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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돌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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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돌 하우스

[ EPUB ]
김경미 | 가하 | 2013년 02월 19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6.0 리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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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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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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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5.03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20.4만자, 약 6.5만 단어, A4 약 128쪽?
ISBN13 978896647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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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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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뮤직박스 음악이 울렸다. 발랄하게 띵띵 울리는 벨소리가 애타게 주인의 손길을 기다렸다. 벨소리를 따라가 쌓여 있는 디자인 북과 사진들을 뒤적거려 맨 아래 묻혀 있는 휴대전화를 찾아냈다.
모르는 번호인데…….
윤정은 전화번호부에도 등록되어 있지 않은 전화를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했다. 요즘 이상한 장난 전화가 늘어나 무조건 받으려니 망설여졌다. 법원이라며 걸려온 보이스 피싱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일의 특성상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받아도 문제, 안 받아도 문제. 세상살이가 다 그렇지.
체념의 한숨을 내쉬며 항복하듯 슬라이드를 밀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벨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녀는 무난한 검은색의 네모반듯한 휴대전화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받으려니까 끊어진다, 이거지. 흥, 급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다시 전화하겠지.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벨소리가 다시 울렸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하마터면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했다. 파란 액정 화면에 같은 번호가 떠오른 것을 보니, 장난 전화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 급한 일인가? 다시 끊어질까 봐 서둘러 휴대전화를 받았다.
“네.”
- 웨딩돌 하우스의 이윤정 씨 맞습니까?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목소리. 윤정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휴대전화를 다른 손에 바꿔 쥐었다.
“네. 안녕하세요, 사장님?……현우 외삼촌, 화성 백화점의 사장님 맞으시죠?”
- 통화, 괜찮습니까?
재봉틀 바늘에 박혀 있는 천과 레이스를 보며 윤정이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긴장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귓가에 속삭이듯 깔리는 바리톤의 저음이 기기 막힐 정도로 매력적이지만, 그녀에게는 지옥의 저승사자가 찾아온 듯 떨렸다. 아니, 사장이라는 사람이 왜 직접 전화를 한 거야? 그냥 비서에게 시킬 것이지!
- 현우에게 말했던 인형을 언제쯤 완성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현우가 자꾸 채근을 해서요.
“아! 그 인형이요…….”
윤정은 다른 작업대 위에 간신히 지관(紙管 : 인형을 세울 수 있도록 만든 둥근 원통)에 몸통만 연결되어 있는 벌거벗은 인형을 봤다. 얼굴도 달려 있지 않고 팔도 없었다. 다른 작업들이 잡혀 있어 비는 시간에만 잡다보니 진행속도가 더뎠다.
“그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다른 작업들도 일정이 모두 잡혀 있어서요. 틈틈이 만들고 있긴 하지만, 좀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 다른 작업들을 조금 물리면 안 되겠습니까?
“다른 분들도 몇 주 전부터 예약하신 분들이라서요. 똑같이 기다리시는 분들인데, 새치기를 해드릴 수는 없어요. 죄송합니다, 사장님.”
윤정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중간에 불쑥 끼어들어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 순서를 가로채게 할 수는 없었다.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띠링. 통화가 끊어졌다. 인상과 달리 성격이 참 급한가 보다. 인사할 겨를도 주지 않고, 툭 끊어버리는 것을 보니. 귀에서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며 윤정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손이 두 개뿐인 걸 어쩔 것인가. 인도신인 시바처럼 손이 열 개라도 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
천과 레이스를 겹쳐 재봉틀 바늘 밑에 맞추고 재봉틀 페달을 밟았다. 드드드드, 바늘이 아래위로 움직였다. 겹쳐진 천과 레이스를 조심스럽게 밀어 박았다. 유난히 하늘하늘한 레이스가 많이 달린 웨딩드레스였다. 신부체형이 통통한 편이라 어울리는 드레스를 고르려니 선택의 폭이 많지 않았나 보다.
금세 일에 빠진 윤정은 심장을 덜렁거리에 만든 무시무시한 전화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작은 공방에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만이 울렸다.

혁준은 손가락을 들어 무거운 눈덩이를 꾹꾹 눌렀다. 갑자기 떠오른 과거의 기억들 탓에 기분이 더욱 나빠졌다. 정신적인 피로감과 감정적인 허탈감이 이중으로 그를 내려눌렀다. 차라리 책상과 컴퓨터에 있는 서류를 처리하는 편이 마음 편할 뻔했다.
잠시 감고 있던 눈을 뜨자, 차창 밖으로 잔뜩 낀 구름 사이로 한 줄기 햇살이 내려쬐고 있었다. 3월인데도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두툼한 겨울옷차림이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아니라, 아직 겨울인 듯 날씨가 쌀쌀했다. 미국과 유럽에는 폭설로 도시가 마비되었다고 한다. 지구 종말에 대한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이상기온인 것은 틀림없었다.
