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열쇠는 동일한 작품에 꽂혀 있지만 저마다 다른 것을 열고자 한다. 때로는 명쾌한 양립이 불가능한 열쇠들도 있다. 내용상 장려하는 관점에서 어느 한쪽은 무시되고 부정당하며 심할 때는 서로를 폄하한다. 작품의 구체적 특징을 다루는 과정에서 작품마다 상대적으로 감상에 도움이 되는 열쇠가 있게 마련이고, 이러한 중요도는 열쇠를 다루는 순서로 반영했다. 하지만 이런 순서는 지극히 임의적이며 작품마다 열쇠는 다른 방식으로 정렬할 수 있다.
---17쪽, 「들어가며」에서
마티스가 주장한 이론의 핵심은 회화의 조형적 언어가 음악에 비견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음악은 모방이 아니다. 즉 세상의 소리를 모방하는 것이 음악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림 역시 눈에 보이는 형태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형태, 선, 색채와 질감, 조합, 균형, 대조, 리듬, 복합성을 구성하는 방식 등의 ‘시각적 음악’을 활용한다. 각각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이 감정에 직접 공명하는 것을 통해 그림은 효과적인 표현 매체로 바뀐다.
---36쪽, 「앙리 마티스 ─ [빨간 작업실]」에서
[비외 마르크 와인병, 잔, 기타 그리고 신문]의 주제는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익숙하다. 게다가 작품은 제목에서 명시한 사물들의 ‘정물화’이다. 이토록 익숙한 분야인데도 이전의 어떤 것도 여기에 영향을 준 바는 없다. 이 작품의 파격적인 본질 그리고 피카소와 프랑스 화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가 제작한 유사한 작품들은 주제가 아닌 형태를 대담하게 분해하고 도구와 기법의 규범을 무시하는 방식을 더 중시한다. 이들은 이후 현대미술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48쪽, 「파블로 피카소 ─ [비외 마르크 와인병, 잔, 기타 그리고 신문]」에서
미술가로서 뒤샹이 가지는 위상은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을 창조했다는 것 이상이다. 그는 발견한 오브제, 스테인드글라스, 문자, 영화, 애니메이션, 오늘날 설치 미술이라 부르는 것까지 광범위하게 보태거나 결합해 레디메이드 작품을 미묘하게 변화하거나 지지했다.
---76쪽, 「마르셀 뒤샹 ─ [샘]」에서
하지만 호퍼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미학적 요소, 무엇보다 형식의 단순화와 구성 방식의 측면에서 드러나는 파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뉴욕 영화관]은 단연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호퍼의 작품 구성 방식은 영상 촬영 기법의 영향을 받았다. 많은 인상주의 작품이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내는 크로핑(cropping) 같은 사진 기법을 참고한 것으로 보이지만, 호퍼의 작품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스틸컷과 좀 더 비슷해보인다. [뉴욕 영화관]은 빛과 음영을 이용해 강렬한 장면 대비 효과를 주는데, 이는 당시의 흑백 영화에서 흔히 차용하던 기법이었다.
---107쪽, 「에드워드 호퍼 ─ [뉴욕 영화관]」에서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칼로의 작품들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도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무렵 페미니즘 학계에서는 여성 화가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비서구권의 예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것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담론을 나누기 위해 현지 화가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칼로의 충격적 개인사를 캐내느라 정작 그녀의 작품은 묻히거나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분석하기 위한 예시가 되어버렸다. 작품에 담긴 급진적 동요라는 맥락 그리고 멕시코에서 그녀의 작품이 정치적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맡았던 역할은 간과당하기 일쑤이다.
---128쪽, 「프리다 칼로 ─ [짧은 머리의 자화상]」에서
로스코는 자신이 오랜 전통을 따르는 화가라고 여겼지만, 그래도 예술이란 새로운 활력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가 생각한 회화의 주된 목표는 자신이 생각하는 ‘비극’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유대인 로스코는 살아남은 사람의 죄책감과 유사한 감정을 통렬하게 느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장식적 색채 관계와 연결하지 않으려고 했다. 명백한 주제, 감정의 붕괴와 흐느낌 같은 강렬한 반응 없이도 위대하고 고결한 작품에 담긴 핵심 내용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156쪽, 「마크 로스코 ─ [밤색 위의 검은색]」에서
무엇보다 워홀이 만든 전기의자 작품은 전부 똑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 워홀이 제작한 다양한 버전의 작품에서 원본 사진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틀에 가두거나 잘려 있다. 여기서 미루어볼 때, 워홀은 시각적이고 구성적인 문제는 물론 이러한 선택을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170쪽, 「앤디 워홀 ─ [커다란 전기의자]」에서
작품 사진은 실제 작품과 조우했을 때의 인상이나 촬영 이후 생긴 변화의 기록을 제대로 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작품 제작 날짜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작품의 꾸준한 진화를 염두에 둔 스미스슨의 의도를 고려한다면 ‘1970-현재’가 제대로 된 표기일 것이다.
---212쪽, 「로버트 스미스슨 ─ [나선형의 방파제]」에서
현대미술에서 양식을 판단하는 기준은 선의 진행과 억제를 전개하는 방식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예술가는 모더니즘 미학이 지지하는 순수성에 저항하고자 의도적으로 신화 속 이야기를 차용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종결이라기보다 그것에서 파생된 기조로 보인다. 실제로 오늘날의 시각에서 바라볼 때 소위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를 표방한 신표현주의는 동시대 미술계에서는 지배적 특징이 되어버린 절충적 다원주의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226쪽, 「안젤름 키퍼 ─ [오시리스와 이시스]」에서
데카르트는 존재의 확실성을 다지기 위한 가장 탄탄한 근거는 지속해서 사유하는 능력이라 주장했다. 반면 크루거는 그러한 이상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힘에 자리를 내어주었고, 상품이 가지는 정신적 가치는 어마어마해졌다고 반박한다. 대중은 자신의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에서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만족감을 느낀다. 쇼핑을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셈이며 그런 사람은 실체나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탈산업화 사회에서 쇼핑은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행위 이상의 의미이며, 이제는 개인이 자신의 존재 인식을 구축할 방법을 찾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 되었다.
---248-249쪽, 「바버라 크루거 ─ [무제(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조응] 속 붓 자국은 즉흥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고심 끝에 나온 것이다. 이우환은 동아시아 회화의 전통 방식대로 바닥에 캔버스를 눕힌 다음, 머릿속에 생각한 붓 자국 크기에 맞춰 잘라놓은 종잇조각을 여기저기 시험 삼아 갖다 대본다. 그런 다음 물감을 묻힌 커다란 붓을 들고 느리고 신중하게 자국을 남긴다. 그리고 다시 캔버스를 수직으로 세우고 더 세밀한 붓으로 붓 자국을 정연하게 한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이우환은 비교적 계획적이면서 사유적 차원의 작품을 그려나간다. 자연스러운 단순함이 인상적인 완성작과는 대위를 이루는 방식이다.
---307쪽, 「이우환 ─ [조응]」에서
한국에서의 생활은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주었다. 실제로 『세븐키』에서 제시한 일곱 가지 시선의 상호 보완적 위상이라는 개념은 분명 서양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낯선 사고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로 다른 사고 방식을 통해 문화적 인식이 제약받는 이유와 함께 예술과 습관적 사고의 동반적, 배타적 관계에도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333-334쪽, 「마치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