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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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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16쪽 | 177g | 128*205*8mm
ISBN13 9791130814827
ISBN10 113081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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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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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의 시

느릿느릿 나무 의자 문밖에 내놓고 앉아
천천히 눈 들어 먼 하늘 바라본다
긴 여정을 끝낸 여름 해는
죽을힘을 다해 꼴깍 서산을 넘는다
하늘가에 붉은 노을로
절명시 한 편 걸어놓고

보-ㅁ 모-니껴

보면 모릅니까? 의 안동 말은
보-ㅁ 모-니껴
보와 모를 강하게 발음한다.
아는 이는 알고 모르는 이는 모른다, 의 안동 말은
아-니는 아-고 모-니는 모-ㄴ다.
아와 모를 강하게 발음한다.
따라 해볼래요
보-ㅁ 모-니껴
아-니는 아-고 모-니는 모-ㄴ다.
입으로 여러 말 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낫고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몸에 밴 말투다.
농사철 땀 흘리며 일하는데
양복 입은 면장님이 찾아와서
올해 농사는 어떻습니까? 하면
보-ㅁ 모-니껴? 하고
선거철 높으신 분이 재래시장 찾아와서
요즘 장사 잘 됩니까? 해도
보-ㅁ 모-니껴? 한다.
지을수록 밑지는 농사짓는다고 업신여김당하고
애면글면해도 펴지지 않는 살림살이
우리네 기막힌 사정을
아-니는 아-고 모-니는 모-ㄴ다,
는 것이다

너를 만나려고

너를 만나려고 북쪽 끝으로 갔다
너를 만나려고 전망대에 올랐다
누가 그어놓은 금 하나 넘지 못해
네 모습 끝내 볼 수 없었다
너를 만나려고 남의 나라로 돌아서
압록강, 그 강가에서 바라보았다
누가 그어놓은 금 하나 넘지 못해
네 모습 끝내 볼 수 없었다
네가 산다는 그 하늘가
사무치는 눈빛만 허공에 걸어두고
속절없는 발길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를 만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이름 모를 풀꽃만 바람에 흔들려라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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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뿔이 없어서 뒷발질을 낳았다. 토끼는 뿔이 없어서 귀가 자라났다. 사자는 뿔이 없어서 송곳니가 죽순처럼 솟구쳤다. 캥거루는 뿔이 없어서 아기 주머니가 생겨났다. 쥐는 뿔이 없어서 입구 하나에 출구 열셋의 지하 단칸방을 건축했다. 까맣게 빛나는 작은 눈을 갖게 되었다. 독수리 발톱이 닿는 먼 하늘까지 날아올랐다. 귄서각 시인은 쥐뿔이란 아호를 갖고 있다. 쥐뿔도 없지만, 우주를 품겠다는 자존! 없는 쥐뿔을 바투 세워 무너뜨려야 할 것을 끝내 들이받는 각성! 시인은 뿔이 없기에 뒷발질을 하고, 뿔이 없기에 먼 울음으로 달팽이관을 채우고, 뿔이 없어서 불의의 숨통을 끊는 송곳니를 키운다. 뿔이 없기에 어리고 기룬 것을 아기 주머니에 키운다. 쥐뿔 속에는 “온몸에 가시를 박고 살다가/자글자글 불에 구워져” 노릇노릇해진 시가 산다. “얼마나 아픈 세월이었느냐”, 살을 발라 먹는데 온통 가시다. 보기에는 흰 살점이었는데, 목구멍에 닿자마자 가시가 박힌다. 손가락을 넣어 뽑아보니 둥글고 희고 단순하다. 생선가시처럼 파도와 노래와 노을을 껴안고 있다. 애간장을 감싸고 있던 마음 졸임이 활처럼 휘어져 있다. 그리하여 권서각의 시에는 애간장이 녹아 있다. 애간장을 달이는 뒤뜰 오지항아리가 있다.
- 이정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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