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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는 방향이 곧 길이다

내가 가는 방향이 곧 길이다

: 이만영 박사 자서전

[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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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1월 2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52쪽 | 714g | 153*224*30mm
ISBN13 9788954620277
ISBN10 8954620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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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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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내가 후학들에게 유학 시절에 겪었던 이야기를 한 토막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의 유학 형편은 어떤지 몰라도, 56년 전 유학 시절에 나는 무모한 사고방식과 그릇된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미국 학생들은 주말이면 내일을 위해 책을 덮고 두뇌의 휴식을 충분히 취하며 충전한다. 나는 ‘너희들이 놀고 있는 이 시간에 나는 한 시간이라도 아껴 공부하겠다’는 좁은 사고방식으로 일주일 내내 연구실에 틀어박혀 책만 들여다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사람의 두뇌도 내일의 맑은 정신을 위해 휴식이 필요한 것이다. 매일 십여 시간씩 일주일 내내 책과 씨름을 한다고 해도 포화상태가 된 두뇌로는 절대 능률을 올릴 수가 없다. 다 잊어버리고 운동을 하고 충분한 휴식을 2~3일 취한다면 확실히 두뇌 회전이 잘되고 맑은 정신을 가지게 되어 면학 진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당시 국내 부품 산업은 전무한 상태였고, 그렇다고 미국 등 외국에서 주문 구입한다는 것도 물량과 시간의 제약으로 불가능했기에, 미 군용장비에서 마음대로 뒤져서 부품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청계천 고물상의 부품 가격은 천차만별이어서 비싼 부품도 싸게 살 수 있었고, 반대로 싼 부품인데 비싸게 부르는 바람에 상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때가 많았다. 다음 작업은 전자계기와 부품들을 삽입해서 부착할 수 있는 철기판 선택하는 일이었다. 알맞은 두 개의 철판을 구입하고 적당한 크기로 절단하는 것과 여러 크기의 구멍을 뚫는 작업을 위해 연구실에 공작기계 등을 설치해야 했으며, 우리 제작진은 주야로 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그래도 공작기계 덕분에 철판틀 절단 및 뚫는 작업은 무난히 시행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초 작업이 끝나면 이 철판들을 대학에서 제공한 트럭에 싣고 을지로4가 철공소로 갔다. 철판 표면을 매끄럽게 사포질하고 도색 작업을 여러 번 해서 완전히 말린 다음, 며칠 후 다시 싣고 돌아와 본격적으로 설계도면에 따라 컴퓨터 조립 작업에 들어갔다. 철기판에 여러 부품들을 삽입하고 납땜 연결 작업을 끝낸 뒤 철공소 기술자를 불러 도면에 따라 조립한 기판들을 내장할 수 있는 외장 샤시Sheathing를 주문했다. 이런 복잡하고 힘든 준비 절차를 거치고 시험 가동 초기에 시행착오를 여러 번 되풀이하면서 1962년 8월에 완성한 것이 선형미분 방정식 해석용으로 제작한 제1호 아날로그 전자계산기이다.