“어디쯤 지나고 있는 거지?”
“홍대 정문을 막 지났습니다, 사장님.”
홍대 정문. 평소 무심하게 지나가던 거리 중 하나. 그러다 문든 뭔가가 생각났다. 혁준은 주머니에 들어 있던 종이를 꺼냈다. 명함의 뒤쪽에 그려져 있는 약도에 홍대 정문 근처의 지리가 박혀 있었다. 쭉쭉 뻗어져 있는 도로와 사거리들 사이로 이정표가 될 수 있는 유명한 가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붉은 엑스표가 찍혀 있는 가게는 골목길로 들어가지 않고, 도로가에 나와 있었다. 혁준은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가게점포들을 봤다. 저도 몰게 장 기사에게 지시했다.
“속도 조금만 줄여.”
서서히 차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지나쳐 버린 건가. 굳이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었다. 무심결에 생각나 찾아본다는 느낌이랄까.
막 포기하고 명함을 버리려는 찰나였다. 길가의 제일 끝자리의 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웨딩돌 하우스’. 넝쿨무늬에 감싸인 필기체의 가게 이름이 차창 위를 지나갔다.

혁준은 여러 가지 인형이 아기자기하게 장식되어 있는 쇼윈도를 물끄러미 넘겨다봤다. 현우가 가지고 도망쳤던 인형도 꽤 수공(手功)이 들었다 했더니, 여기 나와 있는 인형들은 더 공을 들인 듯했다. 주문이 밀려 있다고 큰소리를 치더니, 당당할 만하군. 그녀의 실력만큼은 인정하기로 했다.
진한 고동 빛깔의 나무문을 밀었다. 따랑따랑. 문에 달려 있던 풍경이 맑은 소리를 내며 퍼졌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서기도 전에 손님을 반기듯 향긋한 향이 밀려들어왔다. 맡으면 머리가 아픈 화학 방향제가 아니었다. 종류는 모르지만, 꽃향기에 풀냄새도 뒤섞여 있는 듯 했다.
드르르르륵거리는 재봉틀 소리가 그의 발자국 소리를 묻었다. 재봉틀 바늘에 코를 박을 듯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가게 주인은 손님이 들어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혁준은 자신의 사무실보다 약간 작은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한쪽 벽의 제일 아래 선반에는 제각각 다른 완성된 인형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고, 그 위에는 미완성인 듯 머리가 없거나, 옷을 입지 않은 뼈대만 있는 인형들이 자리해 있었다. 다른 한 쪽에는 원단이 층층이 채워져 있었고, 둘둘 말린 레이스와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작은 재료들이 곽마다 담겨져 있었다. 벽에는 말린꽃으로 만든 리스와 부케가 걸려 있었고, 포푸리를 만든 헝겊 주머니가 리본을 매단 채 구석구석 놓여 있었다. 자연 방향제로군. 너저분하지는 않지만, 약간 어수선하기는 한 공간. 가게 주인처럼 조금씩 빈틈이 있는 분위기. 긴장과 피로로 뻣뻣하던 혁준의 어깨가 나른하게 풀어졌다.
붉은 리본으로 묶인 연초록 포푸리 주머니를 살짝 만졌다. 말린 잎의 포삭포삭한 촉감이 느껴졌다. 향긋한 향이 진해졌다.
혁준은 힘을 줘 노크하듯 선반을 두들겼다.
똑똑.
소리에 반응하듯 윤정이 고개를 들었다. 혁준과 눈이 딱 마주친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상도 못했던 일인 것처럼. 충격으로 살짝 벌어진 입술이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벙긋벙긋거렸다. 그러다 마법이 풀린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를 질렀다.
“어, 어떻게? 아니, 언제?”
윤정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더듬거리며 물었다. 인기척도 못 느꼈는데, 어느 사이에 들어온 걸까. 아무리 재봉틀 소리가 크다지만, 그 정도도 모를 정도로 둔하지는 않았다. 인형들을 놔두는 선반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존재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공간 속에 뚝 떨어져 있는 퍼즐 한 조각 같았다. 그의 눈길이 그녀의 아래쪽으로 향했다. 응? 뭔가 이상한 것이 느껴져 밑을 확인했다.
“악! 내 실크! 내 레이스!”
놀라 일어서면서 재봉틀의 발판을 계속 밟았는지, 재봉틀 바늘이 실크 원단과 레이스를 제 맘대로 꿰매버렸다. 실을 끊은 윤정은 빼뚤빼뚤하게 박힌 천과 레이스를 집어 들고서 울상을 지었다. 실을 뜯어내도 실크 원단에 바느질 구멍이 숭숭 나버린 상태라 다시 쓸 수 있을지 애매했다.
“오……, 이런…….”
……젠장…….
