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놀면서 세상을 발견하고 놀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끊임없이 배우며 발달한다. 아이의 이런 발달 과정은 교육학 연구에서 충분히 확인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영아 현장에서 자유놀이를 어떻게 동반하고 적절한 놀잇감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연령에 맞는 주변 공간을 꾸며 주어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장 교육자라면 누구나 알듯이, 아주 어린아이들이 그룹 안에서 만족스럽게 놀이를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기란 단순한 과제가 아니다. 아이들 그룹에서 자유롭고 조용한 놀이가 이루어지도록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려면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영아를 돌보는 대부분의 현장에 주어진 조건이란 충분하지 못하지만, 교사는 어떤 연령대에 있는 아이들이 무엇에 몰두하는지, 발달 시기에 따라 아이들의 관심이 무엇이고 어떤 놀이감을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하면 그런 놀잇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을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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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보자기는 괜찮고 나무나 플라스틱 놀잇감은 주지 않아야 하는가? 이 월령에서는 잡기 반사 작용이 아직 나타나므로 아기가 손으로 대상물을 잡거나 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첫돌에서 두 돌 사이에 주는 놀잇감은 재질이 부드러워야 한다. 아기가 놀잇감에 흥미를 보이면, 그것을 아기 손에 쥐여주지 말고 아기가 그것을 발견하고 잡을 수 있도록 가까이에 놓아야 한다. 흔히 볼 수 있듯이 신생아 침대 위나 유모차 앞 부분에 매달아 놓은 알록달록한 줄이나 방울, 번쩍거리는 물건은 아기를 방해한다. “갓난아기는 단순히 눈으로 보기만 할 수 있고 기껏해야 우연히 건드려 볼 수 있는 그런 물건들은 불필요하다.”고 에바 칼로는 설명한다. “쳐다보는 물건들은 아기가 손을 섬세하게 사용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아기 위에서 흔들거리는 모빌 같은 놀잇감들은 아기가 잡을 수 없는 물건이다. 그런 것은 아기가 돌려보고 움직여볼 수 없고 가까이 가져오거나 밀어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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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돌이 지난 아이는 더욱 다양한 놀이를 훨씬 더 끈기있게 실험하며 가지고 노는 물건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는 통에 담긴 물건을 하나씩 꺼내어 다른 통에 집어넣는다. 조금 지나면 아이는 쏟아붓기를 알게 된다. 물건을 하나씩 옮기는 대신 이제는 통을 잡고 내용물 전체를 한 번에 쏟아내거나 다른 통으로 옮겨 붓는다. 한 통에서 다른 통으로 옮겨 붓는 행위를 하려면 선행되는 체험이 있어야 한다. 아이는 물건의 양을 각 물건의 합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보는 것이다. 쏟기 동작은 소근육의 조절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통이나 양동이, 바구니를 어떻게 잡는가? 쏟을 때는 그 용기를 어떤 강도와 각도로 흔들어야 하는가? 그러려면 힘은 얼마나 들어가는가? 아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중요한 질문이며, 이를 위해 크고 작은 용기, 가볍고 무거운 내용물로 여러 번 되풀이하여 경험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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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돌을 지낸 지 얼마 안 된 아이들을 관찰하면, 아이들이 이미 일상에서 본 행위들을 따라 하는 것이 보인다. 예를 들어 마치 무엇을 마시는 것처럼 빈 컵이나 병을 입에 대고, 조리용 스푼으로 그릇을 저어보거나 무엇을 열기라도 하는 듯 열쇠뭉치를 돌린다. “가정假定 놀이”라고도 불리는 이 첫 번째 상징놀이를 할 때 아이는 처음에 혼자서만 무언가를 하는 흉내를 낸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상징적인 상대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곰 인형이나 사람 인형에게 밥을 먹이고 재운다고 바닥에 눕히고 장난감 컵에 “커피”도 어른에게 가져다 준다. 조금 지나면 아이의 상징놀이에서는 원래의 행위와 연결된 현실의 사물조차 필요 없게 된다. 그저 단순한 상상이면 충분하다. 아이는 요리 재료로 잎새나 작은 돌멩이를 사용하고 나무토막으로 통화를 한다. 어쨌거나 이 시기에 놀이의 중심은 아이가 생활 속에서 경험하거나 관찰한 행위를 모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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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3년간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은 나라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어린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현재 몰두하고 있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 아이는 사물과 체험을 그림으로 표현하기 전에 오랫동안 그림이라는 매체를 의사전달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 이에 더하여 아이는 현실의 체험과 이때 생기는 판타지 세계를 그림으로 그려 소화한다. 아이의 낙서와 그림 그리기의 발달은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진행되므로, 아이의 그림은 그 아이의 “특별한 재능이나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오히려 알프레트 바라이스가 강조한 것처럼 “소근육의 발달, 관찰력과 체험 능력의 발달, 지각의 세분화 및 지적 성숙과 감성과 사회성의 발달” 단계들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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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느 때는 어른의 중재가 필요한 다툼도 일어난다. 갈등 상황은 많은 경우 아이들이 해결책을 찾아내어 저절로 해결되고 양쪽이 만족해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해결이 어른 생각에 공평하지 않다고 해도, 교사가 갈등 해결에 반드시 개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툼이 심각해지면, 교사가 나서야 한다. 이때 교사는 한 아이를 무색하게 하거나 탓하는 일 없이 다툼을 중재해야 한다. 달아오른 감정을 부드럽게 하고 뭔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른이 도덕적인 심판자가 되어 “가해자”와 “피해자”를 판단하는 모습을 보이지 말고, 두 아이의 처지를 고려하여 서로 다른 감정을 인정하고 위로함으로써 양쪽 아이가 다시 놀이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꾸준히 규칙을 알려주면 갈등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어떤 아이가 놀잇감 하나를 가지고 열심히 놀고 있으면 그것을 뺏지 말고 그 아이가 끝까지 놀도록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이 그런 것에 속한다. 같거나 비슷한 종류의 장난감을 충분히 마련해 두면, 장난감을 둘러싼 갈등 상황이 적어지고 싸움을 수습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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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과제는 놀이를 관찰하면서 영아가 지금 무엇에 관심을 보이고 무엇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영아반의 현장 교사는 각 아이가 전날 무엇을 가지고 놀았는지 알고 있어야 하고, 다음 날에도 같은 놀잇감을 가지고 노는지, 또 어떤 놀잇감을 추가하여 놀고 싶어 하는지 주목해야 한다. 현장 교사의 이런 관심은 아이의 다음 발달 과정에 도움을 주며, 아이들은 교사의 관심 어린 동행을 긍정적으로 느껴, “우리 선생님은 내가 무슨 놀이를 재미있어 하는지 알아. 선생님은 나를 잘 알고, 나는 선생님한테 소중해.” 하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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