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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9.6 리뷰 14건 | 판매지수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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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460g | 153*224*20mm
ISBN13 9788994468129
ISBN10 8994468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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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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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슬프면 목놓아 울어도 되고 다시 웃어도 된다.
웃어서 미안하다는, 살아 있는 게 죄스럽다는 슬픈 말은 없어야 한다.
숨죽여 숨어 있는 생명들에게 그렇게 말을 건넨다.
--- p. 28

돌아가야 할 계절이 있다
그 골목엔 여름에 눈이 내리고
아침녘 아이들의 웃음소리
비가 오면 별이 내렸지
--- p. 59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속을 비운다. 아무 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들여다보니 새싹이 올라오고 있다. 고목의 거친 껍질을 두르고 새 생명이 자란다. 다시.
--- p. 67

해가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빠르게 빛깔을 바꾼다. 황금빛으로, 붉은빛으로, 보랏빛으로, 능소화 주홍빛으로. 순식간에 마지막 햇살까지 삼키고 다시 보랏빛으로, 푸른빛으로 식어간다. 수평선 푸른 줄기 따라 어화가 하나둘 피어난다.
--- p. 149

뭐 그리 대단한 걸 쓰려 했던 걸까요. 내 속에서 끓던 건 큰 감동 같은 게 아니었는데. 삶의 구겨진 틈 사이로 건네는 실없는 농담. 무거운 한숨이 피식, 김빠진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이 주는 작은 위로였는데 말입니다.
--- p. 199

들판은 바람으로 가득하다. 햇살이 억새 물결 속에서 금빛으로 은빛으로 몸을 뒤치고, 억새는 저마다의 박자로 고개를 흔든다. 수많은 손들이 어서 오라 손짓하는 듯하다. 저 손짓이 나를 그렇게 불렀나 보다. 가을 바람이 우리 마음에 사무치는 건 억새를 지나온 바람에 묻어 있는 그리움 때문이었나 보다.
--- p. 206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은 갑자기 다가오기에 충격이다. 예상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기에 비현실적이다. 이때 우주로 날아가버린 정신을 돌아오게 하는 건 너무 평범해서 평소엔 눈에 띄지도 않던 풍경들이다.
--- p.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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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꼬박, 두 시간 걸렸습니다. 불현듯 이불 속에서 빠져나와 한달음에 섬을 한 바퀴 다 돌고, “미쳤구나”를 속으로 외칩니다. 뼈 속에 숨겨둔 울음들이 이리도 조용한 열정으로 빛날 줄이야! 보내온 원고를 다 읽고, ‘눈보라를 뚫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오래 바라봅니다. 너무도 멀리 와버린 꿈이 부디, 제주의 꽃과 오름이 그러하듯 제 빛깔에 알맞은 이름으로 야무지게 피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곧 안개가 걷힐 거 같아 안심입니다.

제주에 오십 년 산 이가 제주에 오년 산 이에게 부끄러워집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풍경이지만 사실은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데 저도 놀라서 담구멍에라도 숨고 싶습니다. 길과 바다, 돌과 억새의 숨결을 읽어내는 작가의 시력과 청력에 경외감을 느낍니다. 일상을 쓰다듬으며, 숨 한 번 들이마시며, 최선을 다해 버티어냈음에 눈앞이 흐릿해집니다.

세 해 전 이맘때 쯤, 서은석 작가를 만나 오며가며 자주 마주쳤지만 서로 별말은 없었습니다. 그의 가슴에 시가 숨어 있다는 건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요. 반짝이는 눈은 언제나 사물의 역광에 머물러 있고, 말은 침묵에 가까웠고 간혹 눈물이 대신할 때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물음으로부터 세발자국 정도 느리게 흘러나왔지요. 시로 화답해야 하니까요. 걱정하지 않습니다. 섬에는 비가 내릴 것이고, 바다에도 눈이 내릴 것이니까요. 시를 쓸 테니까요. 시를 닮은 사진을 찍을 테니까요. 언제까지나. 그것만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 강은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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