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전은 국립현대미술이 한국미술사를 다층적으로 조명하기 위하여 2014년 과천관에서 시작한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 중 판화부문의 첫 번째 전시입니다.
황규백 선생이 뉴욕에서 활동할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이경성 선생께서는 한국 개인전 서문에서 “황규백은 후조(候鳥)처럼 때때로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들을 즐겁게 해준다. 돌아올 때마다 그는 새로운 조형의 언어를 갖고서 우리의 시각을 기쁘게 해주고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다”고 평했습니다. 이제 그 후조는 우리들 가까이로 돌아와 자리 잡고 더 큰 창작의욕으로 작품 활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8년 선생께서 파리로 이주 직후 제작한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총망라 한 이번 전시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땅의 후조가 아닌 낯익은 땅의 유(留鳥)로 한결 같은 모습으로 작업에 임하고 계신 황규백 선생의 작품세계를 재조명 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 「김정배(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직무대리), 『인사말』, 6p
황규백의 판화가 특별하고, 주목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전통적인 메조틴트 작품의 화면 배경색이 어두운 색인 것에 반하여 황규백은 그것을 깃털과도 같이 밝고 부드러운, 독특한 회색 톤으로 만들어 냄으로써 화면 안에서 보여지는 여백을 시각언어로 전이 시킨다는 것이다. 미국의 브룩클린 미술관 큐레이터 조 밀러(Jo Miller)는 황규백을 “음각판화의 위대한 실험자”라고 평하였으며, “시(時)적인 구도 안에서 인생을 관조한다”고 언급하였다. 최소의 단어와 운율로 쓰여지는 한 편의 시와도 같은 황규백의 작품에는 일상의 사물과 풍경이 화면 안에 은유적으로 병치되고, 새롭게 재구성된다.
--- 「양옥금(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황규백: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중에서
못, 성냥, 보따리, 달걀과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사물들은 마법적인 것들로 변모한다. 황규백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자들과의 연계성도 찾을 수 있지만 그들에게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사실 작가는 파리의 S.W.헤이터에게서 사사했으나 그의 아틀리에17 동료 작가들의 작업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헤이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 또한 놀랍다. 새로운 예술가임이 분명한 황규백은 “주의(ism)”나 학파, 또는 거장이라는 명칭에 태연하다. 남다른 감수성의 소유자인 황규백은 아주 사적인 서술(private statement)을 통해 새로운 것만을 쫓는 최근의 경향에 지친 관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나는 황규백의 차기작들과 앞으로의 활동을 기대하며, 그가 “보이는 것과 숨겨진 것” 이라는 두 가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원시적인 매체, 메조틴트 작업을 지속해 나가길 바란다.
--- 「조 밀러(Jo Miller) (브룩클린 미술관(미국) 판화.드로잉 부문 큐레이터) - 1975년 3월 10일 황규백의 1975년 개인전 전시서문 수록글, 『황규백의 최근 메조틴트 작업에 대하여』」중에서
그의 다색 메조틴트 작품들은 전체적인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특별한 관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초현실적이다. 그는 외부적인 것들은 피하고 내적인 진정성과 장인정신을 가지고 시각적인 직관의 핵심에 도달하고 있다. 그의 풍경들은 대지와 하늘, 그리고 인간이 대지 위에 자리해놓은 비교적 단순한 사물들(집이나 손수건)과 더불어 대지로부터 자라난 잔디밭이나 꽃들의 식물적인 유순함을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설득력 있는 서사에 의해 시각화됨으로써 평화로운 정경을 보여준다. 황규백의 작품들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의 인품 그대로 세련되면서도 평온한 어린아이와 같은 부드러움을 반영하고 있다. 숱한 고함소리와 때로는 분노로 가득한 목소리들이 그들만을 바라봐주길 원하는 오늘날, 이렇게 차분하고 소탈한 황규백의 “목소리”는 예술을 통한 영원으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 「고든. W 길키(Gordon W. Gilkey) (포틀랜드 미술관(오레곤, 미국) 판화. 드로잉부문 큐레이터) ? 황규백 판화집 2011년 수록글, 『황규백의 판화세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