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미디어는 생존을 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1929년의 세계공황을 신문지상에서 다시 읽어보면 미디어의 논조가 지금의 논조와 거의 흡사하다. 물론 그 귀결은 눈에 보인다. 경쟁은 절망을, 나눔은 희망을 가져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때로 희망은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내는 행동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희망이 생기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행복이 찾아온다고 생각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희망에는 수동적 희망과 능동적 희망이 있다. 팔짱을 끼고 앉아 있어도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이 수동적 희망이다. 능동적 희망은 절망에서 나온다. 바위를 산 위로 밀어 올리는 일을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시포스처럼 실패하고 또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패자의 처절한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능동적 희망이다. 나눔은 능동적 희망이다. 유대를 상실하고 고립된 인간들이 행동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눔은 지도자가 창출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 구성원의 행동을 필요로 한다. 이 책은 단순히 미래에 대한 희망만을 담지는 않았다. 오히려 실망을 담은 책에 가깝다. 행복은 서로 나누는 것인데, 나누어 가져야 할 행복을 서로 빼앗고 있는 일본 사회에 대한 실망이다. 현재의 위기는 나눔을 빼앗긴 데서 기인한다. 빼앗음을 나눔으로! 이 책은 이러한 행동을 요구하는 능동적 희망을 담았다. 우리가 위기를 넘어서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열쇠는 나눔에 있다. 그것이 필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pp.22~23
‘절망의 악순환’을 ‘희망의 선순환’으로 반전시키는 길잡이는 두 개의 스웨덴어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옴소리omsorg와 라곰lagom이라는 두 개의 절묘한 단어다. 옴소리는 영어로 번역하면 ‘소셜 서비스social service’다. 사회복지보다도 넓은 개념으로 복지서비스에 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가 포함된다. 임금을 뺀 생활조건을 보장하는 정책 일반을 가리키는 사회서비스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사회서비스를 뜻하는 옴소리라는 말은 원래 ‘슬픔을 나누어 가진다’라는 뜻이다. 옴소리를 소개해준 스톡홀름대학의 구루베 연구원에게, “교육으로도 슬픔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라고 묻자, 즉시 “당연하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복지의 복은 행복을 뜻하고 ‘지‘도 신이 내려주신 행복’을 뜻한다. 즉 복지란 행복을 의미한다. 슬픔을 나누어 가지면 슬픔에 빠진 사람은 슬픔을 치유받고 행복해진다. 더불어 슬픔을 나눈 사람도 행복해진다. 인간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느낄 때 삶의 보람을 느끼고 행복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옴소리를 떠받치는 사상은 ‘슬픔을 나누면 행복을 실현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스웨덴인은 사회를 공동체처럼 조직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공유하고 있다. 즉 공동체에서 구성원에게 임무를 배분하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에게도 임무를 배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pp.36~37
나눔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사회라는 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는 것이다. 즉 공동의 어려움을 공동 책임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재정이란 공동의 어려움을 공동 부담을 통해 공동 책임으로 해결하기 위한 경제다. 즉 재정이란 본래 나눔의 경제라고 할 수 있다. 재정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다. 사회 구성원이 평등하고 각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호 확인하고 공동 책임을 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원래 재정이란 퍼블릭 파이낸스public finance의 번역어다. 퍼블릭, 즉 공이란 사회 구성원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나눔의 영역을 의미한다. 파이낸스란 화폐 현상을 의미하므로 재정이란 ‘나눔의 화폐 현상’이라고 해도 좋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나눔이 공포가 된다. 이들이 나눔을 부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투어가 재정 위기다. 즉 재정 위기이기 때문에 나눔을 충실히 하기는커녕 축소해야 한다고 득의만면한 얼굴로 외친다. 재정의 사명은 공동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재정 위기란 재정이 기능부전에 빠져 공동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사명을 완수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인식해야 한다. 재정이 공동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다면, 재정수지 적자라는 의미에서의 재정 위기도 생긴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를 전도해서는 안 된다. 재정수지가 불균형이라는 의미의 재정 위기는 공동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해 발생한 경제 위기나 사회 위기의 결과인 것이다. 경제 위기나 사회 위기가 발생하면 재정수지는 반드시 불균형하게 된다. 불황이라는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면 재정수지는 반드시 불균형하게 된다. 전쟁이나 사회 위기가 발생해도 불균형하게 된다. 재정수지가 균형을 이루게 하기는 쉽다. 증세를 하든지 경비 지출을 삭감하든지, 혹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실시하면 된다. 그러나 재정수지의 균형을 맞추었는데도 경제 위기나 사회 위기가 커지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재정의 사명은 경제 위기나 사회 위기라는 공동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재정을 통해 경제 위기나 사회 위기를 극복하면 재정수지를 회복할 수 있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스웨덴어로 ‘옴소리omsorg’라는 훌륭한 말을 소개합니다. 옴소리란 사회서비스를 의미하는데, 그 원뜻은 ‘슬픔을 나누어 갖는 것’이라고 하지요. 옴소리는 슬픔을 나누고 인정을 서로 베풀면서 살아가는 스웨덴의 사회시스템을 설명해주는 말입니다. 한편 공자는 ‘적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지 못함을 걱정하는 것’이 공직자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공직자가 ‘격차가 왜 나쁘냐? 어느 사회든 격차는 있다.’라고 말하며 가난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절망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늘날의 우리에게 공자의 격언은 위로이자 해답이 되는 덕목입니다. 모두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잔인해져 가는 것이 현실입니다.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는 이러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처방전으로 ‘나눔’과 ‘중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타자의 성공이 나의 실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성공이 나의 성공으로 이어지는 사회를 바라는 모든 이들과 이 책을 나누고 싶습니다. - 서울시장 박원순
진노 나오히코 교수의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는 격차와 빈곤이 심화하며 절망의 사회로 변해가는 일본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희망의 섬을 향한 따뜻한 바람을 함께 담고 있다. 진노 교수는 자신을 이단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그 이단은 서로 보듬고 나누며 살아온 인간사회에 대한 이단이 아니다. 인간을 오직 자신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경제인으로 상정하며 경쟁원리와 시장원리로 인간사회를 분해해온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단이다. 그는 정년을 맞아 도쿄대학 경제학부 교수직에서 물러난 후로는 ‘늙은이의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은둔 생활을 하고 싶어했지만, 격차와 빈곤으로 빠져드는 일본 사회를 보며 그저 침묵할 수만은 없었던 듯하다. 『나눔의 경제학이 온다』는 여전히 나눔의 경제학 성장의 시대를 그리워하며 나눔과 협력을 통한 인간성 회복의 시대를 외면하는 한국 사회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진노 교수의 이 책이 점점 절망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한국 사회가 나눔을 통해 희망의 사회로 가는 길을 찾는 지침서가 되기를 기대한다. 나의 오랜 친구 진노 교수의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기원하며, 추천사로 이 책을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기쁨을 전하고 싶다. 경기대학교 부총장 이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