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분노를 통해 본인의 권리와 가치를 지키며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이유를 들며 분노는 정상적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감정이라고 말하곤 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밀한 관계에서의 분노란 기본적으로 관계에 그늘을 드리우는 감정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이나 싫음, 좌절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은 때로는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친밀함을 증진시키며 건강하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분노는 그렇지 않다. 분노는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판단을 동반한다. 판단이 개입되면 다시 흥분하게 되고, 흥분할수록 판단 정도도 심해지므로 결국 정확하지 않은 감정으로 비효과적인 표현을 하게 된다. 오해와 갈등이 불거지므로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기 힘들어진다. --- p.46
‘상대방이 나를 공격했는데 맞서지 않는다면 결국 내가 항복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을힘을 다해 싸우지 않으려는 것은, 항복과는 다른 선택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패배시키는 것은 결국 자기 패배일 수 있으므로, 싸움을 멈추는 것은 상대방을 다치지 않게 하면서 자신을 지키는 용기 있는 행동이다. 내가 이기고 상대방이 지는 건 결국 둘 다 지는 선택이며, 애초에 공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모두가 이기는 선택임을 깨달아라.
싸움을 멈추려는 것을 항복으로 받아들인다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싸움을 멈추는 데 용기와 신념, 기술이 필요하며 이 덕분에 모든 사람의 삶이 더 나아진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수치심에서 벗어나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것이다. --- pp.58~59
누군가가 나를 비판할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생각해보라.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비판하면 그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관계에도 독이 된다. 애초부터 화를 내거나 비판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 자신의 진정한 반응, 자신이 원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비판과 분노의 공회전을 줄이기 위한 해독제가 있다. 바로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 p.125
우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최악의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긍정적이고 현명하며 바람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즉 어떤 사람에게든 사랑받을 만한 장점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라. 또한 문제가 되는 모든 행동에도 이유가 있음을 이해해라.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행동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비난의 화살을 잠시 거두어두고, 그러한 상황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 p.172
우리의 반응 중 상당 부분은 학습된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일관되게 행동하고 품위 있으며 정직하다면, 그 가운데서 사람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반면에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나를 이용하려 든다면, 사람에게 쉽사리 다가가기 어렵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각각의 반응을 어디서 배웠는지 정확히 짚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가 상대방에게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 상대방의 과거 경험 때문에 지금처럼 행동한다고 가정해본다면 현재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게 더욱 쉬워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동이 수수께끼 같더라도, 거기에는 내가 아직은 모르지만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 p.176
서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나도 그래”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된다. 풀어서 말하자면, “당신이 나한테 잘해주는 만큼 나도 당신에게 잘해주고 싶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고, 당신이 느꼈듯이 나도 당신처럼 우리 문제에 대해 실망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저 이렇게 말하면 된다. “나도 그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건설적인 관계를 만들어나가려면 “나도 그래” 이 한마디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 p.181
사람이란 경우에 따라 어떤 때는 애인과 함께 있고 싶어하지만, 어떤 때는 떨어져 있고 싶어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얼마나 함께 있고 싶은지, 얼마만큼 서로의 삶을 나누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개인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차이로 인해 괴로워할 수 있고, 이것이 서로 간에 이견이 생기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
하지만 여기에서 들여다봐야 할 진실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서로 다른 것을 원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서로 많이 다를 수도 있고, 아주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을 정당화한다는 것은 내가 느끼고 원하는 것을 자각하면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내 상태를 묘사하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인정하는 것이다. 동시에 표현이 정확해야만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정확히 의사소통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 p.193
삶의 유한성을 진정으로 체득한 사람이라면, ‘오늘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단점만 바라보면서 자기 인생을 허비하고 싶은가? 사랑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가? 자신의 묘비명에 이런 부정적인 것들만 한 가득 남기고 싶은가?
내게는 선택권이 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두고 실망하고 비난하며 분노할 수 있다. 반면에 내가 원하는 걸 갖지 못했더라도 혹은 갖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앞으로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물론 그렇게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 가운데에는,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들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력한다면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지금 가진 것들의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다.
무슨 대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감정과 관계 등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면서 사랑할 때, 역설적으로 그것을 더욱 원하고 사랑하게 되며 좋아하지 않는 부분을 바꾸는 것 역시 쉬워진다.
--- pp.26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