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을 맞아 공개된 주요 그룹의 신년사에는 유독 ‘애자일’이라는 단어가 많이 언급됐다. 금융, 제조, IT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산업에 걸쳐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 ‘애자일(Agile, 날렵한, 민첩한)’을 경영의 화두로 꼽았다. --- p.15
“왜 이제서야 갑자기 기업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애자일에 열광하기 시작했을까?”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정확한 적용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며 심지어 경영 방법론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방법론에 불과한데 말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그 핵심은 ‘혁신의 필요성’을 경영자들이 절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 우리는 글로벌 기업들의 몰락과 신흥 스타트업들의 비약적 발전을 동시에 목격했다.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 등이 기존에 통용되던 게임의 룰을 바꾸며 거대 기업들을 누르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이제는 익숙한 일이 됐다. 이 과정에서 신흥 혁신기업들이 표방하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 경영자들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다. 기업들은 세부적인 이행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이 추구하고 실천하는 경영이 ‘애자일 방법론’이 가진 철학, 문화, 그로부터 비롯된 업무 방식과 일관성 있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 p.16
한 시대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더 이상 현실세계를 온전히 설명하거나 반영하지 못할 때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요구는 강해진다. 지금의 ‘애자일 열풍’은 바로 그 과정에서 촉발되었다. 패러다임의 본래 정의에 비추어 보거나 ‘애자일 방법론’이 명명된 역사적 맥락을 들춰보아도 애자일은 그 자체로서 독립된 실체라기보다는 테일러리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경영 철학, 사고, 개념과 도구의 연결을 상징하는 ‘포스트 테일러리즘’의 메타포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 p.43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으로서의 ‘애자일(협의)’과 경영 패러다임으로서의 ‘애자일(광의)’은 얼마나 다른 것인가? 사실 기본 철학은 유사하다. 다만, 현실에 적용하고 실체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 둘을 의도적으로 세심히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 애자일을 ‘협의’의 관점을 기반으로 접근하는가, ‘광의’의 관점을 기반으로 접근하는가에 따라 조직 내에 이를 어떻게 적용하고 확산시킬 것인가에 대한 접근 프로세스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 p.46
애자일 경영 역시 개개인의 개성을 중시한다. 조직 구성원을 하나의 표준화된 인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개개인성을 가진 자기주도적 인간으로 보고 그들이 조직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신뢰한다. --- p.86
애자일 경영에서는 기업이 실수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애자일 경영에서 실수는 막아야 하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실수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협력해서 관리하는 방향으로 초점을 바꿔야 한다. --- p.103
애자일 경영은 그 기저의 속성이 가져다주는 ‘달콤함’ 이면에 그 이상의 엄격하고 유쾌하지 않은 규범과 개입(Intervention)이 있다. 애자일 경영이 사실은 상당히 잔인하고 단호한 원칙과 결단, 행동을 수반한다. --- p.148
그렇게 보면 애초에 “애자일 경영을 위한 최적의 조직구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부터 잘못됐다. 적어도 애자일 경영을 추구하는 기업이 조직구조와 관련해 처음 던져야 하는 질문은 ‘조직구조에 접근하는 태도’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 p.168
회사마다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필요충분구조의 모습도 다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다음에 제시하는 조직구조의 유형들 또한 정답이 아니다. 각 조직이 현실에 발을 딛고 조직의 애질리티를 구현하기 위해 적절히 참고할 수 있도록 그 맥락을 설명하고자 할 뿐이다. --- p.169
여기서 우리는 지금까지 알려진 자율경영 조직에 대한 가장 큰 오해를 해소할 수 있다. 자율경영 조직이 “완전히 수평적이고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것이다. 자율경영 조직은 전통적인 위계조직에서의 명령과 통제 구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많은 사람이 믿는 것처럼 완전히 수평적이고 비계층적인 조직구조는 아니다. --- p.173
“우리는 왜 매트릭스 조직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스포티파이의 애자일 조직에는 열광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이렇다. “우리는 매트릭스 조직에 대해 상당 부분 오해하고 있다. 당신이 스포티파이의 애자일 조직에 열광한다면, 매트릭스 조직에 대해서도 관대해야 한다.” 만약 기업 경영자가 매트릭스 조직에 대해 강력한 회의를 품고 있으면서 스포티파이의 애자일 조직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 조직의 구조 개선은 시작도 전에 ‘실패’로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 p.188
이런 유형의 스타트업은 사실 ‘애자일 경영’, 그 중에서도 ‘자율경영 조직’을 제대로 시도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사람이 적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특징이 애자일 경영의 모습이 보여주는 특징과 우연히 겹쳤을 뿐이다. 이런 기업은 조직이 커지는 속도에 비례해 빠르게 관료화된다. 그것이 한국 스타트업 다수가 처한 현실이다. --- p.196
창업 초기, 강한 개입을 통해 조직구조, 운영체계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정립하고, 동시에 문화적 일체감을 형성한 기업은 사업이 성장하고 조직이 커지는 과정에서도 ‘질서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 p.202
마이크로소프트는 오랜 기간 애자일 경영과는 대척점에 있던 복잡도 높은 대규모 조직을 애자일 경영 조직으로 ‘전환’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좀 더 애자일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전통 조직구조를 활용해 조직에 새롭고 강력한 가치관을 이식하는 조직 통합을 꾀했다. --- p.220
넷플릭스와 같은 규모의, 그것도 IT기업이나 전문 서비스 기업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냐는 반론이다. 하지만 이미 애자일 경영이 소수 스타트업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설명했던 대로 ‘자율과 책임’ 역시 일부 기업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 p.227
기존의 성과 관리 체계가 ‘동기부여 = 금전적 보상’이라는 단선적 전제 아래 조직됐다면 애자일 성과 관리는 구성원의 내적, 심리적 동기부여에 주목함으로써 구성원별로 동기부여를 추동하는 맥락의 이해 폭을 넓히고자 한다. --- p.233
기업이 애자일 경영으로 조직을 전환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이를 위한 구조 개혁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먼저 조직 가치사슬(Value Chain)의 주요 어젠다별로 현재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질(옳은 결정이 이뤄지고 있는지), 속도(적시에 이뤄지고 있는지), 산출(실제 잘 이행되었는지), 투입(결정을 위해 투자된 시간과 비용이 생산적이었는지)에 대한 현재의 의사결정 효과성를 파악해 개선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 --- p.279
애자일 철학을 우리 자신에 뿌리내리고, 이를 기준점 삼아 형식구조가 곧 현실구조가 되도록 의사결정의 작은 장면부터 중대한 상황까지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과감히 개입해 가치와 문화의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구조에 의존하는 방심은 금물이다. 애자일 경영을 추구하고 이를 실제 잘 구현한다고 평가받는 기업조차 관료주의, 권위주의, 일반 기업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관성’과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진리를 우리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p.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