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면서 생각했지. 너 같이 덜 자란 것들은 말이야. 꼭 말을 해줘도 들어먹지를 않아. 어떻게 해야 알아먹을까. 그러다 깨달았지. 이렇게 직접적으로 해야 그나마 알아듣겠다고 말이야. 어때? 이제 대화가 좀 되겠나?”
“컥, 헉, 헉. 희진이가 웬일로 도망을 가나 했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거든. 알겠군. 네놈 때문이었어.”
비웃으며 말하는 희우를 보면서 준석의 눈빛이 조금 더 짙어졌다. 그때, 그의 시야에 벽면의 시계가 들어왔다.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짜증이 났다. 그의 시선이 다시 희우에게 돌아갔다.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게 좋아. 또다시 희진이가 상처를 입는다면, 장담하지. 희진이를 기억하고 있는 그 뇌의 모든 부분을 내가 직접 도려내주지. 그리고 외딴 섬 어딘가에 처박아 놓겠어. 너 같은 것들은 이렇게 친절하게 경고를 해줘도 절대 말을 듣지 않지. 기대하겠어. 움직여봐. 그래야 내가 널 잡을 수 있어. 너 하나쯤 이 땅에서 사라진다고 찾을 사람은 없어. 물론, 사람도 아닌 너 같은 짐승 따위를 기억할 사람도 없을 테고.”
희우는 온몸을 휘몰아치는 거센 피의 역류를 느꼈다. 그의 말 하나하나가 뇌를 파헤쳐 미칠 것 같았다. 그에게 빠르게 다가가 주먹을 휘둘렸다. 하지만 준석이 일어서며 그의 주먹을 잡아 그대로 뒤로 밀쳤다.
크게 반원을 그리며 뒤로 넘어간 희우의 몸이 엉덩이부터 바닥에 세게 부딪쳤다가 뒤로 넘어갔다.
준석은 휴대폰을 꺼내 부재중 통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통에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희우를 내려다보았다.
“네 녀석이 가장 용서가 안 되는 건, 저항도 하지 못하는 아기였던 희진이를 철저하게 고립시켜서 학대했다는 사실이야.”
희우가 일어나려다 찌르르 척추를 울리는 통증에 몸을 꺾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그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네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네가 우리에 대해 뭘 안다고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준석이 그에게 한발 다가섰다.
“착각하지 마. 희진이를 절대 네가 말하는 ‘우리’라는 단어에 넣지 못해. 넌 그걸 네 손으로 짓밟았어. 다시 한 번 그 단어를 지껄여 봐. 이희우, 내 인내심은 거기에서 끝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치열하게 부딪쳤다. 희우의 피로 엉긴 입술 끝이 조금 비틀어졌다.
“희진이한테 미쳤다고? 이제 두 번 다시 네놈은 희진이를 볼 수 없어. 어디 허우적거려 봐. 이제 난 뺏기지 않아!”
주머니에 넣어져 있는 준석의 손은 여전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직까지 희진이가 깨어났다는 연락이 오지 않고 있었다. 단순히 탈진해서 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그렇게 만든 놈이 눈앞에 있었다. 힘겹게 잡고 있는 이성이라는 놈을 풀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렬했다.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머리가 나쁘군. 하긴, 지금 네가 지금 이성적으로 판단할 상태는 아니겠지. 너 같은 것들을 좀 알지.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듯 그렇게 말하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꼭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어. 아마 너한테는 어머니겠지. 하지만 어떡한다. 그 어머니가 없으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미친 너를 잠재울 수 있을까, 오면서 생각했지.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좋아하던 집과 의상실이 있더군. 맞아. 그 의상실은 없어졌지. 그리고 회사가 되었지. 그 회사와 집을 조건으로 걸지. 더 이상 내 인내심을 시험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아. 희진이에게 접근하지 마. 희진이가 다시 저 상태가 된다면, 내가 장담하지.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부숴준다고. 못할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 접근해 봐. 희진이 시야에 네가 보이는 그날, 두 번 다시 사회에 발 디딜 수 없을 만큼 끝을 봐주지. 더불어 네놈의 뇌도 같이 들어낼 거야. 네가 두 번 다시 희진이를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병신을 만들어 주겠어.”
사소한 담소를 나누듯이 담담한 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이상 들어줄 수 없다는 듯 희우가 크게 웃어젖혔다.
“하하하. 다른 건 몰라도 네놈의 허세만큼은 인정한다. 어디 한 번 해보지 그래.”
“그래. 나도 원하는 바야."
준석의 표정엔 거짓이 없었다. 기대감까지 서린 눈이 번들거렸다.
“미치광이였군.”
“하하하. 그래, 맞아. 말했잖아, 내가. 이희진한테 미쳐 있다고.”
진정으로 기쁘다는 듯 웃으면서도 준석은 살기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증폭되어 가는 분노가 한계에 다다랐다. 끊이지 않고 뇌를 간질이는 강한 유혹이, 희우를 죽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달콤하게 속삭였다.
그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처참한 몰골의 희우의 몸 한 구석에 시선을 꽂았다. 그의 발이 거침없이 떼어졌다. 준석의 잔인한 미소가 소름끼치도록 차가웠다. 그 순간, 끝까지 지겹게 그를 붙잡고 있는 ‘이성’이란 놈이 저놈을 놓아줄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이유를 소리쳤다. 살기를 눌러야했다.
“이희우, 원래 상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더 크게 받는다는 걸 아나? 너와 네 아비가 감정에 충실한 동안 어린아이는 죽어갔어. 너 같이 아직 덜 자란 것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를 거야. 거리를 지날 때 한 번 봐. 갓난아기부터 9살까지의 여자아이를 말이야. 네놈이 그 작은 아이한테 한 행동들은 반인간적인 것들이야. 넌 인간이라고 할 수 없어. 이희우, 잊지 마라. 절대 희진이 눈에 띄지 마. 진심으로 널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죽이고 싶다. 그나마 희진이와 피를 나눴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다음이란 없어.”
준석이 그대로 몸을 돌려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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