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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속에 호랑이
최정례
아침달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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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달 시집

책소개

목차

1부- 시간

드디어

어처구니없는 구름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저녁에 잡혀 온 도둑
지락와도
거울 속에 거울 거울 거울
낮달
능소화가 있는 마을
끝 장면
어떻게 왔을까
북소리
옛집 앞을

2부- 혹은 죽음

마당을 덮어가는 그림자
약국을 지나다
산벚꽃나무하고 여자 그림자하고

저 햇빛 삼천갑자를 흘러
길이 움푹 패이다
그 나무 뒤
티티카카, 티티카카, 서울
봄 소나기
사막 편지
공룡 발자국을 보러 갔다
고기 사러 갔던 길
냄새
안 돌아온 여행

3부- 또는 노동

밥 먹었느냐고
햇빛 속에 호랑이
비 맞는 전문가
자고새
3분 자동 세차장에서
누운 시인

자개장롱 속으로
자전거가 있었다
무쏘 앞에 흩어진 사과 장수

쥐똥나무는 쥐똥나무 열매를 매단다

4부- 사랑

돌멩이가 나를 쥐고

유리 닦는 남자
꽃핀 복숭나무에게
그 모자
수박에게
없는 나무
풍선 장수가 있던 사거리
금새를 잡은 벼룩의 행복한 손
돌멩이 어떻게 새가 됐을까
천사

해설 | 어른거리는 이미지, 주체의 자맥질 ―이수명

저자 소개1

崔正禮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 『햇빛 속에 호랑이』 『붉은 밭』 『레바논 감정』 『캥거루는 캥거루이고 나는 나인데』 『개천은 용의 홈타운』과 번역 시선집 『Instances』, 번역서로 제임스 테이트 산문시집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가 있다. 백석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21년 1월 16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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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59g | 125*190*8mm
ISBN13
9791189467159

책 속으로

꽝꽝나무야
꽝꽝나무 어린 가지야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
날 여보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
어린 가지야
꽝꽝나무야
나에게 물어줄 수 있겠니?
여보, 밥 먹었어?
엄마, 밥 먹었어? 라고
그럼 나 대답할 수 있겠다
꽝꽝나무야
나 밥 먹었다
국에 밥 말아서
김치하고 잘 먹었다
--- p.59

나는 지금 두 손 들고 서 있는 거라
뜨거운 폭탄을 안고 있는 거라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거라 빠빳한 수염 털 사이로 노랑 이그르한 빨강 아니 불타는 초록의 호랑이 눈깔을

햇빛은 광광 내리퍼붓고
아스팔트 너무나 고요한 비명 속에서

노려보고 있었던 거라, 증조할머니 비탈밭에서 호랑이를 만나, 결국 집안을 일으킨 건 여자들인 거라, 머리가 지글거리고 돌밭이 지글거리고, 호랑이 눈깔 타들어가다 못해 슬몃 뒤돌아 가버렸던 거라, 그래 전 재산이었던 엇송아지를 지켰고, 할머니 눈물 돌밭에 굴러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그러다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식의 호랑이를 만난 것이라
신호등을 아무리 노려봐도 꽉 막혀서

― 다리 한 짝 떼어놓으시지
― 팔도 한 짝 떼어놓으시지

이젠 없다 없다 없다는데도
나는 증조할머니가 아니라 해도

― 머리통 염통 콩팥 다 내놓으시지
― 내장도 마저 꺼내놓으시지

저 햇빛 사나워 햇빛 속에 우글우글
아이구 저 호랑이 새끼들
--- p.60

한참을 걷다가 집 한 채를 만났습니다 울타리 가득 붉은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거 같앴습니다 울타리 너머로 두 남자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아이고 하나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장독대 옆에도 칸난가 다알리아가 붉은 꽃대를 세우고 있었습니다 꽃을 좀 줄 수 있냐고 했습니다 안 된다 했습니다 두말 않고 돌아서 걸었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한 줄 불더니 나뭇잎들 쏟아지고 벌판이 삽시간에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오래 걸었습니다 아이가 달려오며 부르는 소리 들은 것도 같습니다 꽃을 내미는 것도 같았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릅니다 뒤돌아 안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돌아본 듯도 합니다 그 집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아니 착각인지도 모릅니다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오래전의 꿈입니다 무슨 뜻일까 무슨 뜻일까 수년을 생각했습니다 어디 먼 다른 생의 알 수 없는 끝 장면이 내 몸에 찍혀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후로 길은 길이란 길은 다 멀고 캄캄했습니다

