리하라 널 사주하셨느냐?”

“싫습니다. 제가 싫습니다. 남의 인생을 살았다니 끔찍합니다. 이제는 제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가고 싶은 곳도 가보고 보고 싶은 곳도 보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단 말입니다.”

“예녹연!”

신우의 서슬 퍼런 꾸짖음에도 녹연은 발작하듯 대들었다.

“제가 왜 예씨입니까? 저도 모르는 제 성을 오라버니는 어찌 알고 계십니까?”

짓무른 눈가며 떨리는 손이며 상처받은 모습을 감추려고 독설을 해도 신우는 녹연의 그 모습이 더 안쓰러워 마음 한구석이 당겨 왔다.

“녹연아, 네 마음 아픈 것 모두 안다. 이 품에 안겨 밤새 운다 해도 내 꼼짝 않고 널 놓지 않을 것이니, 녹연아…….”

안으려는 신우의 손을 피하며 녹연은 냉정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제는 애초부터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오라버니를 좋아하지만 오라버니를 오라버니라 좋아한 것인지 지아비로 좋아한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혼례일도 잡혔습니다. 어제는 제 처지가 너무나도 괴로워 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자고 나자 이상하게도 갑자기 홀가분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라버니를 가족으로 사랑하였지, 남자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둔중한 것이 쿵 마음을 때렸다. 어찌나 야무지고 세찬지 순간적이나마 신우는 숨을 들이마셨다.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혹 본심이 얼마라도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사악한 의심이 올라왔다. 녹연을 향한 사랑이 때때로 소유욕으로 나타나 그녀의 날개를 꺾으려 하지 않았는가.

그 사랑이 무거울 수 있었겠지, 숨 막힐 수 있었겠지만. 입맞춤, 사랑하지 않으면 어찌 그리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네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네가 뭐라 하여도 우리는 부부가 될 것이다.”

“싫다 하지 않습니까, 이제 제발 놓아달라 하지 않습니까.”

야무진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신우의 살점을 도려냈다. 살이 낱낱이 뜯기고 피가 철철 흐르는데도 잔인한 도륙은 멈추지 않았다.

“놓아요, 놓아요, 날 그냥 두라고요!”

악에 받친 녹연의 목소리에 신우는 김빠지듯 그녀를 놓아주었다.

“떠날 것입니다.”

뚝!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녹연은 몸부림쳤다. 울부짖으며 벗어나려 했다.

신우는 놓지 않았다. 더 짓밟고 탐했다. 첫날밤의 달콤한 고백과 부부됨의 신성한 의식을 고대했건만, 결국 고이 남겨두고 간직하고 참고 있었던 소중한 의식들을 교미에 미쳐 발광하는 미친 수컷처럼 쏟아 부으려 했다.

“떠날 수 있으면 떠나봐! 오늘밤 내 씨를 네 몸에 심을 것이니 떠날 수 있으면 떠나보란 말이다!”

갈구하고 갈구하던 욕구가 응집되어 터져 나오려 했다.

“저를 범하셔도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연의 곡조처럼 녹연의 목소리가 흘렀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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