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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

청년들, 1980년대에 맞서다

: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민청련 이야기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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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68쪽 | 690g | 152*224*30mm
ISBN13 9791156121572
ISBN10 115612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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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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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으로 내정된 김근태가 창립선언문을 낭독했다. 「민주, 민중, 민족통일을 우리 모두에게」라는 제목의 창립선언문 서두에서 김근태는 “우리 민주청년은 민주·민권의 승리를 위한 지금까지의 반독재투쟁 경험과 운동의 성과를 계승하면서 운동 이론을 체계화하고, 운동 주체를 조직화해야 한다는 역사적 요구에 좇아 민주화운동(전국)청년연합 결성을 선언한다”고 창립 취지를 밝혔다.
--- p.30~31

민청련 집행부는 이러한 민청련의 상황을 설화 속의 독사와 두꺼비에 비유했다. 두꺼비는 비록 독사에게 잡아먹히지만 두꺼비를 잡아먹은 독사도 두꺼비의 독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잡아먹힌 두꺼비는 독사의 몸을 자양분으로 삼아 품고 있는 알을 부화시켜 새끼들을 탄생시킨다. …… 이 두꺼비의 비유는 사회부장 연성수가 전래 민담에 나오는 두꺼비 설화에서 따온 이야기인데, 이후 민청련 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 p.86~87

강제 징집과 녹화사업 그리고 의문사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당시 군은 일종의 불가침 영역이었고, 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경우 보안사 분실 같은 곳으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분위기였다. ‘서빙고 호텔’이라 불리던 서울 서빙고동의 보안사 분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공포의 고문으로 유명했다. 따라서 정치권의 야당은 물론 어떤 사회단체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민청련이 이원주를 앞세워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조사활동을 벌이는 등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었다.
--- p.130

민청련은 자칫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묻힐 수도 있는 사건들을 사회문제화하고, 그것을 통해 정권의 반민주성과 폭력성을 드러내는 활동을 펼쳤다. 이는 민청련이 주장하는 기층 민중을 운동의 중심에 두는 민중노선에 충실한 활동이기도 했다.
--- p.167

민청련이 1985년 5월을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동안 정권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는 민청련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고 한다. 민청련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 p.201

1985년 8월 24일, 김근태 전 의장이 전격적으로 체포됐다. 그날 도피를 중단하기로 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나와 민통련 사무실이 있는 서울 장충동 분도빌딩 부근의 한 커피숍에 들렀을 때 중부경찰서 정보과 소속 형사대가 덮쳤다. 집 근처에 잠복해 있던 사복 경찰들이 미행해서 따라붙었던 것이다.
--- p.219

김근태는 …… 전기고문, 물고문, 뭇매질 등의 참혹한 학대를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17일 동안이나 계속 받아야 했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전기고문이었다. 김근태의 증언에 따르면, 전기고문을 할 때에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렸다. 고문자들이 칠성판이라고 부르는 고문대에 담요를 깔고 눕히고서는 몸을 다섯 군데 묶었다. 발목, 무릎, 허벅지와 배, 가슴을 완전히 동여맸다. 신체에 고문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사악한 의도였다.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에는 전기가 잘 통하도록 물을 뿌렸고, 발가락에 전원을 연결시켰다. “처음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하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됐다.
--- p.222

탄압 정국하에서도 민청련의 투쟁은 계속됐다. 그해 7월에는 성고문 규탄운동이 이슈의 초점이 됐다. 여성 노동운동가 권인숙을 연행한 부천경찰서 문귀동 형사가 밀실에서 이틀에 걸쳐 추악한 성고문을 자행한 사실이 폭로됐고, 그를 규탄하는 항의 행동이 고조됐다. 민청련은 청년, 학생, 종교, 여성 등 10개 단체와 연대하여 부천서 성고문 규탄운동에 참여했다.
--- p.293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연행되어 조사받던 서울대 3학년 박종철이 고문 수사 끝에 사망했다. 독재정권은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다. 박종철의 죽음을 32시간이나 숨기고 있던 치안본부는 16일에서야 뒤늦게 “심문 도중에 일어난 단순 쇼크사”라고 발표했다. 수사관의 큰 소리 몇 마디에 놀라 쇼크사했다는 주장이었다. 사람들은 앞길이 창창한 한 청년의 억울한 죽음에 깊은 연민을 느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권의 거짓말과 파렴치에 분노를 느꼈다. 2월 7일에 개최된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 p.311

