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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창

영화의 창

: 영화장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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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1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28쪽 | 365g | 153*224*20mm
ISBN13 9788968170072
ISBN10 896817007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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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관련자료 보이기/감추기

저자 : 김길훈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학 불문학 DEA와 전북대학교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와 인문영상연구소장에 재임중이며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현대영화이론』, 『오늘날의 프랑스 영화』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조화림
프랑스 그르노블대학 불문학 DEA와 그르노블대학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프랑스학과 교수이며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다큐멘터리란 무엇인가』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김건
프랑스 파리 3대학 영화학 DEA와 파리 1대학 영화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학교 인문영상연구소 연구교수에 재임중이며 주요 저서 및 역서로는 『장-뤽 고다르』 외 다수가 있다.
저자 : 전병원
프랑스 파리 1대학 영화학 석사 학위를 받고, 전북대학교 영화영상기획전공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대학 강의 및 번역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 성기석
프랑스 니스대학 문화학 DESS와 전북대학교 영화영상기획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대학 강의 및 번역사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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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영화 장르의 태동
1. 영화의 전사(前史)

19세기에 들어서 움직임을 포착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움직이는 유기체를 그리려는 회화적 욕구, 현실을 복제하고 싶은 사진의 열망, 움직임을 기록하는 다양한 활동사진 장치의 실현 등으로 표출된다. 이러한 욕망에 기초한 사고의 전환이 바로 영화를 탄생하게 하였으며, 이후 영화는 시공간의 축소 및 확장(미장센, 몽타주 등)과 과학기술의 진보(유성, 컬러영화, 3D 등)를 통해 ‘완전영화로의 신화’를 꿈꾸고 있다.
움직임을 포착하여 재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노력은 선사시대부터 존재했다. 선사시대의 인류가 라스코 동굴이나 알타미라 동굴에 그린 들소와 말의 그림은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이며 제의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어떤 동물의 발이 8개로 그려진 사실은 움직임을 포착하고자 했던 인간 욕망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회화나 조각 같은 조형예술의 기원을 앙드레 바쟁(Andre Bazin)은 시간의 움직임(죽음)에 맞서 영속적인 삶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즉 ‘미라 콤플렉스’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르네상스 시기의 원근법은 2차원적 평면에 3차원적으로 지각된 대상을 재현하고자 하는 욕구의 분출이라 볼 수 있다.
원근법을 이용하여 움직임을 포착한 기구가 바로 카메라의 전신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이다. ‘어두운 방’을 뜻하는 카메라 옵스큐라는 상자의 작은 구멍에 렌즈를 만들어 놓고, 빛이 이 렌즈를 통해 들어가면 벽면에 바깥 풍경의 상이 전도되어 나타나게 하는 기계 장치다. 이 환등 기술은 18세기에 이르러 일종의 슬라이드 영사 장치인 매직랜턴(Magic Lantern)으로 발전한다.
19세기 초반 감광물질을 발견한 조제프 니엡스(Joseph Niepce)와 은판사진술을 발명한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 덕분에, 사진은 인간의 오랜 열망이었던 현실의 객관적 재현 이미지, 즉 현실 복제를 가능하게 해준다. 사진은 객관성을 토대로 회화가 표현하지 못하는 모사의 정확성과 정교함을 보여주며, 기계 복제를 통한 이미지의 생산과 전달을 현실화하였다.
한편 사진의 출현은 자연의 모사와 모방에 치중한 당시의 회화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오늘날 회화는 죽었다”라고 탄식할 만큼 위기감에 사로잡힌 화가들은 회화의 새로운 표현을 찾아 화판을 들고 아틀리에(화실)를 벗어나 들판과 대도시의 거리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변모하는 풍경과 도시의 인상을 화폭에 담아내며, 인상주의 유파를 형성하였다. 예컨대, 증기를 내뿜으며 출발하는 기차의 움직임을 그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파리 몽마르트 풍경의 변화를 연작으로 그린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파리 사람들의 일상을 포착하여 화폭에 담아낸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등이 있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도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해돋이와 일출의 찰나적 인상을 화폭에 담아내는데, 특히 〈생 라자르 역〉(Gare Saint?Lazare, 1873)은 열차가 출발한 후 남은 무성한 기차 연기를 포착하였다. 마네에게서 사라진 열차가 바로 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다.--- 「1.1. 라스코 동굴벽화에서 인상주의 회화까지」

