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그린 세계 지도와 하늘의 별을 세세히 기록한 천문도를 보았고, 서양의 수학을 배우고, 망원경으로 태양을 관찰했습니다. 대학자들과 사귀는 즐거움도 마음껏 누렸지요. 인간과 우주, 자연, 유학에 대해 밤을 지새워 토론하면서 나는 중국의 한족 문화가 세계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청나라에 다녀온 몇 년 뒤에 나는 「의산문답」을 썼습니다. 「의산문답」은 과학책이기도 하고 철학책이기도 하고 소설책이기도 합니다. ---「나는 홍대용이올시다」
“사람, 동물, 식물은 이 세상에 뒤엉켜 살면서 서로 돕기도 하고 잡아먹기도 하지. 이 셋 중에 더 귀하고 천한 것이 있을까?”
허자는 뭐 이렇게 쉬운 것을 묻나 싶었지요.
“오직 사람만이 귀합니다. 동물과 식물에게 지혜나 깨달음이 있나요? 예의라고 눈곱만큼이라도 있나요? 동물은 사람에 비할 것이 못 되며, 식물은 동물보다 천하지요.”
실옹이 고개를 쳐들고 웃었습니다.
“허허! 그럴 줄 알았지. 자네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고 의리를 지키고 몸을 깨끗이 하고 슬기롭게 처신하는 것은 사람의 예의지. 하지만 동물은 배불리 먹고 새끼를 지키면 그만이다. 식물은 때가 되면 태어나 무리를 지어 평화롭고 느긋하게 자라면 훌륭한 것이고.
사람의 눈으로 자연을 보면 사람은 귀하고 동식물은 천하지만, 동식물의 눈으로 보면 자기들이 귀하고 사람이 천한 것이지.
생각해 보아라. 사람의 눈도 아니고 동물의 눈도 아니고,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더 천한 것, 더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 오히려 동물은 지혜가 없으니 속일 줄도 모르고, 식물은 움직이지 않으니 나쁜 짓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따지면 동물과 식물이 사람보다 더 낫지 않으냐?” ---「하늘의 눈으로 만물을 보라」
나는 뉴턴에게 대뜸 물었지요.
“도대체 왜 모든 것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입니까?”
뉴턴이 하는 말이, 만물이 땅으로 떨어지는 건 중력 때문이라는 거예요. 지구에 중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힘이 만물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라고요.
뉴턴은 이런 종류의 사실은 생각만으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때 자기는 밥 먹는 것도 잊고 밤이 오는 것도 모르고, 계산하고 계산하고 또 계산을 했다고 합니다. 지구가 정말로 만물을 끌어당기는지, 지구한테 정말로 그런 힘이 있다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그 크기를 알려고요. 중력, 하하! 중력! 나는 이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해 보았습니다. 자연의 이치를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다니 참 신통했습니다. 게다가 그 중력이라는 것이 지구 달, 태양 같은 천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 개, 사과, 빗방울, 먼지 같은 세상 만물에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것들로 지구를 끌어당긴다는 거지요! 가까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서로 끌어당기고, 멀어지면 그 힘이 점점 더 약해져 사라지고!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지! 하지만 뉴턴의 말에 의하면, 사람과 개와 사과와 빗방울의 중력은 지구에 비하면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작아서 지구가 사람에게 끌려오지 않는다나요. 물론 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아주 조금 끌려오지만 그 힘이 너무 약하니 무시해도 좋은 정도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그려!” ---「지구는 크고 무거운데 왜 아래로 떨어지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은 지구가우주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는데 자네는 어떤가? 지구가 우주 한가운데에 있고, 해와 달과 별이 지구를 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책만 읽은 헛똑똑이 허자가 아는 체를 합니다.
“그야 이를 말씀입니까?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모두 지구를 돌고 있는 것은 천문에 통달한 학자들이 오랫동안 하늘을 관측하여 하는 말이니 의심할 게 없지요.”
“쯧쯧, 내 그럴 줄 알았지. 헤아릴 수도 없고 어림잡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별이 우주에 흩어져 있는데 지구만이 우주 한가운데에 있다고 우길 수 있을까.
허자야, 잘 들어라. 우주에는 수많은 별이 있으니 지구 또한 한 개 별일 뿐이다. 지구가 하나의 세계인 것처럼 별 하나하나도 나름의 세계인 것을! 저 별 가운데 어떤 것 하나에서 우주를 본다고 해도 지구에서 그런 것처럼 스스로 뭇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길 것이다.” ---「태양도 별들의 중심이 아닌걸」
“허자야, 들어 보아라. 오랑캐이건 중국 사람이건, 하늘이 낳고 땅이 키우며 혼백과 피가 있으니 다 같은 사람이다. 뭇사람 가운데 특별히 뛰어나 한 나라를 맡아 다스리게 된 자는 모두 군왕이라 할 수 있으며, 군사를 키워 그 국경을 굳게 지킨다면 영토가 작든 크든 모두 국가이니라. 관을 쓰거나 모자를 쓰거나 문신을 새기거나 이마에 그림을 새기거나 모두 자기네 나라의 풍속일 따름이다.
하늘에서 보면 어찌 중심 민족과 변두리 민족이 따로 있겠느냐. 어찌 자기네 것만 잘나고 남의 것은 못났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자기 나라 사람을 가깝게 여기고 제 나라 임금을 높이며 제 나라의 풍속을 좋게 여기는 것은 중국이나 오랑캐나 마찬가지다.”
---「만물의 참 이치를 깨달아 공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