전자공학과에서 강의를 한 지 몇 주 지난 후 강의가 끝나고 연구실로 돌아와 강의 자료를 정리하는데 누가 노크를 했다. 들어오라고 했더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는 43명 중에 딱 한 명 있는 여학생이었다. 들어와서 “교수님, 제가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다음 금요일 저녁에 어머니가 교수님을 저녁에 초대해 식사를 같이하자고 말씀하시면서 금요일 저녁에 시간이 되시나 여쭤보라고 하셔서 제가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을 듣고 수첩을 펴보니 공교롭게도 금요일 저녁에는 6·25 동란 때 급전소에서 같이 일했고 서울대학교 선배가 되는 한전 부사장 김종주 씨와 저녁 약속이 있었다. 그래서 학생에게 그날 한전 부사장과 선약이 있다고 하자 학생은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드리겠다고 했고, 나 역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넨 후 헤어졌다.
지금까지도 궁금한 점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여자들이 흔히 선택하지 않는 학문이자 공과 중에서도 어려운 전자공학을 전공으로 택했을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으므로 정확히 알 수 없다. 내 추측으로는 아마 박정희 대통령의 지론에 따른 듯하다. 후에 언급하겠지만 박정희 대통령과 몇 번 만남을 가지면서 대통령의 신념 중 하나가 공업 입국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늘 아버지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자신도 전자공학을 공부해 국가에 공헌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입학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가서 식당 입구에 서 있으니 대통령께서 허겁지겁 걸어나오시면서 “이만영 교수, 대단히 미안해요. 강의가 늦어가지고 얼른 끝내려고 했는데 정 안 되어서 내가 약속을 어겼습니다. 15분이나 늦었는데 어떻게 하죠?”라며 시계를 보셨다. 그 시계는 분명 외제가 아닌 국산인 듯했고 시계 외피가 닳고 닳아 원래 흰색이었을 표면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거기에 양복 소매 끝은 오래되고 낡아 떨어져 있었다. 일국의 대통령이 참 검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8시가 조금 넘어 그 자리에서 물러나 숙소로 돌아왔다. 분명 대통령 내외분을 모시고 최후의 만찬을 한 사람은 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튿날 1974년 8월 15일 경축행사 중 재일교포가 쏜 총에 영부인이 피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비통한 마음에 분향소에 가 이름을 쓰고 헌화를 한 후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박근혜 양이 나에게 편지를 보내 어머니 상서에 대해 내가 조문과 위로를 해준 것이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이어지던 청와대와의 인연은 이후 한층 깊어지게 된다. 미국에 있던 나는 대사관을 통해 귀국해 국가에 봉사할 의향이 없는지에 관한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고, 국방과학연구소의 고위급 간부 네 사람이 나를 방문해 윗분의 부탁이라며 귀국을 청하는 일도 있었다. 그러한 청탁에 마음이 움직여 결국 나는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공장이 완공되고 생산이 진행되던 시점에 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1983년까지는 90% 이상 부품 국산화가 될 것이고 국내에서 만든 교환기를 문제없이 설치할 수준까지 된다면 ITT에서 들어오는 부품은 중단시키고 완전 국산화된 전자 교환기 생산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참 좋은 생각이라며 내 의견을 지지했다. 그런데 1979년 10월에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면서 교환기 사업도 중도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예정보다 빨리 한국전자통신의 민영화가 진행되었다. 당초 LG와 OPC가 이 사업을 받아 추진하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었지만, OPC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근거로 거부했고 LG는 10만 회선 이상의 대용량을 설치하는 대도시 중심의 사업을 펼치겠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원래 계획에는 없었던 삼성이 이 사업을 인수했다. 지금의 통신사업에서 삼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생각해보면 참 역사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삼성은 당시만 해도 통신사업과는 큰 접점이 없었고, ‘센츄리100’이라는 구내 교환시설을 개발해 신라호텔에서 시험 가동을 하는 정도―그것도 아직 성공한 상태가 아니었다―였다. 그러나 어쨌든 교환기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인정을 받아 단번에 인수까지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최각규 상공부 장관과 김준성 산업은행 총재가 나를 불러, 내가 거취를 옮길 것 없이 주요 인사를 20명 정도 추려 체제를 정비하고 그대로 삼성으로 가서 사장 역할을 하도록 권유했다. 사기업의 CEO는 이제까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를 거부할 마땅한 명분도 없었다. 나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삼성의 사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한국전자통신이 삼성으로 가면서 후에 삼성반도체통신이 되고, 이후 삼성반도체통신이 삼성전자에 합병되었다.

한번은 사장단 회의가 끝나고 나를 포함한 몇 명이 따로 이병철 회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회의를 했다. 거기서 이병철 회장은 기업체의 현황을 묻고 세계 동향을 파악하면서 방향을 모색했다. 그 자리에 다른 사장들은 이병철 회장을 잘 알기에 여러 모로 준비를 해온 눈치였지만, 나는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어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친 지식으로 이야기해 이병철 회장이 흥미로워하고 관심을 보였다.
특히 이병철 회장은 일본과의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였다. 그는 연말정산 회의가 끝난 후에는 반드시 일본으로 가서 두 달 정도 정계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중에 마쓰시다 파나소닉 회장과 각별히 친해 보였다. 그 사람이 쓴 저서를 가져와 비서실을 통해 번역한 후 사장들에게 나눠주며 읽으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병철 회장은 나를 각별히 신경 써준 기억이 난다. 토요일에 나를 따로 불러 신라호텔 일식집에서 고위 관료나 기업가들과 같이 만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기업 이야기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 적도 여러 번 있다. 인간적으로 진솔한 대화를 나눌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회장과 사장으로서 건실한 관계를 쌓으며 지금의 삼성을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고 자평한다.
삼성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져 몇 년 전까지는 삼성전자 전?현직 사장단과 만나 식사를 같이하며 친목을 쌓곤 했다. 삼성에서 근무하면서 미숙한 점도 많았지만 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자평한다.

남북 대결이 지속되는 우리나라에서 암호를 연구하는 일은 내가 한양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80년대에는 추진되기가 어려웠다. 암호라는 건 군사적으로도 민감한 요인이 있고, 이런 것을 민간 차원에서 연구한다는 자체가 국가 입장에서는 위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흐름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암호 연구에 대한 필요성은 끝내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정보보호학회라는 이름의 민간 연구학회를 만들어내게 된다. 나는 1998년까지 그 학회의 초대 회장에서 4대 회장까지 연임했다.
1990년 7월에 나는 자연응용과학 부문에서 제35회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수상했다. 이때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국내에서의 암호 연구에 있었기에, 학술원상 수상으로 받은 상금을 전부 학회에 기증했고 재정 마련을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학술원상을 수상하자 청와대를 방문해 대통령과 만나 대화할 수 있는 다과회 자리가 마련되어, 나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되었다.
그 자리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각 수상자에게 연구 성과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수상자들이 답변을 했다. 나는 대통령의 질문에 원래는 전자공학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특수한 정보이론과 부호이론 연구가 대세가 되고 있고 나 역시 암호와 정보보호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민간 차원에서 이미 이 연구를 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한국에서는 안기부를 중심으로 한 산하연구기관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민간 차원에서는 그 진행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게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했다.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학문이라면 우리나라도 민간이 연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10년, 20년이 지난 후에 완전히 낙후되어버린다는 점을 주장했다. 요지는 민간 차원에서의 암호 연구를 허가하고 그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태우 대통령도 보안사령관 출신으로 암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내 이야기를 듣고 이내 비서를 불러 내 이야기를 적고 학술원이 문교부 소속이니 정원식 문교부 장관 책임하에 암호 연구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길지 않은 면담이었지만 내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대통령의 지시가 떨어지고 나서 정원식 장관은 농담 삼아 내가 별안간 그런 것을 제안해 과학자도 없는 문교부 입장에서는 난리가 났다며 웃었고, 과학기술처 정근모 장관에게 연락해 나와 암호 연구에 관한 사항을 진행하도록 조치했다.

