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평등할까?
나폴레옹은 돼지이다. 그리고 두목이다. 반란을 성공시킨 뒤 동료 돼지들과 협의하여 「동물주의 원칙 7계명」을 완성하여 발표한다.
1.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누구든지 적이다.
2.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자는 모두 우리의 친구다.
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농장의 모든 동물들은 이 계명에 찬성한다. 이를 인간에게 변형, 적용시킨다 하여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동물들이 반대할 이유가 있겠는가? 동물들은 신이 나서 건초밭으로 달려가 일을 하려 한다(동물농장의 본업은 ‘노동’이다). 바로 그때 암소 3마리가 퉁퉁 불은 젖을 짜달라고 요청한다. 사람이 모두 쫓겨나 젖을 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돼지들은 즉시 젖을 다섯 양동이나 짰다. 누군가 물었다. “그 우유를 어떻게 하려 합니까?” 나폴레옹이 대답한다.
“그것은 잘 처리될 것이오…. 동무들! 앞으로 가시오. 건초가 기다리고 있소.”
과연 우유 다섯 양동이는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아무도 묻지 않는다. 잔인한 존스에 의해 운영되던 「매너 농장」이 위대한 지도자 나폴레옹의 투쟁 덕분에 「동물농장」으로 이름이 바뀌고 자신들이 주인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었다. 개 블루벨·제시·핀처, 숫말 복서, 암말 클러보·몰리, 흰 염소 뮤리엘, 당나귀 벤자민, 까마귀 모제스… 그리고 고양이, 오리들, 쥐들 모두 공평하고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기껏해야 다섯 양동이에 불과한 우유의 행방을 따지지 않는다. 모두 예전보다 조금씩 덜 먹고, 더 일하지만 인간에 의해 착취받지 않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한다. 그리하여 즐거운 노래가 농장에 가득 울려 퍼진다.
풍요한 영국의 들판에는 / 오직 동물들만 활보하리라.
코에서는 굴레가 사라지고 / 등에서는 멍에가 벗겨지리라 /
재갈과 박차는 영원히 녹슬고 무자비한 채찍은 이제 더 이상 소리내지 못하리라.
과연 언제까지 그 노래가 울려 퍼질까?
--- p.81∼83, '제1부 인간과 존재 『동물농장』' 중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 이야기이지만 삶의 교훈을 설파해주는 잠언서(箴言書)로 보아도 된다. 괴테라는 작가는 그 이름부터가 엄숙하고, 무언지 모르게 성스러우며, 옆집에 산다 해도 범접하기 어려울 것 같은 경외감마저 든다. 일부 학자들은 독일문학을 처음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람은 괴테라고 평한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무겁고, 문장 역시 근엄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파우스트』를 쉽게 읽어낼 사람은 76억 명 중에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삶을 살아가는데 교훈이 될 말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인간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비난하면서도 태연할 수 있으니 참으로 묘한 존재이다”, “부지런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지난날의 불행한 추억을 되새기려 하지 말고, 오히려 현재를 견디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인간의 괴로움은 훨씬 줄어든다”. “이 세상의 분쟁은 악의나 흉계보다는 오해와 타성 때문에 일어나는 편이 훨씬 더 많다” 등등.
이 소설은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후반부는 제3자가 사건의 결말을 설명해주면서 끝난다. 베르테르는 호감 가는 청년이지만 차츰 독자를 화나게 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깨끗이 포기하고 새로운 상대를 찾아야 하건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자신만 학대한다. 나약한 청년이며 결단성도 부족하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하소연만 늘어놓는다. 현대적 관점으로 보면 ‘찌질이’다.
물론 이 소설이 발표된 1774년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는 판이하게 다르다. 결혼의 신성성, 종교적 억압, 사회의 극보수적 인습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을 것이다. 그렇다 한들 사랑을 쟁취하는 방법마저 다른 것은 아니리라. 결국 베르테르는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오지 말라’는 로테의 당부를 듣고 절망에 빠진다. 로테는 더 극적이고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기 위해 그렇게 말했을 뿐이지만 소심한 베르테르는 오해를 하고 만다.
