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오토헤럴드〉편집장. 1992년 교통신문에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교통 분야를 주로 취재해 왔으며 2003년부터 자동차 팀장으로 근무했고, 2011년 웹진〈오토헤럴드〉를 창간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MBC, KBS 등의 시사 프로그램에 다수 출연했고, 현재 대구교통방송에서 자동차를 포함한 주요 교통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독일 국민들을 위해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첫 자동차가 그 유명한 비틀(Beetle)이다. 비틀은 히틀러가 생존해 있던 1938년부터 판매가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생산은 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다. 이후 25년 동안 포르쉐 박사의 디자인과 엔진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며 총 2,100만 대가 판매됐다. 이는 단일 모델로는 세계 최다 판매 기록이다. 하지만 비틀의 시대는 새로운 타입의 승용차가 속속 개발되기 시작한 1974년부터 막을 내리게 된다. 폭스바겐은 전륜 구동방식에 수냉식 엔진과 안락함과 실용성이 뛰어난 골프를 개발했고 세계 자동차 시장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작지만 강력한 성능을 갖춘 해치백 골프는 계층과 연령을 뛰어넘는 새로운 자동차의 표본이 됐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가 됐다. _pp.18~19
1899년 루이 르노(Louis Renault), 마르셀(Marcel) 르노, 페르낭(Fernand) 르노 형제가 설립한 르노(Renault)는 첫 양산차 ‘Type A’와 1900년 세계 최초 살롱인 ‘Type B’를 만들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포목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루이 르노가 13살 때 증기차 제작자인 레옹 세르폴레의 차에 반해 스무 살이 되던 해 시속 32㎞의 2인승 차인 루이 르노 1호 ‘Type A’를 만든 것이다. Type A는 당시만 해도 벨트나 자전거 체인으로 구동력을 전달했던 방식과 달리 프로펠러 샤프트와 디퍼렌셜 기어로 뒷바퀴를 구동하는 직접변속기 방식을 적용했다. 루이 르노는 1899년 친형인 페르낭과 마르셀을 설득해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고, 같은 해 파리산업박람회에 르노 1호차를 출품해 60대의 주문을 받아내기도 했다. _pp.39~40
포드가 세상에 처음 내놓은 ‘모델 T’의 천문학적인 판매가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가격경쟁력 덕분이다. 보통 차 구입가가 대당 2,000달러를 넘어서던 시절, 서민들에게 자동차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데 ‘모델 T’는 평균 자동차 구입가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850달러였다. 따라서 당시 중산층에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조립공정 시스템의 도입도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데 한몫을 했다. 포드는 1913년 말 ‘컨베이어벨트 조립 라인’을 세계 최초로 소개하면서 섀시 조립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12시간 30분에서 2시간 40분으로 단축하는 믿지 못할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로써 3분에 한 대씩 조립이 가능했고, 노동시간은 10분의 1 수준으로 단축됐다. 이렇게 원가절감으로 이어진 효과는 급기야 300달러 이하로 자동차를 판매 가능하게 만들었다. 조립공정의 자동화는 차량 공급의 급속화를 가져왔고, 이 흐름은 중산층의 확대로 이어져 결국 미국 경제가 세계를 주도하는 데 밑거름 역할을 하게 된다. _pp.7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