전두환 정권의 ‘호헌 선언’은 국민 대중에게 좌절감과 분노를 가져다주었다. 민심이 소용돌이쳤다. 그 소용돌이를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더 한층 격화시켰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았다. 속으로 끓고 있던 긴장감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하 국본)가 밖으로 터트렸다. 국본은 5월 27일 정식으로 결성됐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해온 운동권·종교계·야당 정치 세력의 3자가 군사독재 정권의 ‘호헌’을 철폐시키기 위해 단결한 반독재 연합전선 기관이었다. …… 민청련은 민통련 가입단체 자격으로 국본에 참여했다. 공동대표 중에는 청년대표로 구속 중인 김근태가 선임됐고, 상임집행위원 30명 가운데에는 4월에 석방된 김희택 전 의장이 청년 몫으로 참여했다.
--- p.323~324

1987년 6월 29일 아침 일찍 중대 발표가 있다는 예고가 있었다. 전두환의 후계자 노태우가 나와 이른바 ‘6·29선언’을 발표했다.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 노태우는 직선제 수용 카드를 제시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시행하고, 김대중의 사면 복권을 단행하며, 양심수를 석방하고, 언론 자유를 보장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 p.334

8월 말로 국회의 개헌특위 활동이 마무리되고, 9월 초에 여야가 12월 대통령선거 일정까지 합의하자 정국은 완전히 대선 국면으로 전환됐다. …… 6월항쟁으로 열린 정치 공간에서 민주화운동 진영이 하나로 단결만 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국민이 압도적으로 민주화운동 진영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단결할 것인가? 선거 국면에서 민주 진영의 단결은 김영삼·김대중 씨의 협력, 곧 양김의 후보 단일화 문제로 압축됐다.
--- p.357

후보 단일화 문제를 양 김 두 사람에게 맡겨둬도 좋은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 먼저 민청련의 새 집행부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의장단은 회의를 열고 9월 30일 창립 4주년 기념대회에 양 김을 초청하기로 했다. 양 김 단일화에 앞서 두 사람을 대중 앞에 세워 그들의 경륜과 능력을 검증하는 자리를 마련하자는 것이었다. …… 김영삼의 불참으로 후보 단일화를 위한 집회라는 정치적 의미는 퇴색됐지만, 민청련은 예정대로 집회를 진행하기로 했다. …… 민청련의 이날 집회는 많은 청중이 모인 가운데 성황리에 끝났지만 민청련 집행부의 의도와는 달리 결국 김대중이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길을 닦아준 집회가 되었다. 이것이 앞으로 닥칠 엄청난 비극의 전조가 되리라는 것을 민청련 집행부는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 p.358~361

민통련은 토론회 결과를 가지고 산하 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최종 절차로서 10월 12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었다. 여기에서 격론을 벌인 끝에 결국 표결까지 가는 진통 속에서 김대중 지지를 결정했다. 다음날인 13일 “범국민적 대통령 후보로 김대중 고문을 추천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 민통련의 이 결정을 기점으로 재야 세력은 급속히 ‘비판적 지지’(비지), ‘후보 단일화’(후단), ‘독자 후보론’(독후) 세 진영으로 분열됐다.
--- p.372

후보 단일화 문제는 민청련에게도 가장 큰 현안이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의장단 회의에서 여러 차례 논란이 거듭됐다. …… 앞으로 대선, 특히 대통령후보 문제를 둘러싸고 운동 세력 내에 엄청난 소용돌이가 일어날 것을 직감한 김근태 전 의장은 논의를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이론적으로 생각하면 우리 후보를 내고 우리 후보가 양 김 씨와 연합하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정당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국민에게 한참 설명을 해야 하는 난점이 있었지요. 그래서 우리가 독자 후보를 내서 후보연합 전술을 하는 것은 급박한 조건 속에서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요. 그렇다면 이미 71년도에 대통령 후보에 나와서 정권 교체의 가능성을 보였던 김대중 후보가 어떠냐는 생각을 했어요. 그 이후에도 군사독재에 굴복하지 않는 길을 걸어왔고, 상대적으로 YS에 비해서 진보성이 있고, 지역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방향에서도 DJ를 후보로 우리가 밀면, 정권 교체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 이 옥중메시지는 김근태의 생각대로 대통령후보 문제에 대한 재야 내부의 논의를 촉발시키는 촉매제가 됐다. 민청련과 민통련이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로 입장을 정리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운동권의 의견을 통합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운동 내부의 분열은 가속화됐다.
--- p.374~377