속에서 십 원짜리 욕이 올라왔다. 하필 사고가 나도 꼭 비싼 원단을 박을 때 날 게 뭔지.
“미안하군.”
혁준은 울 것처럼 찌푸린 얼굴을 보고 일단 사과를 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자신 때문에 뭔가가 잘못된 모양이다. 천에 이마를 박고 있는 그녀의 웅얼거림이 들렸다.
“이게 얼마짜리 원단인데……. 왜 하필 구하기도 힘든 원단을 씹은 건지……. 으윽, 아주 날 죽여라 하는구나. 아주 죽여…….”
그 뒤로도 웅얼거림이 계속되었지만, 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다. 혁준이 소리 없이 짧게 혀를 찼다. 이런, 놀랠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마에 파득거리던 작은 갈매기를 간신히 지운 윤정이 천에서 얼굴을 들었다. 입술은 웃고 있지만, 눈가는 파들거리는 것이 귀여워 혁준은 자칫 실소를 지을 뻔했다. 아무리 무심한 자신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웃으면 안 좋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웃음을 참으려니 그의 얼굴이 더욱 무뚝뚝해졌다.
“바쁘신 사장님께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는지……?”
기분대로 하라면 왕림하셨냐고 비꼬고 싶었지만, 소심해 말꼬리만 길게 내뺐다.
“지나던 길에 명함에서 봤던 약도가 생각나서, 진행상황도 확인할 겸.”
지나던 길에……. 그래, 지나던 길에 들렀단 말이지. 그런데 이상하게 말이 반 토막이었다.
“왜……?”
……반말을 하시는 데요? 라고 묻고 싶었지만, 웅얼거리는 소리로 끝났다. 망친 천을 작업대에 내려놓은 윤정은 어수선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장승처럼 서 있는 혁준을 보다 닫혀 있는 출입문을 봤다. 예상치 못했던 거북한 상대라 누구라도 들어와 거북한 공기를 깨트려줬으면 했다.
“아, 앉으세요.”
직접 만든 쿠션들이 뒹굴고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강렬한 빨강 색의 하트 쿠션과 레이스를 겹겹이 박은 공주풍의 사각 쿠션 사이에 혁준이 앉았다. 아기자기한 공방에 뚝 떨어진 낯선 침략군을 보노라니 완전 호러물이었다. 그것도 심야용으로 케이블에서 방영하는 B급물.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커피는 없는데……. 홍차, 어때요?”
전기포트의 전원 버튼을 누르며 헤로게이트의 얼 그레이 틴을 집었다. 유리 포트에 홍차 잎을 넣고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포트의 뜨거운 물을 부었다. 온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집 모양의 망을 씌우고 포트와 세트인 유리 찻잔 두 개를 준비했다.
당황한 듯 목소리가 작게 떨리면서도 차를 준비하는 손길이 능숙했다. 귀찮다고 티백을 우려내는 사람들도 있는데, 오히려 티코지까지 구색을 갖추고 있어 의외였다. 혁준은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진 투명한 유리 찻잔을 집었다. 손바닥 사이로 차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얼 그레이 특유의 오렌지 향기가 진하게 우러났다. 떫지도 않고 깔끔한 맛이 오찬에서의 뒤틀린 입안을 씻어줬다.
한 입만 삼키고 내려놓지 않은 걸 보면 다행히 입맛에 맞았나 보다. 윤정은 자기 몫의 차를 마시며 안도했다. 놀란 신경을 가라앉히기 위해 일부러 즐겨 마시는 헤로게이트의 얼 그레이를 골랐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뜻밖의 손님을 맞은 당황함이 천천히 가시자, 슬금슬금 호기심이 올라왔다. 설마, 정말로 지나가다 들른 건 아니겠지? 방문 목적을 알 수 없어, 윤정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처했다. 일반 손님을 상대하듯 굴려니 일단 성별에서부터 문제가 있고……. 그러보니 공방 문 연 이후로 남자 손님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다이어리에 빨간 색연필로 표시해 둬야지.
찻잔을 내려놓은 윤정은 작업 중인 인형들을 모아둔 곳에서 하체로 쓰는 지관에 몸통과 팔다리만 달려 있는 것을 꺼냈다. 말을 꺼내고 나서도 연일 다른 인형들에 매달려 초반 작업만 겨우 끝낸 상태였다. 이대로 보면, 이게 무슨 인형이냐고 할 정도였다.
“현우 건가?”
“……네.”
로봇이든, 자동차든 완성된 물건만 사다, 반의반도 채 만들어지지 않은 인형을 보니 색달랐다. 인체 비율과는 전혀 맞지 않았지만, 길쭉길쭉한 팔에 가슴은 솜을 따로 붙이지 않고, 천안에 솜을 집어넣어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엉성하거나 이상하지 않고, 여자의 가슴 곡선을 매끄럽게 이루고 있었다. 가슴선이 깊이 파인 옷도 멋지게 소화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군.”
