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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란 건 무겁다. 잠에도 무게가 있다. 그 무게가 엄청날 때도 있다. 잠 자체로 말이다. 움직일 수도, 부정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 잠의 무게가 가벼울 때도 있다. 그럴 땐 잠을 등에 지고 걸어 다닐 수도 있다. 꿈을 꿀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울 때도 있다. 하지만 가벼울 때보다 무거울 때가 더 많다. 잠은 바다와 같다. 나는 잠이라는 이름의 바다 깊은 곳 바닥에 고정되어 꼼짝하지 못한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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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당신이 오늘 저녁 내내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괜찮아요. 나도 당신한테 거짓말을 했으니까. 그 사고가 있기 전에, 기면증이 생기기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었죠. 난 그 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난 항상 깨어 있었어요. 아무것도 놓치는 일이 없었죠. 한 번에 책을 몇 페이지 넘게 읽을 수 있었어요. 담배도 피우지 않았어요. 진짜 극장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어요.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뜨는 일도 없었어요. 일부러 늦게까지 잠을 안 잘 때도 있었죠. 내가 원할 때 일어나고, 내가 원할 때 자러 갈 수 있었어요. 잠은 내 애완동물 같은 거였습니다. 항상 내 통제 하에, 내 계획 하에 있었고, 가끔 산책을 시켜주면 됐으니까. 앉아, 누워, 엎드려, 가만히 있어, 앞발을 올려. 지금은 아니죠. 난 혼잡니다. 다른 모든 건 주변부로 떨어졌어요.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말입니다. 만질 수도 없어요. 시간이 모자라서 다 놓쳐버리게 되죠. 난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질 수 없고,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볼 수도 없어요. 어머니의 도움이 없을 땐 항상 몽유병 상태로 삽니다. 내가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 당신이 어떤 사람을 함정에 빠뜨렸는지 알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더 있습니다. 아직 끝이 아니에요. 아직은. 난 내가 보통 사람처럼 생겼을 때를 기억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내 얼굴을 바로 잊을 수 있었죠. 더 있어요. 난 내가 잃은 모든 걸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건 그게 전붑니다. 내가 잃은 것, 잃어버린 것......” --- pp.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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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만큼이나 무겁고 두껍게 느껴진다. 내 세계는 다시 어두워지고 있다. 하지만 흑백 사진이 벽에 걸려 있는 게 보인다. 어머니는 저 사진들을 떼어놓지 않았다. 한 장도. 이런저런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잊지 않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어머니가 수집한 기억들을 제자리에 보관하기로, 어머니 인생의 기면증에 대항해 싸우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 p.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