김대중의 평민당 창당 선언으로 양 김 단일화가 거의 물 건너간 분위기 속에서도 비판적 지지, 후보 단일화, 독자 후보 3파의 논전이 밤늦게까지 뜨겁게 전개됐다.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표결에 부쳤다. …… 비판적 지지와 후보 단일화, 독자 후보론의 비율이 대략 5대 4대 1 정도였다. 결국 민청련의 대통령선거 시기 투쟁 방침은 근소한 차이로 비판적 지지 입장으로 결정됐다.

당시 결정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당면한 반전두환·반노태우 투쟁을 중심축으로 하여 반군사독재 민주연합전선을 강화한다. 둘째, 후보 문제와 관련하여 민청련은 보수자유주의 세력과의 제휴 투쟁을 원칙으로 하되 통일정책의 진보성, 광주학살 원흉 처단에 대한 의지, 기층 민중의 지지 정도 등을 기준으로 양 김 중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셋째,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통해 분출하는 대중의 역동성에 조응하고 민족민주세력의 힘을 결집시켜 후보 단일화를 성취해내 선거 투쟁에서 승리한다. 넷째, 선거 시기의 공동 투쟁을 바탕으로 민중운동연합 건설의 토대를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 p.387~388

오후 6시 어수선한 속에서 투표가 종료되고, 8시쯤부터 전국적으로 개표가 진행됐다. 밤새워 개표가 진행된 결과 12월 17일 새벽에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36.6퍼센트를 얻어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가 28.0퍼센트를 얻어 2위, 평민당 김대중 후보가 27.1퍼센트를 얻어 3위에 그쳤다.

6월항쟁에서 국민이 치열하게 싸워 얻어낸 대통령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에서 어이없게도 민주세력이 패배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의 광범한 관권 개입이 있었고 일부 투표소에서 부정투개표 사례들이 발견되긴 했으나,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역시 양 김의 단일화 실패가 결정적 패인이었다. 6월항쟁으로 타올랐던 국민의 민주화 열기는 급격히 싸늘하게 식어갔다.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시민들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과 체념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 p.399

1987년 대통령선거의 패배를 책임지고 집행부가 사퇴하자 민청련은 곧바로 차기 집행부를 선출하기 위한 총회 준비에 들어갔다. …… 1988년 3월 17일 총회를 열어 의장단을 선출하고 그 자리에서 장문의 ‘제10차 총회 메시지’를 발표했다. 지난 대선 시기의 ‘비지’에 대해 재차 반성하고 앞으로는 그런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고 단결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용이었다.
--- p.412~415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펼쳐진 통일운동의 대열에 민청련도 참여했다. 하지만 민청련은 학생운동과 달리 통일운동에 전 역량을 투입할 정도로 열성적이지는 않았다. 민청련의 지역지부인 동민청, 남민청, 북민청, 안민청 등은 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공동올림픽 촉구 집회에 참가하는 한편, 각자 자기 지역의 공단 등에서 일어난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지원하는 일에 집중했다. 또 중앙에서는 정치권에 등장한 이른바 ‘5공 비리’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대중투쟁으로 이끄는 일에 앞장섰다.
--- p.437

회원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의장단이 교체되면서 민청련을 ‘청년대중운동체’로 전환하기로 한 조직노선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이전 집행부의 지역지부 사업이 단순히 중앙의 지역화, 그것도 서울과 수도권에 그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전국적 규모에서 청년대중단체들을
규합하는 사업을 전개해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 p.457

1983년에 창립한 민청련은 9년의 활동을 끝으로 역사의 장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범영과 유기홍, 그리고 당시 활동가들과 회원들은 이것이 민청련의 종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들 두꺼비 정신을 상기했다. 두꺼비는 뱀에게 먹힌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다, 뱀의 뱃속에서 수많은 알을 낳아 여러 두꺼비로 재탄생한다, 민청련도 마찬가지다, 전국 단위 조직인 한청협은 바로 민청련이 재탄생해서 더 많은 민청련으로 거듭난 것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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