“뭐가? 아! 이거요!”
혁준이 말하는 것이 뭔지 알아차린 윤정이 가슴선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가슴선을 살릴 수 있게 입체 패턴을 뺐거든요. 보통 앞면, 뒷면으로 2장의 천을 사용하는데, 이건 3장을 사용해서 밖에서 보면 자연스럽죠.”
초급용으로 나가는 패턴에는 둥근 솜덩어리 두 개를 가슴 부위에 글루건으로 붙이게 만든 것도 있다. 처음 만드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탆턴이어서 일부러 고급 코스에만 넣었다.
“속도가 너무 느린 것 같은데……. 현우가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해서 언제 가져 오냐고 보채는 중이라서.”
“죄송해요. 지금 손대고 있는 것만 끝나면 급한 것은 끝나니까, 그때부터 매달리면 금방 끝날 거예요. 한 열흘 정도? 현우에게 얌전히 기다리면 더 예쁘게 만들어 준다고 하면 될 것 같은데…….”
혁준이 재미있다는 듯 입술 끝을 살짝 끌어올렸다.
“민지라는 아이가 현우보다 라이벌인 다른 아이와 더 가까워져서, 현우 녀석 애가 타는 모양이더군. 당신이 만들어 주기로 한 인형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던데.”
“저런.”
나이가 어리나 많으나 삼각관계는 괴로운 법. 특히 마음이 돌아서려는 애인을 붙잡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것은 남녀노소가 똑같았다. 깍은 밤톨 같은 현우를 뻥 찰 정도면 민지란 여자아이도 만만치 않은 상대란 거겠지.
완성된 인형들을 놓아둔 선반에 유독 튀는 한 쌍이 있었다. 사모관대인 신랑에 족두리와 활옷을 입은 신부. 혁준이 다가가 자세히 봤다. 신랑은 짙은 청색 비단으로 만든 단령포에 가슴에는 수가 놓인 네모난 흉배(胸背)를 달고 있었고, 허리에는 각대(角帶)를 하고 있었다. 곁에 있는 신부는 달랑거리는 족두리에 용잠을 꽂았고, 앞뒤로 길게 드리운 댕기에도 화려한 수가 놓여 있었다. 모은 손을 가리고 있는 흰색 한삼에는 길한 문양인 호랑나비와 목단이 수놓아져 있었다. 혁준의 눈에 감탄의 빛이 살짝 떠올랐다. 수도 수지만, 사모와 목화, 족두리와 비녀까지 모두 일일이 직접 만들거나 개별 맞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소소한 장신구들의 완성도가 인형의 완성도를 더 높여주었다.
“웨딩드레스 종류만 하는 게 아니었나?”
“그것도 웨딩드레스니까요. 결혼식에 신부가 입는 옷은 모두 웨딩드레스잖아요. 특별히 전통혼례를 올렸다면서 주문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아니면 드레스보다는 폐백 했을 때의 한복이 더 좋다면서 부탁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손은 좀 더 가지만, 완성하면 다른 인형들보다 더 예뻐요.”
환하게 웃는 얼굴이 정말 즐거워 보였다.
“재밌나 보군.”
윤정이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인형 만드는 걸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서.”
윤정이 고개를 끄덕이다 모호한 미소를 지었다. 인형의 기다란 웨딩 베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만드는 건 좋아요. 재미있고. 가끔은 내가 원하는 인형을 만들기도 하고, 주문받은 거긴 하지만, 바느질 자체를 좋아하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사람을 상대하는 건 힘들어요. 피곤하기도 하고. 서비스업처럼 손님의 취향을 상대해야 하니까, 조금만 삐끗해도 안 좋은 소리를 듣거든요. 가끔은 원했던 드레스 형태로 만들어 가져가면, 그제 와서 다른 걸로 하고 싶다고 억지를 부리는 신부도 있죠. 일일이 맞춤 수공이라 가격도 만만치 않지만, 예민한 신부를 상대해야 할 때가 좀……. 신부들 맞춰주기가 제일 힘들어요.”
윤정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무안함을 감추듯 손을 내저었다. 아무리 질문에 답하는 거라지만, 이제 고작 세 번 본 남자에게 너무 많이 주절거렸다.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에 떠들어대는 것이 아니라 편하게 받아주는 분위기에 휩싸여 긴장이 풀어진 듯했다. 주뼛주뼛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말을 줄였다.
그녀를 보는 혁준의 무심한 눈빛에 따뜻한 기운이 한줄기 지나갔다. 병아리처럼 삐약삐약거리는 것이 귀여우면서도 따뜻했다. 작은 공방의 부드럽고 안온한 분위기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와는 가지고 있는 색부터 다른 여자. 왠지 입 안이 썼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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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지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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