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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끝에 선 피에타

계절의 끝에 선 피에타

시작시인선-0312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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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1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15g | 128*188*9mm
ISBN13 9788960214590
ISBN10 8960214590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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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달팽이 같은 입술과

볕 한 뼘만큼의 그늘을 주소서

느릿느릿 이 등짐 한 채 지고

먼 하늘까지 무사히 건너게 하소서

2019년 11월
류인채
---「시인의 말」중에서

지문

공항 출입국 심사대
어디에 내 손가락을 빠뜨렸을까

돌아보니 너무 서둘러 온 길
왼손과 오른손 엄지와 검지
손가락 끝마디 안쪽의
둥근 지문指紋이 없다

손거스러미를 쥐어뜯으며
무심코 돌멩이를 던지던 강을 떠올린다
넋 놓고 수면을 바라보면
신천옹信天翁의 날갯짓 같던 소용돌이

강 한가운데로부터 바깥으로
둥글게 퍼져 사라지던
지문 같은 파문

물새가 날개를 접어도
수면은 이따금 태동처럼 불룩 올라왔다

수태되기 전 이미
두 손에 꼭 쥐여 주신 로고스
아무도 지울 수 없는 선명한 지문

많은 무늬를 품고
여문 강물은 고요해졌다
---「지문」전문

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나는 자연을 사물을 사건을 향해 열려 있는 류인채의 오감을 좋아한다. 그는 안개에 베인 고니의 상처를 보며, 자작나무의 흐느낌과 눈물을 보며, 새들이 일으키는 물결에 종아리가 간지러워 흔들리는 갈대꽃을 본다. 멀리 섬처럼 떠있는 가창오리 떼와 오리를 목이 긴 항아리로 본다. 꽃 섶을 파고드는 개미를 본다. 그는 빗방울이 잎새를 두드리는 소리를,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우는 소리를 듣고, 그는 연어에서 엄마 냄새를 맡는다. 들쥐의 땅속 일을 감각한다. 달팽이의 입술과 한 뼘만큼의 볕과 그늘을, 촉촉한 그늘을 감촉한다. 그러므로 류인채는 감각하는 자작나무이며, 감각하는 갈대이고, 감각하는 고니이며, 감각하는 가랑잎이며, 감각하는 연어이다. 류인채는 오감으로 길모퉁이에서 젖은 수국을 통해 실의에 젖은 이웃을 보고, 휘날리는 가랑잎과 귀에 바코드를 박은 소를 통해 사육당하는 자신을 본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풍선덩굴을 보고, 쇠제비갈매기를 통해 남편을 본다. 류인채는 만물을 향해 오감을 열어놓아, 인생의 늪을 걸어본 사람만이 젖은 발이 무엇인가 안다는 진리를 발견하기에 이른다.
- 공광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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