서강대학교 Fulbright 교수 생활과 JPL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국방과학연구소 부소장으로 근무했던 시기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한 명의 학자였던 이만영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대통령 일가를 만나며 국가 사업을 추진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감당하기 벅찬 일이 아니었나 하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어찌 인생에 한 점 후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그런 아쉬움 속에 지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박근혜 대통령과 고인이 되신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와의 귀한 인연과 그분들이 내게 보여준 환대와 애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그런 것에 관심도 없거니와 다른 사람에게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거나 박수 받는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위에 올라 있는 사람이 진심을 다해 다가왔을 때 나는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유도탄 등을 만드는 일은 내가 이제껏 연구해온 분야와 관계도 없고 내가 특별히 관심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분들이 내게 보여준 지극한 정성과 끊임없는 관심 덕분에 내가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그런 사업에 뛰어들어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한국전자통신 사장으로 출발해 삼성반도체통신의 사장으로 지내온 몇 년은 아마 학자라는 위치에서 가장 멀리 떨어졌던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없어봐야 귀함을 알고, 떨어져봐야 그리움을 안다 했던가. 그런 과정 속에서 조직 생활과 사업 논리를 배우고 궁극적으로는 나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학문에 대한 갈증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갈증이 깊었기에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많은 나이에도 계속 책을 쓰고 공부하며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나이 만 88세인데도 최근까지 대학에서 강의를 했으니 이 또한 축복받은 삶이다. 굳이 세세히 적지 않았지만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늘 즐겁고 이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몇 번을 생각해도 고마운 일이다.
이후 학문 활동을 하며 한중일 학자들과 교류하고 학회를 만들어 학문을 연구하며 국제적 관계를 형성한 일은 내가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성과다. 나중에 후학들이 세계로 나아가 공부를 할 때 그래도 우리나라에 그 분야에서만큼은 이름을 대면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힘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으로 최근까지도 집필작업을 하며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익히고 쓰며 한 자라도 더 남기려고 애쓰는 중이다.
세월을 이기는 자는 없다. 이제 세상과 작별을 고할 때가 점점 다가옴을 느낀다. 그전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더 가르칠 것이 있고 더 써야 할 것들이 있지만, 이제는 순리를 생각할 시점인 듯하다. 이렇게 자서전을 적으며 고마웠던 사람들을 돌이키며 내 삶을 하나하나 반추하는 것이 요즘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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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반도체통신의 사장으로 기업가의 모습뿐 아니라 높고 깊은 학문적 성취로 인해 이만영 박사는 국가 발전에 큰 이바지를 하셨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생각과 뜻을 새기고 각자의 삶에 큰 지침을 얻기를 바란다.
- 노인식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이만영 박사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금 놀랐다. 오랜 세월 끈끈한 인연을 맺어왔으나 한 개인이 남긴 족적이 이렇게 크고 눈부실 수 있구나 경탄한다, 국가와 학문을 위해 헌신한 그의 행보는 모두가 따르고 본받을 만하다. 후학들이 이 자서전을 탐독하고 미래를 위한 꿈과 희망을 품게 되었으면 한다.
- 서정욱 (전 과학기술부 장관)

버지니아 공대 시절 스승이기도 한 이만영 박사가 대한민국의 정보통신 발전 과정에 세운 공로는 실로 넓고 크다. 어려운 시절, 미국 유학부터 삶의 고비 고비마다 나라를 위해 학문에 매진하고 때로는 경영자의 모습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그가 이룬 성과는 높이 평가받아야한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도전 정신을 기를 수 있기를 바란다.
- 양승택 (전 정보통신부 장관)

나의 선친인 백남 김연준 한양대학교 선대 이사장께서 이만영 박사에게 “한국에서 전자공학 분야 1호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한양대학교에서 연구의 뜻을 펼쳐달라”고 부탁하셨다. 이후 이만영 박사는 한양대학교에서 국내 최초로 아날로그 컴퓨터의 효시인 전자계산기를 만든다. 이 책을 통해 그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한 점을 후학들이 존경하고 본받기를 바란다.
김종량 (한양대학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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