19세기 회화와 사진은 정지된 그림을 가지고 움직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광학 장치(dispositif)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장치들은 일련의 정지된 영상을 빠르게 움직였을 때 실제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는, 즉 조제프 플라토(Joseph Plateau)의 잔상효과 이론을 토대로 한다. 페나키스티스코프(Phenakistiscope)는 16개의 분리된 말의 이미지를 원반에 그린 다음, 그것을 빠르게 돌릴 때 연속으로 움직이는 말의 환영을 볼 수 있게 한 장치이다. 이를 개선한 조에트로프(Zoetrope)는 회전하는 원통 안쪽에 일련의 연속 그림을 그려 넣고 빠르게 돌리면서 나타나는 움직임을 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소마트로프(Thaumatrope)는 종이 원판에 달려있는 실을 잡아당기면 원판이 회전하면서 양면에 그려진 두 그림이 합쳐져 제 3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장치이다.
사진의 대중화와 더불어 선구적인 활동사진 장치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사진작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dward Muybridge)는 24대의 사진기를 일렬로 설치하고, 달리는 말의 다리동작을 연속사진으로 담아내어, 일련의 정지된 사진을 연속적으로 투영하는 주프락시스코프(Zoopraxiscope)를 통해 최초로 움직이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또한 프랑스의 생리학자 에티엔 쥘 마레(Etienne-Jules Marey)는 초당 1개의 이미지를 찍을 수 있는 사진총(Fusil Photographique)을 이용해 새들의 움직임을 촬영하였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연구는 그 움직임을 재생하는 영화적 장치로 발전해 나아갔다. 바로 그 장본인은 에밀 레이노(Emile Reynaud)였다. 그는 거울을 통해 움직이는 영상을 볼 수 있는 프락시노스코프(Praxinoscope)라는 광학적 투사기를 만들었고, 이후 더욱 크게 그 장치를 개발하여 파리의 그레벵 박물관에서 광학극장(Theatre Optique)이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최초로 선보였다.--- 「1.2. 활동사진(Motion picture)의 발명」

2. 영화(Cinema)의 출현

현실의 실제적 움직임을 촬영(기록)하여 보여주는 영화적 장치를 개발한 사람은 발명의 왕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과 그의 조수 윌리엄 딕슨(William Dickson)이다. 그들은 1891년 카메라 장치인 키네토그라프(Kinetograph)와 영사장치인 20초 미만의 필름을 볼 수 있는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 영사기를 고안하였다. 그 후 에디슨은 ‘블랙 마리아’(Black Maria)라는 최초의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1893년부터 권투 장면이나 무용수의 춤 등을 촬영하여 키네토스코프와 함께 미국과 유럽에 배급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키네토스코프는 (오늘날의 영사기 개념이 아닌) 확대경을 통해 혼자만 볼 수 있는, 무려 5톤이 넘는 크고 무거운 상자일 뿐이었다. 이는 키네토스코프가 대중적으로 확산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에디슨이 분명 최초로 ‘활동사진으로서의 영화’를 내놓았지만, ‘최초의 영화'라는 자리에는 등극하지 못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 영예는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Les freres Lumiere)의 시네마토그라프(Cinematographe)가 차지하였다.
1895년 12월 28일 파리 그랑 카페(Grand Cafe)의 인디안 살롱(Indian Salon)에서, 뤼미에르 형제는 촬영 및 영사 겸용장치인 시네마토크라프를 통해 관객에게 1프랑을 받고 10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이 날이 영화가 탄생한 날로 간주되는 것은 바로 공공장소에서 돈을 받고 커다란 스크린에 영화를 최초로 상영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때 상영된 영화들은 1분 남짓의 일상적인 소소한 사실들을 단순하게 기록한 작품들이다. 최초의 영화로 기록되는 영화로는 〈뤼미에르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La sortie de l'usine Lumiere a Lyon), 〈물 뿌리는 정원사〉(L'Arroseur arrose), 〈시오타 역에 열차의 도착〉(L'Arrive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 등이다. 특히 〈시오타 역에 열차의 도착〉은 기차가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달려오는 느낌을 주어서 관객이 관람석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는 유명한 일화를 가진 영화이다. 이후 뤼미에르 형제의 시네마토그라프는 신기한 구경거리로써 대중의 엄청난 호응을 받는다.

뤼미에르 형제는 1900년 초까지 초창기의 영화 산업을 독점하다시피 하는데, 이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에 비해 무게가 10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어서 이동이 쉽고, 촬영과 영사의 기능을 겸용한 시네마토그라프 덕분이었다. 그들은 이 카메라를 독점?판매하면서, 오히려 촬영기사들을 고용하여 해외 곳곳으로 파견하고, 그들이 촬영한 이국적인 풍경을 콘서트홀, 카페, 장터 등에서 상영하였다. 1896-1897년 사이에 시네마토그라프는 유럽, 러시아, 호주, 남미를 거쳐 일본에까지 퍼져나갔다.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영화는 시네마토그라프의 본격적인 활용과 함께 시작되었다.
신기한 구경거리로서의 대중적 호기심이 시들해진 1900년대를 넘어서면서, 뤼미에르 형제는 자신들의 상업적인 이권을 샤를르 파테(Charles Pathe)에게 넘기고, “영화는 미래가 없는 발명품”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영화제작을 중단한다. 이와 달리 에디슨은 1896년에 시네마토그라프와 유사한 영사기인 바이타스코프(Vitascope)를 사들이고, 다른 제작사들을 향해 특허 및 저작권 침해 소송을 무차별적으로 제기하면서, 1910년대 초반까지 미국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일상의 소소한 장면, 외국의 이국적인 풍경, 왕의 대관식 같은 시사적 사건 등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현실기록영화(Actualites)라면,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elies)는 영화와 자신의 마술을 결합시켜 현실의 단순 모사와 기록을 벗어난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하기보다는 인간의 꿈, 욕망, 무의식에 내재한 영역을 영화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달나라 여행〉(Le voyage dans la lune, 1902)은 최초의 공상과학 영화로서 달나라에 가고픈 인간의 꿈을 표현하였다.

