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롤 박사는 1898년(20세기가 [-2]살이었던 해이다.) 체르케스에서 63세의 나이로 태어났다. 이 나이에 박사는 보통 체격의,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원자 지름 (8 × 1010 + 109 + 4 × 108 + 5 × 106)개만큼을 차지하는 남성이었고, 평생 동안 같은 나이를 유지했다. 피부는 노란색에 살레 왕처럼 기른 바다빛 콧수염 빼고는 얼굴 전체가 미끈했고, 잿빛 금발과 새카만 흑발이 한 올씩 번갈아 나 태양의 위치에 따라 색이 변하는 모호한 적갈색의 머리칼, 필기용 잉크로 채워진 캡슐 속에 단치히 증류주처럼 금색 정충이 헤엄치고 있는 두 눈을 지녔다. 포스트롤 박사는 콧수염 외에는 수염이 없었다. 사타구니부터 눈꺼풀까지 이르는 피부 전체에 모낭을 쏠아 먹는 탈모 세균을 빈틈없이 번식시킨 덕분인데, 이 세균은 새로 난 털만을 공격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이나 눈썹마저 빠질까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그에 반해 사타구니부터 발까지는 사티로스처럼 검은 털로 빽빽하게 뒤덮여 있었다. 박사는 품위를 넘어서는 남자였던 것이다.
--- p. 17
실제 철자로 적을 때는 안이한 말장난을 방지하기 위해 앞에 아포스트로피를 붙여 ’파타피지크로 써야 하는 파타피지크는 형이상학의 범위 안 또는 바깥에 덧붙는 과학으로, 형이상학이 물리학을 넘어서는 만큼 형이상학을 넘어선다. 한편 부수 현상이 대개 우연적이므로, 파타피지크는 무엇보다 특수한 것에 관한 과학 ? 보편적인 것을 다루어야만 과학이라고 보통 말하지만 ? 이라 할 수 있다. 파타피지크는 예외를 지배하는 법칙을 연구하고 현 세계를 보완하는 다른 세계를 설명한다. 혹은, 야심을 덜자면, 전통적인 세계 대신에 우리가 볼 수 있고 또 어쩌면 보아야 하는 세계를 묘사한다. 우리가 전통적인 세계에서 발견하리라 믿는 법칙들은 빈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전히 예외들의 상호 관계이고, 결국 예외적이지 않은 예외들로 환원되어 유일성이라는 가치조차 지니지 못하는 우연한 사실들일 따름이다.
--- p. 37
팡뮈플은 원숭이가 단조로운 장광설로 방해하는 바람에 포스트롤의 원고를 서론까지밖에 판독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 포스트롤은 자신이 아는 아름다움의 아주 작은 일부분, 또 자신이 아는 진실의 아주 작은 일부분을 단어의 삭망 동안 기록했다. 이 작은 편린만으로 모든 예술과 모든 학문을, 즉 모든 것을 재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반듯한 결정체인지, 아니면 괴물인 편이 더 그럴 법하진 않은지 알 수 있을까(포스트롤은 세계를 ‘나에 비해 예외적인 것’이라고 정의했다)?
--- p. 148
친애하는 동료께,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죽었다 믿고 계시리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죽음은 범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제가 더 이상 지구에 있지 않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지금 있는 곳은 저도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동의하시는 바이겠지만, 논하는 대상을 계량할 수 있고, 유일한 실재인 숫자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이 주제에 대해 뭔가를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태까지 알아낸 것은 제가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 수정은 단단함의 나라라는 다른 곳에, 하지만 루비보다 영예롭지 못한 곳에 있고, 또 루비는 다이아몬드보다, 다이아몬드는 보스드나주 엉덩이에 박힌 못보다, 이 서른두 겹 주름 ? 사랑니까지 포함한 이빨 수보다 많습니다. ? 은 잠재적 어둠의 산문보다 더 못한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날짜나 장소의 관점에서 다른 곳에, 앞 또는 옆에, 뒤 또는 더 가까이에 있는 걸지요? 선생님, 저는 시간과 공간을 버릴 때 있게 되는 그곳, 그러니까 무한한 영원 속에 있는 것입니다.
--- pp. 153~154
신은 정의상 길이나 넓이나 부피가 없다. 그러나 이 해설에 보다 명료함을 기하기 위해, 비록 실제로는 차원이 없지만, 우리 동일성의 양 변 속으로 사라지는 차원에 한한다면 영차원보다 큰 차원을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이차원에 만족할 것인데, 그래야 한 장의 종이 위에다 평면의 기하학 도형들로 간편하게 그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p.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