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아니야. 그런데 넌 날 좋게 보더라.” “그건…….” “너 나 좋아하지?” 노골적으로 묻는 말에 이원의 목덜미가 홧홧해졌다. 목덜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귓불부터 얼굴까지 당황스러움으로 붉게 익었다. 심술궂게 입매를 비튼 강호가 재차 입을 열었다. “말 했었잖아? 쪼개거나 지나친 관심 보이거나 하면, 다음에 또 그러면 나 좋아하는 걸로 생각하겠다고.” “그러니까 이건요.” 속에 뜨거운 물이라도 동이째 쏟아 부은 것처럼 화끈 달아오른 이원은 눈을 굴렸다.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지만 머리가 하얘졌다. “모자라거나 미친 거지. 어떻게 날 좋아하냐? 너도 하자야?” “누, 누가 좋아한대요?” 그녀를 미친 여자 취급하는 강호의 막말에 발끈한 이원이 고개를 치켜들며 항의했다. 그러나 강호가 엉뚱한 말을 뱉어냈다. “너 비위 좋냐?” “비위요?” “오바이트 잘 해?” “아니요. 그건 왜…….” 그 순간이었다. 빈 맥주병을 들고 있던 손을 그녀의 목뒤로 두른 강호가 바짝 다가서서는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볼을 잡아 그를 보게 했다. “뭐, 뭐 하는……!” 그녀의 입술에 말캉한 무엇이 닿았다. 알싸한 술 냄새가 코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눈에는 굳게 감긴 그의 눈꺼풀이 보였다. 이원은 눈을 부릅떴다. 백강호가 미쳤나 보다.
이원의 입술을 덮은 강호는 숨을 쌕쌕 내쉬는 작은 입술을 깊게 빨아들였다. 살짝 실눈을 떠 보니 튀어나올 듯 동공이 크게 확장된 이원의 눈이 보였다. “눈 감아.” 살짝 입술을 뗀 그가 나직이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그의 귀에 겨우 들릴 만큼 작은 소리가 입술 위로 부서졌다.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어지간히 놀랐나 보다. 강호는 탐색하듯 이원의 입술을 더듬던 것을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얕은 숨이 새어 나오는 입술 새를 혀로 찔렀다. 그러자 이원의 눈이 찢어질 듯 커지더니 이내 꾹 감아 버린다. 강호는 고개를 비스듬히 틀고는 이원의 목덜미와 귀를 감싸고는 그녀를 머금었다. 가지런한 치아를 지나 그 안쪽까지 파고든 그의 혀가 겁에 질려 바닥에 누워 있는 이원을 건드렸다. 혀끼리 매끄럽게 마찰되자 이원이 요상한 신음을 흘리며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가슴 속에 기이한 것이 눅눅히 퍼져간다. 강호는 혀를 더 깊이 찔러 넣고 보드라운 입술을 잡아 찢을 듯이 짓누르며 이원을 느꼈다. 막상 만지고 나니 손이 근질거려 죽겠다. 보들보들한 귓불을 잡아 살며시 문지른 강호가 한숨을 내쉬며 혀를 빼냈다. 그러나 입술을 떼지는 않았다. 이원의 입술 윤곽을 더듬으며 몇 번이고 그녀에게 마킹(Marking)을 했다. 거리낌 따위는 더 이상 없다. 마음이 선 이상 가진다. 강호는 이원의 목덜미를 고정시켰던 맥주병 든 손을 등을 타고 내려 이원의 허리를 당겨 그에게 밀착시켰다. 가볍게 부딪치는 입술에서 쪽쪽, 하는 소리가 연신 울렸다. 긴 입맞춤을 끝내며 이원의 아랫입술을 치아로 강하게 물어 당겼다. 그리고는 달래듯 한 번 더 강하게 빨아들인 후 입술을 떼었다. “정신 차려, 문이원.” 바짝 붙은 몸에서 지진이 났다. 맞닿은 가슴에서 천둥이 울렸다. 그의 셔츠를 꽉 쥐고 있던 이원이 그를 멍하니 보며 가쁜 호흡을 뱉어냈다. 강호 역시 그런 이원을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안까지 들여다 본 사람은 많지 않았는데 말이야.” 강호는 당연한 듯 이원의 목덜미를 터치하듯 손가락으로 쓸었다. “지금 나한테 이, 입 맞춘 거예요?” 이원이 입술까지 파르르 떨며 물었다. 강호는 대답 대신 그저 씩 웃기만 했다. “연애, 해볼까.” 이원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강호는 이원의 머리를 잡아 그의 가슴팍에 아프도록 눌러 안았다. “맹추랑 이렇게 묶일 줄 누가 알았겠냐.” 크게 들썩이는 가슴에 그곳에 묻힌 이원의 머리 역시 같이 들썩였다. 강호는 손안에 느껴지는 동그란 머리통을 몇 번 쓰다듬다 몇 방울 남은 맥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아쉬울 거 없다는 듯 이원을 놓아주고는 공사가 한창인 현장으로 발을 돌렸다. 강호의 행동에 그에게 안겨 있던 자세 그대로 굳어 있던 이원도 돌아섰다. 그는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와 일정거리 이상 벌어지려 하자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녀를 기다려주었다. “날 좋아해요?” 이원은 전에 그가 그녀에게 물었던 말을 똑같이 되물었다. 강호는 솔직하게 대답을 할까 어쩔까 하다 기주의 말을 떠올렸다. 그의 장점이란 건 솔직한 것뿐이라던. “그럼 넌 내가 아무한테나 키스하고 다니는 놈으로 보이냐?” 이원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가 입 안을 헤집던 느낌도 생생히 되살아났다. 정현이 늘 입에 달고 살던 로또 맞은 기분이 이런 걸까. 이원은 강호를 보며 해사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