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의 용이라는 신흥공업국(Newly Industrializing Economies, NIEs), 즉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가 공업화에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고도성장을 이룬 1980년대 이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1970년대 들어 경제적 고도성장을 거듭한 데 이어 1980년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그 뒤를 따라 공업국가로 성장하고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어 갔다. … 그러나 미소의 냉전 시기를 겪으면서 동북아시아는 미국과 소련의 2대 진영이 접하는 지역이 되어 마침내 두 진영 간에 생긴 충돌의 희생양이 되었다. 즉 미국을 위시한 민주주의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가 충돌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이것을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의 충돌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해양세력 문명권과 대륙세력 문명권의 충돌이 아닌 미소 양대 세력 사이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공동체를 논하는 사람은 앞으로 동북아시아가 어떠한 세력권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를 갖고 있다. 동북아 공동체 형성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하면 동북아 공동체 형성의 목적은 동북아시아가 다시는 분쟁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pp. 24-26
동북아시아의 정치 공동체 형성의 주체가 될 중국과 일본은 양보 없는 경쟁과 대립을 일삼고 있다. … 동북아시아에는 이들을 중개할 제3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동북아 지역의 공동체 형성에서 한국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영내에 한정했을 때의 양분된 세계 질서인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일본과 중국의 대립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 못지않게 한반도에 큰 영향을 주는 형국이다. 한국이 러시아 그리고 중국과 수교를 하고 경제면에서도 서로 상당한 접근을 보이고, 정치적으로도 협력을 강화하여 우방인 것으로 보이지만 남북한 대립에 있어서만큼은 러시아와 중국은 역시 북한 편에 선다. 경제적인 이익은 다른 문제이다. 정치적인 문제에서 북한의 조건이나 상황이 어떻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편에 서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볼 수 있는 한반도에서 4강의 대립은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아니라 국익의 대립인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 모든 나라는 자기네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고 있음을 잘 보여 주는 것이 한반도 문제이다. --- p. 94
동북아시아의 경제 공동체를 논할 때 큰 자극이 된 것이 외부로부터의 충격인 IMF 위기이다. … 경제 위기를 계기로 정체성을 재고하게 된 아시아인들은 자구책으로 동아시아 통화기금의 창설을 서둘고 통화 교역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IMF 위기는 동남아시아를 포함하는 경제 공동체를 확연하게 표현한 것이 된다. 한편 IMF 위기는 동아시아 중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하는 동북아시아 나라들에 책임을 묻는 계기가 된 것이다. 동북아시아 3개국은 동아시아통화기금을 책임지는 나라로서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 된다. 따라서 동북아시아 3국의 경제 통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명제가 분명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과 조건에서 3국의 정상들은 ?후쿠오카선언?을 하거나 3자 위원회를 조직하여 경제적인 통합을 주장하고, 아시아 개발 포럼이나 아시아 경제 공동체 포럼 등이 경제적인 협력과 통합을 위하여 지혜를 모으고 있다. --- p. 148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을 흡수하고 소화하는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볼 수 있는데, 부정의 단계, 모방의 단계 그리고 소화의 단계이다. 모방하는 단계에서 보통 아노미 현상이 일어난다. 말하자면 외적인 것은 쉽게 모방하지만, 내적인 것은 쉽게 모방하지 못한다. 내적인 것까지 완전히 모방하는 것이 세 번째 단계인 소화의 단계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동북아시아 3국은 두 번째 단계인 모방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3국이 모두 근대국가의 형태를 보이고 있으나 시민의식은 신민(臣民)에서 시민(市民)으로 바꾸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시아 3국에서 가장 빨리 근대화했다는 일본에서도 아직 신민의 식을 바꾸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더하며, 특히 시민의식을 조성하느라 전력을 경주하고 있다. --- pp. 217-218
중국과 일본의 대립 및 경쟁은 동북아시아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헤게모니 싸움이며, 그 배후에는 양국의 강력한 민족주의가 뒷받침되고 있다. 이를 화해와 평화로 이끌 제3의 세력이 있어야 한다. 이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따라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한국은 반드시 필요한 나라이다. 동북아시아 현안 문제로 평화를 위태롭게 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남북한 대립일 것이다. 남북문제에서 한국은 평화번영정책을 취하여 왔다. 이것은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하여 남북이 공동으로 번영,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가 작성되었고, 다시 수차례의 고위급 회담을 거친 후 2000년 6월 15
일 마침내 남북의 정상이 회동하고 ‘남북공동선언’을 하였다. 이에는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남북통일 방안,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교류협력의 활성화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과 협력하면서도 한편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게릴라적인 핵 보유의 카드를 내걸고 자국의 외교적 입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하여 다국가 간의 집단 안보 체제로서 남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미국이 참가하는 6개국의 협의체를 구성하였다. 6자회담은 북한의 핵 문제를 계기로 구성되었지만, 동북아시아의 안전을 집단으로 보장하는 유일한 기구이다. 즉 동북아시아 집단 안전보장을 문제 삼을 때 이곳에는 동남아시아의 아세안이 참가할 여지가 없으며,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가 참가하는 것이다.
--- pp. 228-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