--- p.25

출판사 리뷰

나와는 무관하게 유령처럼 흘러가는 이미지들

『햇빛 속에 호랑이』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장면 들은 꿈처럼 흐릿하다. 실재하는지 실재하지 않는지, 현실의 것인지 꿈속의 것인지 분간키 어려운 그 이미지들은 주체의 시선을 “조용히 스쳐 지나”가고 “급히도 사라져버린”다.

갑자기 바람이 한 줄 불더니 나뭇잎들 쏟아지고 벌판이 삽시간에 잿빛으로 변했습니다 오래 걸었습니다 아이가 달려오며 부르는 소리 들은 것도 같습니다 꽃을 내미는 것도 같았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모릅니다 뒤돌아 안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돌아본 듯도 합니다 그 집은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아니 착각인지도 모릅니다
―「끝 장면」 부분

“일 분 동안에 십수 년이 흘러”가는 기억의 시간 속에서 이미지는 흐릿한 상태로 삽화처럼 등장한다. 최정례의 시 속에서 이 기억의 이미지는 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있으며, 나는 그 시간의 한 틈에 놓여 흘러가는 풍경 사이를 스치는 존재로서 등장한다. 이 시집에서 현실과 몽환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설화, 민담과 상상이 뒤섞인 채로 장면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처럼 주체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유령처럼 흘러”가는 이러한 이미지들 속에서 독자들은 당혹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당혹감에 관해 해설을 쓴 이수명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실은 우리 또한 우리가 보고 있는 것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르며, 따라서 우리 또한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지금 우리의 눈앞에 놓여 있는 그것들처럼 우리 또한 처소 없이 순간적으로 편재할 뿐이라고 말이다.

흐릿한 생에 구멍 내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따라서 우리도 어디에 있는지 비로소 모르게 된다.”라는 이수명의 말처럼, 시집 곳곳에는 영문도 모르고 삶의 처소에 던져진 화자들이 등장한다. 「약국을 지나다」의 화자는 자신이 “왜 여기를 지나는지/왜 저 붉은 알약들을 바라보았는지/모른다”. 「고기 사러 갔던 길」의 화자는 고기를 사러 나갔다가 엉뚱한 장면들과 조우하며 길을 잃는다. 이러한 ‘삶 속에서 길 잃기’는 꿈이나 죽음과 같은 부재의 편린으로 자주 등장하며 변주된다.

때때로 그 꿈, 혹은 죽음 같은 부재는 자기 존재에 대한 외부의 부정으로도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여성의 노동과 관계하는 두 편의 시는 특히 그렇다. 「밥 먹었느냐고」는 가족 중 아무도 자신에게 밥 먹었느냐고 묻지 않아 꽝꽝나무를 향해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날 여보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라며 “밥 먹었어?” 하고 물어봐주겠냐고 요청하는 시다. 가족의 삶 속에서 그 존재가 축소되고 소외되는 여성의 날것인 목소리라 더 진실하게 다가온다. 표제작 「햇빛 속에 호랑이」는 이러한 여성의 희생을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패러디해 그려내고 있다.

부동자세로 두 눈 부릅뜨고 노려보고 있는 거라 빠빳한 수염 털 사이로 노랑 이그르한 빨강 아니 불타는 초록의 호랑이 눈깔을

햇빛은 광광 내리퍼붓고
아스팔트 너무나 고요한 비명 속에서

노려보고 있었던 거라, 증조할머니 비탈밭에서 호랑이를 만나, 결국 집안을 일으킨 건 여자들인 거라(…)
―「햇빛 속에 호랑이」 부분

호랑이를 만나 떡으로는 모자라 팔다리를 다 내어줄 정도로 자기를 희생해가며 집안을 일으킨 여자들의 이야기를 강렬한 채도의 이미지로 그려낸 이 시는 어떤 부정으로도 지워지지 않고 계속되는 여성성의 생명력을 간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시의 힘은 자기도 모르게 내던져진 흐릿한 생의 한가운데를 찢고 구멍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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