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님이다. 하지만 귀머거리는 아니다. 나의 불운에 이런 결함이 있던 탓에 나는 어제 무려 여섯 시간을 꼼짝 못하고 앉아 자칭 역사가라는 어떤 남자의 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소위 아테네 사람들이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부르는 사건에 관한 이 남자의 설명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어서, 만일 내가 조금만 더 젊고, 조금만 더 지위가 높았더라면, 오데온 극장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온 시내를 발칵 뒤집어 놓았을 것이다.
나야말로 그리스 전쟁의 기원에 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칭 역사가라고 하는 그는 전혀 모른다. 그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또 그리스인 중에 과연 제대로 아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내 삶의 대부분을 페르시아 궁정에서 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75세의 노구로 아직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대왕을 섬기고 있고, 그 전엔 현 대왕의 아버지이자 나의 사랑하는 친구인 크세르크세스 대왕을, 그보다 더 전에는 그리스인들에겐 다리우스 대왕이라고 널리 알려진 영웅을 모셨다. --- p.11
나도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평생을 바쳤단다. 실제 나는 똑같은 질문 을 고살라와 부처, 공자를 비롯한 수많은 현자들에게 던졌단다. 그러니 여기 편히 앉거라, 데모크리토스야. 내 기억력은 아주 뛰어나단다. 이제부터 나의 기억력을 마음껏 즐기련다. 외풍이 드센 집에 앉아 스파르타 군이 쳐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절대 그렇게 빨리 쳐들어오지는 못할 거야. 처음으 로 돌아가 이 세상과 다른 모든 세계들의 창조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을 전부 들려주마. 또한, 왜 악이 악이고, 그리고 악이 왜 악이 아닌지 설명해주마. --- p.54
“마기야!” 나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흉내 냈어. “나는 오로지 불멸의, 영원히 빛나는 천리마인 저 태양을 향해서만 제물을 바치노라. 태양이 떠오를 때, 현명하신 주님이 만든 이 대지도 정화되기 때문이니라. 그때서야 비로소 샘에서 넘쳐흐르는 물도 깨끗해지며, 저 바닷물도 맑아질 것이다. 고여 있던 물 역시 맑아지며, 성스러운 모든 피조물들도 비로소 깨끗해질 것이니라.”
마기는 마치 악마를 피하려는 것처럼 허둥댔고,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공포에 질려 나를 쳐다보았어. 가장 멍청한 애들조차 내가 정말 하늘의 천리마인 태양을 소환해 증인으로 삼고 있다고 여길 정도였지.
“만일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나는 마지막 기도를 시작했어. “악마들이 활개치며 이 물질세계의 모든 것을 파괴할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빛나는 천리마인 불멸의 태양을 모시는 자들은 어둠을 견뎌낼 것이며, 악마들과 컴컴한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죽음은…….”
마기는 나에게 대항하고자 주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했어. 그러나 나는 이미 스스로 원한다 해도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지경에까지 도달해 있었단다. --- p.99
그러나 대왕은 더 적절한 대화를 하게 되서 더 기쁜 것 같았어. “그래. 그리스 전쟁을 위해서. 그리고 짐이 페르세폴리스에서 하고 있는 일을 위해서. 또한 북쪽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서다. 나의 충성스런 신하들이 바치는 조공을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폭동을 일으킨 이오니아 도시국가와 혼돈에 빠진 카리아, 바빌론에 등장한 반역자 등. 이런저런 상황을 감안하면, 세금을 늘리기에 적당한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돈이 있어야만 한다.” 대왕이 말을 멈췄어. 순간 나는 내가 소환된 이유를 알아차렸지.
“전하께선 제가 인도로 가기를 원하시옵니다.”
“그렇다.”
“제가 무역동맹을 성사시키길 원하시옵니다.”
“그렇다.”
“인도 국가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낱낱이 조사해오기를 원하시옵니다.”
“그렇다.”
“페르시아제국에 인도 전부를 더하기를 바라시옵니다.”
“그렇다.”
“이보다 더 큰 사명은 없다고 사료되옵니다.”
“좋다.” 대왕은 붉은 비단에 쓰인 서신을 집어 들었어. “여기 이 사람들은 페르시아와 무역을 원한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무엇이옵니까? 전하.”
“철이다.” 그러면서 대왕은 아주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어. “이 나라는 철로 만들어져 있다는구나. 게다가 이 나라 말고도 인도 전부가 철 천지란다. 철광을 통치하는 자가 일확천금을 얻는 거지!” 그는 마치 상업적 쿠데타를 꿈꾸는 젊은 상인처럼 보였어. --- pp.263-264
마치 어린애를 즐겁게 해주듯, 고살라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허리춤에서 실타래를 꺼냈어. “이 실타래가 생명의 근원이 겪게 될 과정 전체라고 한번 가정해보겠노라. 보거라.”
고살라는 실타래를 서까래 쪽으로 던졌어. 공중에서 힘을 받은 실뭉치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맹렬한 속도로 실이 풀렸어. “자, 이게 끝이니라. 우리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원자에서 공기로, 불로, 흙으로, 바위로, 풀로, 벌레로, 도마뱀으로, 인간으로, 신으로, 그 다음엔 무로 변하노라. 결국에는 우리가 수없이 쓰고 벗어야만 했던 가면들은 아무 상관도 없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려야 할 그 무엇도 없게 되니까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상황의 진실이니라. 그러나 나의 형제였던 마하비라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선한 생활을 영위하고, 다섯 가지 계율을 잘 지킴으로써, 이런 과정을 빨리 앞당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도다. 우리 모두는 각각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반드시 견뎌야만 하며,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나 고살라여, 그것이 진실임을 당신은 어떻게 확신합니까?”
“나는 우리의 성스러운 지혜를 구하는 데 평생을 바쳤느니라. 이 지혜는 수세기동안 우리에게 펼쳐져 왔었다. 그 과정은 저 바닥에 떨어진 실타래처럼 분명하도다. 아무도 자기 운명을 앞당길 수도, 변경할 수도 없는 것이니라.” --- pp.313-314
부처는 자비로웠어. “아이야, 네가 어떤 전투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고 비유해보자. 너는 독약이 묻은 화살을 맞았다. 너는 지금 고통 속에 있다. 너는 지금 몹시 열이 난다. 너는 죽음과 다음 번 생이 두렵다. 나는 근처에 있다. 나는 솜씨가 좋은 외과의다. 너는 내게로 온다. 너는 내게 무엇을 해달라고 하겠느냐?”
“화살을 빼달라고 하겠죠.”
“즉시?”
“예, 즉시요.”
“누가 그 화살을 당겼는지 알고 싶지 않느냐?”
“물론 궁금할 것입니다.” 나는 그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짐작했어.
“너는 내가 화살을 빼기 전에, 그 궁수가 키가 큰지, 작은지, 무사인지, 노예인지, 잘생겼는지, 못생겼는지 그런 것이 궁금하지 않느냐?”
“물론 궁금할 겁니다.” 나는 그가 말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었지.
“그것이 여덟 개의 올바른 길이 제공할 수 있는 전부이다. 화살의 고통과 독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바로 이 세계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화살을 제거하고 치료가 끝나면, 누구의 화살이 나를 노렸는지 여전히 궁금할 것입니다.”
“네가 그 길을 충실히 따랐다면, 그 질문은 중요치 않게 여겨질 것이다. 이 삶이 꿈에 불과하며, 신기루이며, 자신이 만든 어떤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자기self가 가면, 그 또한 가느니라.”
--- pp.509-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