뤼미에르 형제와 멜리에스 사이의 영화제작의 근본적인 사고의 차이는 영화사에서 커다란 두 흐름의 원형을 형성한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사실주의나 다큐멘터리적 경향의 원형이라면, 멜리에스의 영화는 초현실적이고 현실의 변형에서 가치를 찾는 표현주의적 혹은 픽션적 경향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바쟁은 이 두 경향을 ‘현실을 믿는 감독’과 ‘이미지를 믿는 감독’으로 구분하여 강조한다.--- 「2.1. 에디슨 VS 뤼미에르 VS 멜리에스」

프랑스에서 탄생된 영화는 이후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유럽은 새로운 미학적 형식으로, 미국은 대중적인 오락기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된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며, (물론 이분법적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지만) 예술적이고 독립적인 철학적 의미로서의 영화(하나의 작품)와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경제적 의미로서의 영화(하나의 상품)로 구분되기도 한다.
유럽에서는 대중적인 오락거리나 장터의 구경거리인 영화를 예술로 승격시키려는 노력이 부단히 이뤄졌다. 예컨대, 1911년 이탈리아 작가 리치오토 카누도(Ricciotto Canudo)는 영화를 ‘움직이는 조형예술’이라고 규정하며, 음악?무용?조각?건축?문학?회화에 이은 ‘제 7의 예술’이라고 명명하였다. 1910년대 이탈리아는 종교적이거나 옛 로마의 흥망성쇠와 연관된 대규모 스펙터클한 영화를 제작하였다. 엔리코 구아조니(Enrico Guazzoni)의 〈쿼바디스〉(Quo Vadis, 1912)는 거대한 세트, 수천 명에 달하는 엑스트라, 실제 사자 등이 등장하는 대서사물로서(런닝타임 2시간이 넘는) 커다란 흥행을 거두며,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서는 장편영화로의 기초를 보여주었다.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폼페이 최후의 날〉(The last days of Pompeii, 1913)이나 〈카비리아〉(Cabiria, 1914) 등도 국제적인 인기를 얻는다.
동일한 시기에 프랑스는 예술로서의 영화라는 뜻을 가진 ‘필름 다르’(Film d'Art) 운동에 힘입어 순수한 예술적 표현형식을 띤 영화를 제작하였다. 게다가 1920년대 아방가르드(Avant-Garde) 시기에,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 독일 표현주의 영화, 초현실주의 영화가 등장하면서 오락과 흥미 위주의 상업영화와 변별되는 ‘예술영화’라는 말이 폭넓게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프랑스 인상주의 영화운동을 이끌던 루이 델뤽(Louis Delluc)은 포토제니(photogenie)를 주창하면서, 영화잡지나 시네 클럽(Cine-Club)의 형성에 일조하였고, 영화애호가를 뜻하는 시네필(Cinephile)의 출현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오늘날 프랑스의 예술영화전용관(Art et Essai)이나 영화도서관이라 불리는 시네마테크(Cinematheque)의 설립배경이 된다.
미국은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대작 영화들에 영감과 자극을 받아 영화에 이야기와 스펙터클한 장면을 도입하여 장편 극영화로의 발전에 박차를 가한다. 1910년대 미국 영화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 영화가 대부분이었고, 보드빌 같은 짧은 촌극을 제외하면 이야기가 있는 허구적 서사영화는 거의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토마스 인스(Thomas Ince), 맥 세네트(Mack Sennett), 데이비드 그리피스(David Griffith)는 미국영화를 개척한 주요한 선구자들이다. 특히 그리피스의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nation, 1915)은 극영화로의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고,

극영화가 빠른 속도로 대중적 오락으로 자리 잡는데 일조하였다. 남북전쟁을 통해 남군의 입장에서 미국이라는 국가의 건국 가치를 묘사한 이 영화는 인종주의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몽타주와 클로즈업 등 영화형식에 기초를 제공한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장편영화 제작의 국제적 확산은 영화를 산업으로서 자리 잡게 하는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또한 극영화가 발전하면서 영화만을 상영하는 극장이 1910년대 초부터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소형 극장 니켈오데온(Nickelodeon)이 성황을 이루고, 이후 장편영화의 확산과 더불어 안락한 객석을 갖춘 화려한 영화관도 속속 등장한다.
--- 「2.2. 예술로서의 영화(film)와 산업으로서의 영화(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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