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만으로도 설렙니다. 우리들 이름이 들어간 책이 세상에 나온다니. 일 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이런 꿈 같은 일을 계획하고 이루어낸 것은 대구에 있는 ‘청소년 인문학 모임 강냉이’의 친구들입니다.
열네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우리 열아홉 명의 청소년들은 매주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작은 교실에 모여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며 공부합니다. 또, 우리는 교실 안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읽은 책의 저자가 사는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4대강 사업 완공식 날에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내용의 손팻말을 직접 만들어 강정보 앞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방학에는 우리가 목적지와 교통편, 식단과 프로그램까지 스스로 기획한 캠프도 열었습니다. 또, 원자력 문제에 대해 함께 공부했던 것을 바탕으로 우리와 비슷한 청소년 모임에 가서 또래들을 대상으로 탈핵에 관한 강의도 해보았습니다.
이 년이라는 시간 동안 새로 온 친구들도 있고 떠난 친구들도 있지만, 즐겁게 모여 공부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 공부했던 것을 남기자는 뜻에서 ‘책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강냉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자치적이라는 것입니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의 의견을 모아 계획을 짜고 실행에 옮깁니다. 지금까지 강냉이의 활동은 대부분 그렇게 자치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번 ‘책 만들기 프로젝트’는 그런 강냉이의 자치성을 최대로 발휘한 가장 큰 규모의 활동이라는 점에서 모두에게 의미 있는 활동입니다. _ 「책을 내면서」 중에서
저도 도시에서의 생활보다 지금 이곳에서 동생들과 칼싸움을 하고 시소를 만들고, 나무를 하고, 고구마를 캐는 일이 훨씬 즐겁고 신납니다. 지금 제가 영덕에 와서 농사를 배우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급자족할 수 있는 공부를 하는 것은 파국으로 달리는 산업사회와 탐욕스런 사회의 욕망에 맞서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는 불의 세기를 어떻게 자유자재로 조절하는지, 부러진 연장 자루는 어떻게 만드는지, 내년에 우리가 먹을 오이 씨앗을 어떻게 말려 보관하는지 등 궁금한 것들을 물어가며 배우는 중입니다. 친구들과 서로 신성한 존재로 만나 즐겁게 놀고, 스스로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자연과 시의적절하게 조율해 나가는 자급자족의 삶에 대해서 계속 공부해 나갈 것입니다. _ 박준하, 「학교를 나와, 도시를 거쳐, 농촌에 가다」 중에서
우리는 탈핵이라는 주제를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해서 생각해야만 한다. 방사능에 의한 피해들도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는 좀 더 절실하게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고, 더 이상 탈핵이 불가능하다고만 믿어서는 안 된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지는 관심이 언젠가는 정책을 바꾸게 될 것이고 전체적인 의식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우리는 안전하게 이 땅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하고 핵에너지의 위험성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히로시마를, 체르노빌을, 그리고 후쿠시마를 잊어선 안 된다. _ 정해민, 「후쿠시마의 경고」 중에서
잠깐 생각해 보자. 왜 이 이야기의 제목은 ‘닭장을 나온 암탉’이 아닌 ‘마당을 나온 암탉’일까? 마당에서의 삶, 그것은 잎싹이 알 낳는 기계처럼 살던 시절에 꿈꾸던 것이었다.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한 낙원. 그러나 실제로 가본 마당은 그렇지 않았다. 따뜻함이 없고 권력만이 있었다. 양계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더럽다고, 병을 옮긴다고 쫓아내려고 했으며 “아무도 너를 원하지 않는다”는 잔인한 말까지 한다. 닭장 안에서 문 틈으로 보았던 행복한 모습은 단지 겉모습일 뿐이었다. 마당 밖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다. 살기 위해서는 족제비와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로부터 피할 줄 알아야 했다. 잎싹은 무기라고는 부리와 발톱밖에 없는 늙은 암탉일 뿐이다. 그러나 잎싹은 스스로 마당 밖을 선택했다. 수탉이 가진 권력 아래 구박받으며 사느니, 위험천만하더라도 자유로울 수 있는 바깥으로 간다. _ 변해빈, 「아름다운 암탉의 이야기」 중에서
근대역사관을 둘러본 후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여전히 빗방울이 땅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이런 것도 추억으로 남을 테니,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구읍성의 둘레를 걸으면서, 주변의 가게들이 너무 낯설기만 했다. 특히 북성로는 대구에 살면서 처음 와보는 곳이기도 하고, 우리 동네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철물점들이 많아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
계산성당에서 큰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 계산오거리, 계산오거리 모퉁이를 돌아서면 벽면에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던 서상돈의 얼굴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들의 고택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을 만난다. 이상화 고택으로 들어서니 마당 한구석에 그의 시가 새겨진 돌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입을 모아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낭송하였다. 빗방울 소리는 배경 음악이 되어주었고 우리의 목소리는 그의 집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_ 김수연, 「대구읍성의 흔적을 따라서」 중에서
가슴이 따뜻해지고 평온해지는 시가 백석의 시인 것 같다. 백석이라는 시인은 평안북도 정주에서 살아온 시인이라서 우리가 잘 모르는 단어들이 시 속에도 많이 나타나 있다. 하지만 위의 두 시들은 모르는 단어가 많아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꼭 그 자리에 있는 느낌이 들고 시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포근하고 따뜻하다. 마음을 치료받는 느낌이 든다. 이 시들도 그렇고 다른 시들도 읽으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다. 그래서 백석 시가 좋은 것 같다. _ 채홍주, 「따뜻한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 중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살아오면서 스쳤던 수많은 옷깃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서로 좋은 인연일까? 우리가 서로 좋은 인연이라면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가끔 생각해 본다. 나의 별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별인가. 내가 별을 올려다보았던 것만큼 별은 나를 쳐다봐 주었을까? 별이 나를 내려다보았던 것만큼 나는 별을 쳐다봐 주었을까? 서로에게 조금 더 빛나는 별이 될 수 있었는데 나의 실수로 어둠 속에 사라진 것은 아닐까? 이런 후회와 반성을 통해 나는 내 안의 별을 조금 더 반짝이게 닦는다. 나중에 다시 만날 때 나의 별이 나를 조금 더 찾기 쉽도록. _ 허민도, 「별 하나 나 하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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