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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버스에서

마지막 버스에서

푸른사상 시선-117이동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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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24쪽 | 192g | 128*205*8mm
ISBN13 9791130814889
ISBN10 1130814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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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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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부천 오는 마지막 버스
터미널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자의 고개가 스르르 내 어깨에 넘어져
밀어내기 몇 번 해도 제자리다

십 년 넘게 이 길을 출퇴근했던
남편 생각에 얌전하게 어깨를 내주자
한 남자 삶의 무게가 전해진다
가장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단했으면
낯선 여자 어깨에서 세상모른 채 단잠을 잘까
움켜잡은 빵 봉지 놓치지 않는 집념
날마다 저렇게 하루를 붙잡았을 것이다

코까지 골던 남자 터미널 다가오자
벌떡 일어나 도리질로 잠을 털고
나는 어깨의 가벼움을 느끼며
자는 척 두 눈을 살짝 감았다
--- 「마지막 버스에서」 중에서

투박한 감나무 잎 사이로
옹기종기 매달린 풋감들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
나뭇가지 땅으로 향했다

해진 수건 머리에 쓰고
비탈밭에 매달리던 어머니
호미질 단내 나도록 뜨겁던 날들
무쇠라던 몸 휘어져
땅을 입에 물었다

점점 야위어가는 몸에
옹이처럼 암 덩이 자리 잡아
움켜잡은 배 놓지 못하고 마지막 가는 날도
내리 낳은 딸들은 밥그릇을 비워냈다

평생 어머니를 갉아먹었다.
--- 「어머니를 갉아먹다」 중에서

공구 상가 거리에 가면
이름 모르는 부속품과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는 물건들 속에
한 남자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새로운 것을 갈망하고
더 나은 것을 만들고자
마음은 쉬지 않았고
생각은 수첩 속에 쌓여만 갔다

틈만 나면 이 거리를 돌아다니다
돌아올 땐 부품 몇 개 희망을 들고 왔지만
얇은 지갑에 마음 놓고 꿈은 펼쳐보지도 못했다

해줄 게 없다며 의사도 포기한 몸
땅이 꺼지게 미련을 버렸고
진한 아쉬움이 작은 부품에 떨어졌다

“이것 하나도 몇만 원인데……”
--- 「공구 상가 거리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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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나고, 자라 줄기가 되고, 그 줄기에 “꽃망울이 많이 맺힐수록” 제 몸은 더욱 비워져 구멍이 숭숭 뚫리는 「무」, 시인의 시선은 대견하게도 꽃이 아니라 싹에도, 줄기에도, 꽃에도 “갉아먹히는” 무의 몸통에 닿아 있다. 어쩌면 이와 같을 누구나의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당숙, 숙모……, 급기야 “흙도 없는 곳에 웅크린” 몸통을 갉아먹고 살던 그 자식들은 어머니가 “무쇠라던 몸 휘어져/땅을 입에 물고” “마지막 가는 날”까지 “밥그릇을 (다) 비워”낸다. 시인의 시는 이렇듯 사뭇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아프면서도 어느 순간 가슴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특별한 결을 가지고 있다. 시인은 이미 자기만의 농익은 언어로 시의 한 경지를 이루어낸 듯하다.
- 오인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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