이후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를 불러와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청춘들을 자살로 내몰았던 베르테르의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절실히 사랑했던 로테가 건네준 권총으로 마무리된다. 밤 12시에 자신의 오른쪽 눈 위를 쏘았고, 다음날 정오 12시에 숨을 거두었다. 그가 로테에게 한 마지막 간청은 분홍색 리본을 함께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이 분홍색 리본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당신이 가슴에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라는 이유로. 자살로 확인된 후 밤 11시에 상두꾼이 영구를 메고 갔으며, 성직자는 한 사람도 따라가지 않았다. 기독교에서 자살은 타살보다 더 나쁘다고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위안은, 죽기 전날 베르테르와 로테는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는 점이다. 그것이 죽은 자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면 로테는 사랑을 주고 절망을 준 것이 아니라, 절망을 주고 사랑을 준 것이다.
--- p.105∼107, '제2부 사랑과 비극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중에서
초 베스트셀러임에도 읽기는 쉽지 않다. 과거와 현재가 얽혀 있고, 4명밖에 되지 않는 인물들도 이리저리 얽혀 있다. 동구권이라는 지리적·정치적 특성도 작용한다. 작가의 의식세계를 들려주는 지문과 철학적 질문, 설명도 난해하다. 외과의사 토머스, 술집 여종업원이었던 테레사, 그림을 그리는 사비나, 대학교수 프란츠(다행히 모두 한글로 3글자이다)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토머스는 테레사와 만나고, 사비나는 토머스의 친구이면서 테레사를 도와주고, 프란츠는 사비나의 친구이다.
물론 이외에도 많은 사람과 동물이 등장한다. 토머스의 아들 시몬, 토머스와 테레사가 키우는 암캐 카레닌, 송아지 마르케타, 프란츠의 아내 마리-클로드, 내무부 과장, 대머리, 엔지니어…. 그들 모두 4명과 얽혀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메모해 가면서 읽어야 한다. 토머스는 테레사를 6번의 우연 끝에, 그야말로 우연히 만난다. 그는 이 ‘우연’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그래서 테레사가 “어느 누군가 까맣게 콜타르를 칠한 바구니 속에 넣어 강물에 띄워보낸 아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전의 삶과 비교할 수도 없거니와 이후의 삶에서 교정할 수도 없다.
토머스는 결국 그녀를 받아들이지만 그는 많은 여자들과 성관계를 갖는 남자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침대에서 여자가 잠을 자고 가지 못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여자의 침대에서 밤을 지새우지도 않는다. 한번은 사비나와 성교를 한 후 양말을 찾지 못해 사비나의 니트 스타킹을 신고 오기도 했다. 그러나 테레사만은 자신의 침대에서 잠을 자게 한다. “성교의 목적이 두 연인에게는 쾌감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그 후에 따르는 잠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평생 몇 명의 여자를 소유(성관계) 했었느냐고 묻자 (50세 즈음의) 토머스는 200명쯤 된다고 대답했다. 친구들이 놀라자 토머스는 간단히 공식을 들려준다. 25살 때부터 여자와 관계를 했으므로 200명을 25로 나누면 8이 된다. 즉 1년에 8명의 여자는 ‘많은 것이 아니라’라고 반박한다. 그런 그였기에 집으로 돌아오면 테레사는 그의 머리에서 풍기는 여자의 성기 냄새를 슬퍼한다. 자유로운 성행위는 사비나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그림을 그려서 성공하고, 행동도 거칠 것이 없다. 여자로서 태어난 사실에 반발한다는 것은 그 사실에 자만하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자유와 돈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상원의원과 친구가 된다. 예술도 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테레사는 순수할까? 교수 프란츠는 사비나와 재혼하기 위해 가족을 버린다. 도대체 4명의 남자와 여자는 조국의 비민주적 상황을 핑계삼아 너무 제멋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아닌가!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그런 삶을 살게 하는가? …(중략)…
* 더 넓은 지식을 위한 독서 내비게이션
1. 예전에는 소설을 원전으로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으나 2010년대 이후 이 비율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에 비해 웹툰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늘어나고 있다. 소설가의 역량이 떨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어찌 보면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2. 강물에 띄워보낸 아기는 성경 『출애급기』(出埃及記)에도 나온다. 영화 『십계』에서 파라오의 딸 비티아(Bithiah)는 바구니에 담겨 강물에 흘러오는 아기를 자신의 아들로 키우는데 그가 모세(Moses)이다.
