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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어화

목어화

[ 개정판 ]
지우란 | 로담 | 2013년 02월 2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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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2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128*188*30mm
ISBN13 9788997253715
ISBN10 899725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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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이 그들 사이로 무겁게 내려앉았다. 연희는 조마조마한 심정을 참다못해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어 보았다. 뜻을 알 수 없는 그의 눈빛이 여전히 그녀에게 머물러 있었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미처 그의 시선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강렬한 눈빛이 순식간에 그녀를 사로잡아 버렸다.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열 때문이 분명한 체온도 더 뜨겁게 의식되었다. 연희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그가 몸을 뒤척이는 게 느껴졌다. 빨리 일어나 이곳에서 나가야만 했다. 손님이 있는데 객실에 들어와 있는 것을 정 지배인이 알게 된다면 또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희는 뭔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이건 분명 감기 때문이야. 그녀는 애써 억지로나마 자신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을 열 탓으로 돌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그녀는 차마 인정할 수 없었다.
“몇 살이지?”
문득 그가 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연희는 입술만 깨문 채 어찌할 줄을 몰라 불안스레 눈동자를 굴렸다.
“대답하기 싫은 건가? 그럼 이름은 있겠지. 이름은 뭐지?”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에게서 아무 말이 없자 욱은 인상을 찌푸렸다.
왜 자꾸 이 여자가 이렇게 신경 쓰이는 걸까. 이번이 겨우 두 번째 본 것뿐인데도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쏠리는 관심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않는 그녀를 보자니 욱은 왠지 이 여자가 더욱 거슬리기 시작했다. 대놓고 면전에서 그를 무시하다니. 그나마 나아졌던 기분이 단번에 팍 상했다.
욱은 인상을 쓴 채 그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 모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어쩐지 대답을 하지 않은 것보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더 기분 나빴다. 그는 가만히 그녀를 지켜보다 별안간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다음으로 들린 그의 말에 그녀는 펄쩍 뛰듯 놀랐다.
“여기 23층. 총지배인 좀 불러.”
연희는 놀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가 총지배인은 왜 찾는 것일까? 설마 나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 그녀에게 약까지 줬던 사람인데 설마 총지배인을 불러 그녀를 나무랄 생각인 건가?
연희는 묻는 듯 그에게 불안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아까와는 다르게 차가워진 눈빛으로 조소하듯 그녀를 지켜볼 따름이었다. 연희는 안절부절못했다. 도대체 어쩌려는 것일까.
그가 명령을 내린 지 얼마 안 되어 속달 같이 벨이 울렸다. 연희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곧 문이 열리고 거친 호흡을 추스르며 총지배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총지배인은 처음 그와 연희가 같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놀라는 눈치였다. 그러나 곧 분위기를 파악하곤 조심스럽게 그런 기색을 감추었다. 총지배인이 그의 앞에 와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사장님.”
연희는 놀란 숨을 들이켰다.
욱은 불안함에서 두려움으로 변해가는 그녀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총지배인이란 소리가 나왔을 때부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니 어딘지 잔인한 즐거움까지 느껴졌다. 그는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
“대체 직원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겁니까? 내가 이런 것까지 꼭 신경을 써야겠어요? 손님과 부딪쳐 죄송하단 말 한 마디 없는 청소부, 여기서 용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거기다 손님이 잡아끄는 데로 반항도 없이 얌전히 따라간다라……. 여기가 언제부터 싸구려 여관으로 전락한 겁니까? 고급 콜걸도 아니고 돈만 쥐어 주면 다 오케이 하는 청소부는 왠지 싸구려 여관에서도 취급할 것 같지 않은데요.”
그의 말이 떨어질 때마다 연희의 몸이 움찔거렸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자신을 싸구려 매춘부처럼 매도하는 그의 말이 비수가 되어 연희의 가슴을 찔렀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친절하진 않았지만 호의가 담긴 뜻으로 그녀를 도와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오해였다. 저런 지독한 말로 거짓말을 해대는 그는 절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연희는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변명은 무리였다. 다시 한 번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느껴졌다. 입이 없는 사람은 말도 못 하고 귀가 없는 사람은 듣지도 말아야 하는 것.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따라 세상이 더욱 잔인하게만 느껴진다.
그 뒤로 더 이어진 그의 지독한 말들을 연희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시선을 바닥에 고정시킨 채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고만 있었다. 자신에게 미치는 불이익을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한다는 것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그러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런 것이 평생 그녀가 감수해야 할 일이라면 참아내야지 별수 있나. 연희는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마침내 그의 낮은 호통이 끝나고 총지배인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시정하겠습니다. 어서 연희 씨도 고개 숙여요.”
총지배인이 그녀를 질책하며 재촉했다. 연희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나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 어떻게 나갔는지도 모른 채 그녀는 총지배인의 손에 이끌려 밖으로 나갔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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