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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무채색 언어를 변주하다

빛바랜 무채색 언어를 변주하다

시로여는세상 시인선-040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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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00g | 125*205*9mm
ISBN13 9788993541588
ISBN10 899354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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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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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으로 안고 있던 언어들
이제는 곰삭았을까 하는 마음에
유채색을 입히려고 내놓았으나
지나가는 바람에
한참 색이 바랬습니다.
빛바랜 무채색 언어
고운 색으로 입혀 봐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무채색으로도 볼 수 있고
오묘한 색을 입혀서 볼 수도 있습니다.
모자라는 언어
여러 가지 색을 더해
끌어안아 봅니다.
--- 「시인의 말」중에서

하루의 향기가 입안에서만 오글거릴 때
커피를 내려
한 모금 입에 문다
입에 문 커피
넘기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할 때
흐린 날의 카페라테는 꽃이 피지 못한다
창밖의 날씨가 두껍고 두껍다
한 자락 늘어진 갈잎에
천 겹인 낮은 소음들이 쌓인다
그녀들이 쏟아내던 웃음소리
맑은 주렴처럼 걸어 놓았던 시간
낮은 구름이 삼켜 버린다
그들과 만남의 시간에
짙은 회색 구름이 발목을 잡아 놓는다
거실 무채색의 바다를 그린 액자 속에
그림자로 등장인물이 되어 홀로 서 있다
--- 「흐린 날의 커피 타임」중에서

빨간 우체통 대신
SNS 언어가 긴 그림자를 남길 때
기하학적 무늬를 끄집어 내온다
영혼 없는 무늬에서
짝을 잃고 헤맨다는 소식
카톡카톡 정지된 공간을 깨운다
기하학적 무늬 속에서 그녀를 만난다
때를 잃어 무서리 속에 피던 구절초 마냥
볼 때마다 꼭짓점 언저리에서 위태롭게 맴돈다
늦은 가을비, 차디찬 빗방울이
가득 채워져 가고 있다
첫눈이 많이 쌓였다
흰 눈 속에 흠집 많은 자작나무가
누덕누덕 종아리를 내밀고 있다
--- 「디뎌 놓는 발걸음이 다 기하학적 무늬 」중에서

나를 끌어들이지 못한 검은 음표들이
머릿속을 흔든다
잿빛 거리에서 갈 곳을 잃어 산속을 찾았다
침엽수 잎 활엽수 잎
악기의 현으로 삼던 바람
능숙하게 꽃꽂이를 하는 창문 넘어
햇빛 결에 흔들리는 유리창의 노랫소리 같다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순수한 나뭇잎을 만져 본다
순수하다 못해 녹색이 되어버린 숲
그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껍질이 벗겨져서
내 정강이뼈처럼 드러낸 나무뿌리들
어느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들의 발걸음에 닳았을까
밟고 밟혀서 하얗게 해탈해 나가는 아픔의 소리
거미줄이 미명의 바람에 흔들려
소리 없는 울음소리를 거두어들이고 있다
--- 「그들 앞에서 어떤 아픈 소리를 내겠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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