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한 존재다. 할 이야기가 많아야 불안하지 않다.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 사회적 지위가 그럴듯할 때는 그래도 버틸 만하다. 자신의 지위에서 비롯되는 몇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가 사라지는 순간 그 이야기도 끝이다. 남자가 나이 들수록 불안하고 힘든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도무지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의 물건’이다.---p.8
재미와 행복이라는 궁극적 가치에 대한 진지하고 꾸준한 성찰이 있어야 수단적 가치도 이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행복과 재미에 관한 어떤 사회문화적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 이 사회에는 감각적이고 말초적 재미만 남아 있다. 딸 같은 걸그룹 허벅지나 아들 같은 아이돌 초콜릿 복근이나 이야기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모여 앉으면 막장드라마 이야기를 반복하고, 허구한 날 정치인 욕하는 방식으로는 삶이 절대 흥미진진해지지 않는다. 폭탄주 마시며 룸살롱에서 아가씨와 아랫도리나 비비는 방식으로는 절대 즐거워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설렘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pp.33-34
새해에는 즐거운 결심을 해야 한다. 새해 첫날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계획하거나 차가운 바닷물에 다이빙 하지 말자는 거다. 제발 나를 괴롭히며 싸워 이기려고 달려들지 말자. 이미 충분히 많이 싸웠다. 나 자신은 절대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아니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설득해야 할 아주 착하고 여린 친구다.---p.65
소변 줄기가 막히는 것도 그렇게 두려워 그 난감한 전립선 검사조차 마다 않는데, 온통 상처투성이인 마음에는 왜 정기검진이 없을까? 건강검진뿐만이 아니다. 자동차도 때 되면 정기검사를 받는다. 길바닥에 느닷없이 차가 서버리는 황당한 상황이 두려워 아주 철저하게 닦고 조이고 기름 친다. 그러나 내 마음이 도대체 어떤 상태인지 검사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토록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지금까지 버텨온 내 마음이 아무 이상 없을 거라는 그 황당한 믿음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p.101
“(…) ‘처음처럼’이라는 게 뜯어내는 게 아니고, 뭔가 그 다음 장을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쓰는 것, 그래서 글씨가 좀 잘못되었더라도 뜯어내지 않고 다시 시작함으로써 결국 두꺼운 노트를 갖게 되는 그런 마음이 필요하다. 산다는 것은, 인생이라는 것은 결코 뜯어낼 수 없는 거다. 늘 이제 다시 시작하는 마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뭐 이런 뜻으로 시작된 거예요.”---pp.189-190
“지금도 독일에 가면 꼭 그렇게 프리슈틱을 먹어야 해요. 그게 벌써 20년이 지났는데도 항상 그게 그립고 또 그렇게 생각이 나요. 그때 온가족이 막 재미있게 하루 이야기하고……. 옛날 한국에서는 밥상에서 말 많이 하면 어른들이 뭐라 했잖아요……. 얼마나 재미있게 웃고, 아이들은 서로 자기 이야기 들어달라고 하고, 또 아이들 나이가 꼭 그럴 때였어요. 정신없이 아이들 하는 이야기 듣다 보면 그게 너무 행복하고…… 이거를 볼 때마다 우리한테 그 소중한 시간들이 떠오르고…… 그게 독일이 가져다 준, 우리한테는 아주 굉장히 소중한 선물이 아닌가 생각해요.”---pp.199-200
문재인, 생각이 아주 정확하고 논리가 쉽다. 자신의 명예나 권력 의지 때문에 지금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음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방에게 믿을 수 있게 설득한다. 상대방을 믿게 만드는 것, 이것은 아주 특별한 능력이다. 그의 보캐블러리에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꼼수’가 전혀 없다.---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