3. 공산정권에 의해 개인이 억압받는 영화는 1990년 폴란드에서 제작한 『신문』(Przesluchanie 訊問)이 있다. 분위기가 『프라하의 봄』과 비슷하다.
4. 토머스와 테레사가 호텔 식당(술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테레사는 6시에 근무가 끝난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기차는 7시에 떠나요.”
5. 쿤데라의 책은 여러 권이 번역 소개되었으며 그중 『농담』(1967), 『느림』(1993), 『정체성』(1998) 등이 한국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매년 가을에 노벨문학상 발표 시기가 되면 밀란 쿤데라의 이름이 항상 거론된다. 그러나 언론에 등장하는 후보자의 이름과 발표 결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즉 언론들이 미리 입방아를 찧는 것이다.
6. 체코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작가는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이다. 1883년 프라하에서 태어나 『성』, 『변신』 등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1924년 사망했다.
7. 1967년 5월, 프라하에서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박신자(朴信子)를 앞세운 우리나라는 체코, 동독, 유고슬라비아 등을 누르고 결승에서 소련과 맞붙었으나 아쉽게 패해 2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와 체코의 첫 인연이 아닐까 싶다.
--- p.149∼152 '제2부 사랑과 비극『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
- 홍명희 임꺽정
일제강점기 조선일보에 연재된 대하소설. 벽초(碧初) 홍명희는 춘원(春園) 이광수, 육당(六堂) 최남선과 더불어 근대기 3대 천재로 추앙받았다. 광복 이후 북한으로 넘어가 부수상을 지냈다. 『임꺽정』은 완결되지 못하고 연재가 종료되었는데 [사계절]에서 처음에 9권으로 간행되었다가 후에 10권으로 재간행했다. 홍명희가 이 소설을 완료했다면 30권 안팎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완성되지 못한 것이 한국 근대문학의 가장 큰 아쉬움이다. 내가 만약 무인도로 떠날 때 딱 1권의 책만 선택할 수 있다면 『임꺽정』을 들고 갈 것이다.
- 홍성원 디데이의 병촌, 남과 북
1세대 작가. 여러 편의 소설이 있으나 군대를 무대로 한 두 작품이 뛰어나다. 한국전쟁의 처음과 끝을 보여주는 장편 『남과 북』은 신문기자, 군인, 의사, 변호사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전쟁의 참상과 의미를 밀도높게 그렸다. 『디데이의 병촌』은 전쟁 이후 강원도 휴전선 최전방 부대를 배경으로 한다.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결국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 황석영 삼포가는 길, 객지, 장사의 꿈
가장 남자다운 소설을 발표한 가장 남자다운 작가이다. 월남전을 배경으로 한 『탑』으로 등단했으며 노동자, 하층민, 작부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들을 썼다. 노래로도 유명한 『삼포가는 길』의 정씨, 백화, 노영달 3인은 산업화 시대에 고향을 잃은 노동자들, 즉 우리 자신이다. 그들의 방랑을 통해 현대인의 방황을 그린 걸작이다. 1980년에 발표된 장편 『어둠의 자식들』은 일대 폭풍을 몰고 온 소설이었다. 『장길산』은 박경리의 『토지』, 최명희의 『혼불』과 더불어 3대 대하소설로 꼽힌다.
- 황순원 소나기,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교과서에 실린 『소나기』로 누구나 알고 있는 현대 문학 1세대 작가이다. 『카인의 후예』는 1954년 발표되었으며 무대는 북한(작가의 고향이 평안남도 대동군)이다. 젊은 지식인 박훈과 공산주의자 오도섭의 딸 오작녀가 주인공이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투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함과 사랑, 죽음을 그렸다.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로 유명한 시인 황동규가 아들이다.
--- p.296∼297, '제4부 가슴을 울리는 한국의 명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